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형 소재 영화 <신데렐라>의 한 장면.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
문제가 된 마취제는 수면마취에 사용되는 프로포폴로 현재 마약류로 지정되어 있지 않으나 주기적으로 주입할 경우 환각증상 및 중독 증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주로 연예인이나 유흥업소 종사자들이 강남 일대의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 투약해 온 정황을 잡고 지난 6월 3일 편법 투약 혐의가 있는 강남 일대(청담·삼성·신사동 등) 10여 개 병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처방 현황이 기록된 장부와 해당 약품의 입출금 기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예계를 또다시 마약 광풍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사건 속으로 들어가 봤다.
택시운전사인 김 아무개 씨는 “죽고 싶다”는 딸의 전화에 아연실색했다. 지난 1월부터 증권에 손을 댔다가 돈을 잃었다고 하기에 빚진 돈을 변제하라고 6000만여 원을 융자받아 준 터였다. 하지만 김 씨는 딸이 어렵게 자신의 속내를 토로했을 때 다시 한번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다. 프로포폴이라는 약에 중독돼 1년 동안 1억 원을 탕진했다는 것이 딸의 고백이었다. 처음엔 살을 빼기 위해 성형외과를 찾았으나 지방분해 주사제와 함께 수면마취제인 프로포폴을 맞은 게 중독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서울 시내 성형외과를 배회하며 프로포폴을 맞기 위해 한 번 갈 때마다 주사비로 30만~80만 원을 지불한 것이 어느덧 1억 원이 됐다는 것.
김 씨는 딸의 중독을 방관한 채 프로포폴을 주사한 강남 일대의 성형외과를 강남구보건소에 고발했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청과 보건복지부에서 돌아온 답은 ‘해당 약품은 향정신성의약품이 아니기 때문에 처벌근거가 없다’는 것뿐이었다.
프로포폴 중독이 죽음으로 이어진 피해 사례도 있었다. 최근 이 약 때문에 자식이 목숨을 잃었다며 경찰에 수사를 요청한 사례가 접수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피해자의 가족들로부터 “중독자는 한두 명이 아니며 마취용도가 아니라 수면용도로 주사를 놔주는 병원도 적지 않다. 심지어 연예인들도 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혐의가 의심되는 강남 일대의 성형외과 11곳을 압수수색하기에 이르렀다.
기자는 사건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수사 대상이 된 병원 명단을 확보하고 현장을 직접 찾아가 봤다. 이 중 몇 군데는 환자로 위장해 잠입했고, 일부는 기자 신분을 밝히고 취재 협조를 부탁했다. 병원 측의 답변은 방문 목적에 따라 확연히 달라졌다. 6월 8일 찾아간 A 병원은 압구정 내에 위치한 성형외과로 예약시간을 미리 잡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성업 중이었다. 병원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저희 병원은 모든 시술에 무통증의 수면마취를 하고 있습니다’라는 광고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 간호사는 “지방흡입, 보톡스, 가슴성형이 하루 만에 가능하다”며 “세 가지 시술을 마치려면 1시간가량이 걸리는데 이 과정에서 수면마취를 통해 시술하기 때문에 잠을 자고 일어나면 끝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면 마취제로 쓰이는 프로포폴은 1회 적정사용량이 40mg으로 정량대로라면 10분 정도의 지속력을 가진다.
기자가 중독과 사망에 대한 우려를 언급하자 간호사는 여자 연예인들의 실명을 귀띔하며 “워낙 자주 시술을 하다보니 프로포폴 투여 횟수가 잦아 중독증상을 보일 뿐이다”고 말했다.
뒤이어 방문한 B 여성의원은 A 병원에 비해 다소 한산한 분위기였다. 몇 명의 여성만이 앉아 있었는데, 대화내용으로 봐서는 유흥업소에 다니는 여성으로 보였다. 원장과 상담하면서 ‘프로포폴을 구할 수 있냐’고 질문하자 “검찰이 압수수색을 했다. 조사 중이라 지금은 안 된다”고 말했다. 기자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원장은 간호사에게 차트와 해당 방문기록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6월 9일에는 기자의 신분을 밝히고 C, D, E 성형외과와 여성의원을 방문했다. 프로포폴에 대해 묻자 이들 의원들은 하나같이 억울함을 토로했다. 환자들의 통증을 줄여주기 위해 마약으로 분류되지 않은 약품을 쓴 것이 왜 죄가 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C 성형외과 원장은 “검찰 수사 기준이 뭔지 모르겠다. 레이저나 지방흡입주사의 경우 통증이 심하기 때문에 시술 때 해준 것뿐이다. 사실 치료용이 아니라 수면용으로 제공한 것은 산부인과나 여성의원 쪽이다. 그곳에 가면 그 약만 놔주는 데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술 때 환자들이 오히려 프로포폴을 먼저 찾고 요구한다. 차라리 하루빨리 마약류로 분류됐으면 좋겠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D 성형외과 K 원장은 “사망자와 중독 환자 두 명이 우리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며 “검찰이 수사해 보면 알겠지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환자들이라 황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K 원장은 프로포폴에 대한 애매한 규정이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부 병원은 심지어 프로포폴을 링거에 넣어 따로 판매하는 곳도 있는데 문제가 되는 곳은 바로 그런 곳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당국은 작년부터 프로포폴을 마약류로 분류하는 작업을 진행했는데 제약회사들의 반발에 부딪혀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며 “당국에서 막지 못한 것을 의사들이 막지 않았다고 처벌하는 것은 순서가 어긋난 것이 아니냐”고 반박했다. 이 병원에는 몇몇 연예인들의 친필사인이 걸려 있었다.
6월 10일 기자와 통화한 식약청 마약류관리과 관계자는 “약물에 대한 연구사례가 부족해 지속적으로 그 효과나 효능을 검증 중이다”고 말했다.
한편 식약청은 지난 8일 내달 약사심의위원회를 열고 프로포폴을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하는 안건을 상정해 심의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안건이 통과될 경우 앞으로 프로포폴은 마약류로 지정돼 관련법의 규제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6월 11일 기자와 통화한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관계자는 “조사기간이 두 달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있으며 프로포폴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 병원 측이나 중독자에 대한 처벌여부는 조사가 끝나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프로포폴의 마약류 지정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검찰의 성형외과 수사 불똥이 과연 연예계로 튈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