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드라마 <스타일>의 한 장면. |
스포츠 관련 회사에 근무하는 H 씨(여·30)는 최근 들어 부쩍 실수가 잦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회사 블로그 오픈 기념으로 상품권 증정 이벤트를 했어요. 그런데 당첨자들한테 상품권을 1장만 보낸 거예요. 원래는 2장을 보내야 하거든요. 방명록에 항의와 문의 댓글이 주르륵 달리는데 아차 싶었죠. 수백 명한테 일일이 해명 쪽지를 보내고 다시 택배로 상품권을 배송했어요. 얼마 안 되는 금액이지만 상사를 볼 면목이 없었어요. 그게 불과 얼마 전인데 며칠 전 또 실수를 했어요. 이번에는 1인 2매씩 영화 쿠폰 증정 이벤트였는데요. 예매 등록번호 한 개당 영화 관람권 2장을 예매할 수 있는데 순간 착각해서 등록번호를 두 개씩 보내 버렸어요. 양심 있는 고객들은 등록번호를 자진 반납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아니었어요. 농담이겠지만 상사가 ‘월급에서 까라’고 하더군요.”
H 씨는 회사 직원들에게 돌아갈 예매 등록번호까지 총동원해 모자란 등록번호를 채우려 했지만 결국 추가 구매를 해야 했다고. 그는 “차라리 내 돈이면 그냥 잊고 말 텐데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는 생각에 사고를 낸 일주일 내내 밥이 안 넘어갔었다”고 전했다. 원단 회사에서 일하는 C 씨(여·32)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발주를 누락해서, 한 번 보낼 거 두 번 보내 퀵 비용이 추가로 들었던 적이 꽤 돼요. 물건을 주문할 때도 필요 없는 양까지 오버해서 발주할 때도 있었죠. 일을 두 번 해야 했지만 그나마 손실 금액이 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좀 더 신경 써야지 하고 넘어갔는데 한번은 실수로 해외배송 사고가 났습니다. 일단 물 건너가는 물품은 배송비가 확 뛰거든요. 가슴이 철렁했죠. 제 실수 때문에 배송비만 50만 원을 추가로 지불하는데 큰 회사도 아니고 진짜 월급에서 제한다고 할까봐 가슴이 콩닥거렸어요.”
100만 원을 넘지 않는 ‘소액’에 얽힌 실수담도 직장인 입장에서는 가슴이 두근거리게 마련. 이런 상황에서 회사에 실수로 ‘거액’의 손해를 입히게 된 직장인들은 발 뻗고 자는 것도 힘들다고 토로한다. 보험 관계 회사에 근무하는 L 씨(29)는 지난 주말 내내 걱정으로 마음 편히 쉴 수가 없었다.
“금액 하나를 잘못 입력해서 회사에 500만 원 넘게 손해를 입혔습니다. 실수를 잘 안하는 편인데 이날은 뭐가 씌었는지 확인을 했는데도 실수를 발견 못했어요. 일단 보고를 하고 나오는데 점심 때 밥 한술 못 뜨겠더라고요. 주말 내내 월요일 회사에서 상사 얼굴 볼 생각을 하니 잠이 안 오더라고요. 그러다 금융권에 있는 친구랑 통화했는데 위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친구는 회사에 억대 손해를 입히고도 회사 잘 다니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좀 위안이 되더라고요.”
L 씨는 친구의 말을 위안으로 삼았지만 최근 회사에 수천만 원대 손해를 입힌 S 씨(28)는 일정부분 책임을 져야할 것 같다며 울상을 짓는다.
“식재료업체에 근무하는데요, 최근에 아주 큰 사고를 쳤습니다. 컴퓨터가 참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도 하지만 이럴 때는 너무 원망스럽네요.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걸려서 중요한 파일은 보호하는 형태로 포맷을 했어요. 그런데 잘못해서 모든 데이터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문제는 납품한 업체에서 받을 돈을 엑셀로 그 컴퓨터에 기록해 놨다는 거죠. 중요한 장부가 몽땅 날아가 버려서 지금 저 때문에 회사가 비상입니다. 데이터 복구업체에 컴퓨터를 맡겼는데 복구가 안 될 경우 손실액만 1000만 원이 넘습니다. 걱정이 돼서 아무 일도 손에 안 잡히고 그저 시간을 되돌리고만 싶네요.”
한순간의 실수로 거액의 손해를 입히는 건 직접 돈을 다루는 재무팀에서 빈번하다. 업무 특성상 더 주의를 하는데도 일이 터진단다. 무역업체 총무팀에서 일하는 Y 씨(여·29)는 얼마 전 어처구니없는 송금 실수를 저질렀다고.
“지금 생각해도 좀 아찔한데요, 퇴직한 직원한테 퇴직금을 두 번 보냈어요. 분명히 다른 두 사람한테 보낸 것 같은데 못 받았다는 연락이 와서 확인해보니 같은 사람한테 간 겁니다. 1000만 원씩 두 번 보냈더라고요. 확인한 순간 바로 두 번 받은 분한테 연락해서 돌려달라고 했는데, 바로 주실 줄 알았더니 줄 수 없다고 하는 겁니다. 어이가 없었죠. 100% 회사의 실수로 받은 건데 왜 돌려주느냐고 강짜를 놓는데 순간 아무 말도 못하겠더군요. 위에 보고하지 않고 조용히 해결하려고 했는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힌 거죠. 너무 당황해서 일단 전화를 끊었는데요, 알아보니 이런 경우 명백히 받은 분이 돌려줘야 한다더군요. 그 얘기 듣고 정말 크게 숨 한번 쉬었습니다.”
방송업계의 J 씨(33)도 비슷한 일을 겪었지만 대신 양심 있는 거래처를 만나 무사히 해결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고객들한테 영상 콘텐츠를 공급하기 위해 매달 미국 회사에 수억 원씩 송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환율을 잘못 계산해서 거의 1000만 원에 가까운 돈을 더 넣었어요. 사실은 저도 그걸 전혀 몰랐어요. 그러다 미국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더 많은 돈이 들어왔다고요. 다음 달에 그 오버된 금액을 제하고 송금을 했는데 그렇게 무사히 넘어가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이처럼 아찔한 실수들로 ‘손발이 오그라드는’ 순간을 많이 겪게 된다. 사람에 따라 한 번 혹은 여러 번이 될 수도 있다. 금융회사에 근무하는 N 씨(여·35)도 많지는 않지만 크고 작은 실수를 했던 경험이 있어 비슷한 일을 당하는 후배들한테 여러 번 조언을 해줬단다. 그는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으니 너무 주눅 들지 말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라”고 충고했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