▲ 지난 1월9일 손길승 SK그룹 회장이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서울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 ||
마침내 손길승 SK그룹 회장의 퇴진이 결정됐다. SK주식회사는 지난 22일 이사회를 열어 손길승 회장의 이사 퇴진을 결정했다. 이로써 40년 동안 SK그룹에 몸담으면서 전경련 회장을 지내는 등 화려한 샐러리맨 생활을 해온 손 회장은 검찰에 소환되는 등 비극을 맛본 끝에 쓸쓸히 물러나게 됐다.
손 회장의 퇴진은 소버린이라는 영국계 펀드가 SK그룹의 지주회사인 SK주식회사의 대주주로 등장한 것이 계기가 됐다. 소버린은 SK그룹의 불투명 경영과 관련, 손길승 회장과 최태원 회장의 동반퇴진을 요구했고, 참여연대 등에서는 최 회장의 경영권은 인정하되 손 회장의 퇴진을 주장했던 것.
결국 SK는 오너인 최태원 회장을 살리기 위해 손 회장을 버리는 선택을 했다. SK주식회사의 재무담당 책임자 유정준 전무는 “손길승, 김창근, 황두열 이사가 이사회에서 물러나면서 집행임원으로서 일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사실상 손 회장의 복귀 가능성을 배제했다.
현재 관심사는 손길승 회장이 SK텔레콤의 등기이사에서도 빠질 것이냐는 부분. 이에 대해 유 전무는 손 회장의 텔레콤 이사직 보유 여부에 대해 “대답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지만, 그의 완전 퇴장은 시간문제로 남아 있다는 게 SK그룹 안팎의 분석.
손 회장의 경영복귀가 불가능하다고 보이는 것은 잇따른 악재 때문. 그 중 하나는 다시 불거지고 있는 손 회장의 뇌물 제공 문제다.
지난 2월 초 참여연대의 박근용 경제개혁팀장은 손 회장의 뇌물제공 부분에 대한 ‘증거’를 공개했다. 익명의 한 인사가 참여연대에 이남기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손 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법원에 의해 유죄판결(2003년 7월)을 받은 것을 입증해주는 1심 판결문을 보냈다는 것.
판결문에 따르면 손 회장이 김창근 구조조정본부장을 통해 뇌물 제공을 직접 지시했다는 것이다. 참여연대가 공개한 판결문을 보면 “그로부터 며칠 후 김창근은 10억원을 피고인 이남기에게 직접 교부하라는 손길승 회장의 지시에 따라 피고인에게 그 의사를 전달하였으나, 피고인은 이를 거부하고 쭛쭛사 신도 회장인 쭛쭛쭛를 통하여 기부할 것을 요구하였다”고 돼 있다. 손 회장-김창근 사장-이남기 전 공정위원장으로 이어지는 뇌물 고리가 법원에 의해 인정됐다는 것.
이 문건을 제보받은 참여연대의 박근용 팀장은 SK텔레콤의 불법행위 및 부실경영 책임자의 이사직 사퇴 캠페인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 더군다나 최 회장이 경영일선에 복귀하면서 명분으로 내건 ‘투명경영’ ‘GE 수준의 선진 경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손 회장의 퇴진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한편 오는 3월12일 SK텔레콤의 정기주총에서 손 회장의 거취가 어떻게 결정될 것인지에 재계의 이목이 쓸리고 있다. SK텔레콤에선 손 회장의 퇴진 여부에 대해 “미지수”라고만 밝히고 있다.
SK텔레콤 총 12명의 이사 중 조정남 부회장, 사외이사인 남상구 고려대 교수, 김대식 한양대 교수, 변대규 휴맥스 대표 등의 임기가 올해 만료된다. 이들 중 남 교수와 김 교수는 참여연대가 추천한 인물이다.
참여연대는 재판을 받고 있는 손 회장과 최 회장의 동반퇴진을 주장하고 있지만 SK그룹측이 손 회장의 퇴진을 결정하면 결국 사외이사 선임권을 행사하는 정도에서 이사선임문제는 마무리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우세하다.
문제는 손 회장이 공식 퇴진하고 난 뒤의 SK그룹 상황. 손 회장이 퇴진할 경우 자연스럽게 최태원 회장의 단일 체제가 구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벌써부터 SK그룹 안팎에서는 손 회장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던 세칭 ‘구파’들이 대거 물러날 것이라는 말이 오가고 있다. 인사태풍설이 불거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