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헌재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특히 황영기 행장의 기용을 두고 김정태 국민은행장을 견제하기 위한 대항마라는 분석이 나오는 등 금융계의 내부기류에 상당한 변화가 일고 있다.
금융계에서는 이헌재 부총리 체제 출범 이후 황 은행장이 발탁되자 국내 리딩뱅크 자리가 국민은행에서 우리은행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오가고 있다.
현재 금융계 안팎의 최대 관심사는 이헌재 부총리의 지원을 받아 우리은행장으로 내정된 황영기 행장의 행보. DJ정부 시절 김정태 행장을 발탁, 국민은행을 키워낸 이 부총리가 증권맨인 황 행장을 기용해 또다른 스타급 거대 은행을 키워내는 게 아니냐는 관측과 맞물려 그의 움직임이 금융가의 비상한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사실 우리금융의 총자산은 1백29조원으로 국민은행(2백14조원)이나 신한지주(1백59조4천억원)에 비해 적다. 하지만 황 행장이 비은행 분야를 적극적으로 키우겠다는 발언을 했고, 우리은행 역시 증권사 인수 등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우리은행을 주거래 은행으로 삼고 있는 국내 재벌이 삼성그룹이나 두산그룹 등 주요 재벌이라는 점에 비추어 보면 우리은행이 선두권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황영기 | ||
국세청은 이즈음 오비이락격으로 국민은행에 대해 1천3백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추징했다. 이에 대해 금융계 일각에선 국민은행에 대한 ‘괘씸죄’설도 나오고 있다. 그러자 지난 2월21일 김정태 행장이 이 부총리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김 행장의 방문길에는 이성남 국민은행 감사가 동행했다. 일부에선 지난 98년 이 부총리가 금감위원장을 지낼 때 이 감사를 검사총괄실장으로 발탁했던 ‘이헌재 사단’의 일원임을 들어 이 부총리와의 화해시도로 해석하고 있다.
게다가 이 부총리 등장 이후 공교롭게도 김 행장은 이헌재 사단으로 분류되던 일부 인사들을 다시 중용했다. 실제로 국민은행은 지난 3월2일자로 투자신탁증권 인수사무국을 만들고 사무국장에 최범수 전 부행장을 임명했다. 최씨는 지난해 7월 김정태 행장이 병상에서 복귀한 뒤 기강확립 차원에서 다른 부행장 2명과 함께 퇴임했었다. 말하자면 문책성 인사를 통해 보직해임된 그가 이헌재 부총리 등장과 함께 재기용된 것.
김 행장이 이 부총리의 등장 이후 계속 유화 제스처를 보내고 있는 것에 대해 금융가에서는 김 행장의 연임 추진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오가고 있다. 실제로 김 행장의 경우 오는 10월 임기가 끝난다. 게다가 국민은행 안팎에서 김 행장의 임기 연장 여부를 두고 여러가지 관측이 오가고 있다.
사실 김 행장은 이 부총리가 금융권을 직접 관할하면서 은행권 구조조정을 추진한 뒤 최고의 금융권 스타로 떠오른 인물이다. 전남 광주 출신인 그는 서울대를 나와 76년 대신증권에 입사한 이후 증권사에서 잔뼈가 굵었고, 지난 98년 주택은행장에 취임한 이후 명실상부한 리딩뱅크의 수장이 됐다. 김 행장의 성공 이면에 이 부총리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던 것.
그러나 노무현 정부 출범 1년 만에 다시 경제팀 수장으로 복귀한 이 부총리에게 그동안 너무 커버린 김 행장이 자신의 경제정책을 끌고 가는 데 약간은 부담이 되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금융권 통합을 통해 경제정책을 주도하는 이 부총리의 카리스마에 김 행장의 무게가 다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
황영기 행장의 발탁은 그런 점에서 이 부총리의 선택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황 행장은 경북 영덕 출신으로 서울대를 나와 삼성그룹에 입사했다. 그후 잠시 외국계 은행에서 일하다가 지난 89년 삼성그룹에 비서실로 복귀했다. 이후 99년 삼성투신운용 사장을 거쳐 2001년부터 삼성증권 사장을 맡았다.
▲ 김정태 | ||
그러나 황 행장이 김정태 행장에 맞서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벽도 많다. 참여연대에선 지난 97년 황 행장이 삼성생명 전무 시절 한빛은행(현 우리은행)을 이용해 이재용씨의 부당한 주식거래를 주도하고 그로 인해 금융감독원의 경고를 받은 전력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태 행장 역시 자리가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김 행장의 경우 통합 이후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론이 내부로부터 나오고 있다. 1백억원대의 예산으로 발주했던 외국계 컨설팅 회사의 컨설팅도 중단됐고, 지나치게 위험부담이 적은 가계대출만 독려하다 신용대란의 직격탄을 맞는 등 경영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오는 10월 임기가 끝나는 그의 거취를 두고 벌써부터 국민은행 안팎이 시끄러운 점도 문제가 되고 있다. 김 행장은 통합 국민은행장이 되면서 연임 불가론을 폈지만 최근 미묘한 기류변화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일각에선 국민은행이 지주회사 체제로 바뀌고 그가 이 지주회사의 회장이 되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게다가 국민은행은 지난해 말 정부 보유지분 9.1%를 인수해 원칙적으로는 정부의 입김이 닿을 수 없는 구조가 됐다. 이런 구조가 LG카드 사태 때 정부의 입김을 거부하는 데 힘이 됐지만, 이후 정부로부터 무책임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때문에 국민은행이 지주회사 체제로 가고, 정부쪽 인사가 행장추천위원회에서 빠질 경우 현 경영진 체제가 고착될 것이라는 얘기가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이헌재 부총리 체제 출범 이후 금융권에 거대한 변화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헌재-김정태-황영기 3인이 어떤 발걸음을 내디딜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