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드라마로 주목받았다. 드라마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수익을 올렸을 뿐 아니라 드라마를 소재로 한 게임 등 부가적인 측면에서도 높은 수익을 기록하며 전쟁 드라마를 새로운 경지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는 사실적인 영상과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생동감 넘치는 시나리오가 크게 일조했다.
그러나 한국은 제대로 된 전쟁 영화나 드라마가 그다지 많지 않다. 작품성과 흥행성 면에서 두루 높은 점수를 받은 작품은 1000만 관객 신화에 빛나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유일하다. 그렇지만 6·25전쟁 60주년을 맞이한 올해 들어 여러 편의 블록버스터급 전쟁 영화와 드라마가 연이어 개봉되면서 연예계는 ‘전쟁 장르’가 새로운 흥행 키워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우리 민족에겐 비극적인 기억이지만 6·25는 전쟁 영화와 드라마를 제작하는 데 있어서는 매우 좋은 소재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기대작은 영화 <포화속으로>와 드라마 <로드 넘버 원> <전우> 등이다. 권상우 차승원 최승현(탑) 등을 비롯해 소지섭 김하늘 윤계상 최민수 줄리엔 강, 그리고 최수종 이덕화 이태란 임원희 등의 스타급 배우들이 총출동했고 제작비 역시 120억여 원, 130억여 원, 80억여 원 등이 투입됐다.
사실 전쟁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국방부의 지원이 절대적이다. 그렇지만 2000년대 들어 국방부는 영화나 드라마 제작 지원에 매우 비협조적이었다.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에 개봉한 대표적인 전쟁 관련 영화인 <쉬리> <공동경비구역JSA> <해안선> <블루>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 투 동막골> <한반도> <화려한 휴가> 등의 작품 가운데 국방부 지원을 받은 영화는 <블루>와 <한반도> 정도에 불과하다.
국방부의 지원을 받지 못할 경우 영화 제작은 상당히 난감해진다.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단속법’의 규제로 인해 국내에선 영화촬영용 총기류를 구할 수 없어 외국에서 대여해 와야 하는데 <실미도>의 경우 홍콩의 한 회사에서 1억5000만여 원을 지불하고 임대했으며 <화려한 휴가> 역시 총기 임차 및 공포탄 2만 발 수입 비용으로 홍콩 업체에 8000만 원을 지불했다.
국방부의 영화 제작 지원은 매우 보수적인 견지에서 이뤄진다. 조금이라도 군의 명예가 실추될 경우 제작을 지원하지 않는 것. 영화사들이 국방부에 제작 지원을 요청하면 양측이 합의에 들어가는데 대부분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가장 대표적인 전쟁 영화인 <태극기 휘날리며>의 경우 국방부가 영화 시나리오를 검토한 뒤 30여 곳을 수정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영화사 측이 이를 거부하면서 제작 지원이 무산됐다. 대표적인 장면은 진태(장동건 분)와 진석(원빈 분)의 징집 과정, 진태가 신임 대대장을 사살한 뒤 인민군이 되는 장면, 국군과 반공청년단이 보리쌀을 타기 위해 ‘보도연맹’에 가입한 영신(이은주 분) 등 양민을 빨갱이로 몰아 사살하는 장면 등으로 국방부가 이런 장면들의 수정 또는 삭제를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국방부 제작 지원을 받은 영화 <한반도>와 <블루>의 경우 군의 명예가 실추되는 장면이 거의 없다. <한반도>의 경우 한일 전쟁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단호하게 대처하는 해군의 모습이 멋지게 그려졌고 <블루>는 ‘대한민국 해군 잠수부대 SSU’ 홍보 영화로 봐도 무방할 만큼 해군을 영웅화했다.
올해 들어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제작되는 전쟁 영화와 드라마에 국방부가 이례적으로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가장 큰 우려를 산 작품은 드라마 <전우>다. 지난 75년부터 77년까지 KBS에서 국민들의 반공의식 고취를 위해 방영한 드라마를 리메이크하는 것으로 방송가에선 KBS가 관제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쏟아져 나왔다. 게다가 국방부 지원을 받을 경우 한국전쟁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담아내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있었다. 이에 대해 KBS는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보다는 휴머니즘을 살리는 드라마’가 될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런 우려 속에 가장 먼저 공개된 영화 <포화속으로>는 ‘정훈영화’로 불릴 정도로 반공 이데올로기에 충실했다. 한 영화 평론가는 “굳이 설명하면 70년대 영화의 시각에 가깝고, 냉혹하게 말하면 돈을 들여 전투신을 공들여 만든 비싼 정훈 교육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게 한다”고 평할 정도다. 영화사 측은 기자시사회 전까지 영화 <포화속으로>가 반공 이데올로기보다는 휴머니즘을 중시한 영화라는 입장을 보여 왔다. 그렇지만 기자시사회 현장 분위기는 국방부 지원 전쟁 영화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반응이 대세였다. 영화 속 최승현(탑)의 “인민군이 뿔 달린 괴물인 줄 알았는데, 그들도 똑같이 어머니를 찾더라”라는 대사에서 휴머니즘을 살짝 엿볼 수도 있지만 인민군을 뿔 달린 괴물로 보는 반공적인 시각은 6·25전쟁 당시가 아닌 반공 이데올로기가 정점에 오른 60~70년대에 형성된 것이라는 부분에선 현실성이 크게 떨어진다.
연예 관계자들 사이에선 국방부 지원을 받은 <포화속으로>를 놓고 볼 때 역시 반공 이데올로기보다는 휴머니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힌 드라마 <전우>와 <로드 넘버 원> 역시 비슷한 관점에서 6·25를 바라본 드라마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군에 대한 묘사 역시 상당히 긍정적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작품들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다. 한 가지 분명한 부분은 국방부 지원을 받는 영화와 드라마들이 6·25전쟁과 분단을 바라보는 입장과 태도가 최근 몇 년 새 한국 영화의 흐름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부분이다. 다만 천안함 사태 등으로 인해 대북 관계가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가 오히려 국방부 지원 영화와 드라마의 흥행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결국 월드컵 열풍이 한창 거센 6월 16일 개봉하는 <포화속으로>의 흥행 성적은 드라마 <전우>와 <로드 넘버 원>의 흥행을 예상케 하는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