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노무현 대통령 조카 양 아무개 씨가 협박 피해 사실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지 사진으로 기사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
양 씨는 2007년 9월 김 씨와 조 씨가 자신이 노 전 대통령 친인척이라는 사실을 악용해 모두 1억 8000만 원을 갈취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 5월 26일 일당 중 도피 중인 김 씨에 대해서는 체포영장을 발부한 상태라고 밝혔다.
경찰조사에서 양 씨는 노 전 대통령의 명예에 피해가 갈까봐 침묵하다 2년여 만에 피해사실을 털어 놓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의 친조카인 양 씨가 복잡한 사기·협박 사건에 휘말린 내막을 들여다 봤다.
2007년 9월 양 씨는 고등학교 후배 A 씨로부터 ‘술이나 한잔 하자’는 연락을 받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평소 자주 연락을 주고받을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기에 그날도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러던 중 A 씨는 양 씨에게 “사정이 딱한 지인이 있다”며 술안주 삼아 김 씨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제조업 분야에 뛰어들려는 김 씨가 어렵게 모은 자금으로 공장을 지으려 하는데 부지 매입까지 마친 상태에서 공사 자금이 부족해 정작 공장을 짓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내용이었다. A 씨는 자금 문제가 해결돼 공장이 지어지면 김 씨는 단숨에 빚을 갚을 수 있을 정도로 비전 있는 사업가라는 설명을 곁들여 양 씨에게 부동산 담보 대출을 대신 받아주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이어 A 씨는 평소 양 씨가 알고 지내던 금융권 브로커 B 씨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하면서 “형님이 오랜 시간 알고 지내는 금융권 브로커가 있으니 그를 통한다면 대출은 손쉽게 이루어질 것이다. 더군다나 형님은 현직 대통령의 친척이 아닌가”라며 양 씨를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오래 알고 지낸 고향후배이자 고등학교 후배인 A 씨가 거듭 ‘김 씨를 만나서 이야기라도 한번 들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자 양 씨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양 씨는 A 씨와 함께 김 씨와 조 씨를 만나게 됐다. 이 자리에서 김 씨와 조 씨는 양 씨에게 구체적으로 자신의 상황과 사업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앞으로 제조업 분야에 뛰어들 계획이고 현재 진행할 사업도 몇 개 따낸 상황”이라며 “공장이 만들어지고 물건만 생산해낸다면 금방 대출금액을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특히 김 씨는 양 씨에게 계약금 용도로 7000만 원을 당장 입금시켜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이날 양 씨에게 공장설립 대금으로 부탁한 대출금액은 모두 45억 원이었다. 작은 규모로 사업을 하고 있는 양 씨는 자신이 대출을 받아내기에는 벅차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김 씨와 조 씨의 설득에 넘어가 대출 부탁을 받아들였고, 7000만 원을 건네 받았다. 또 이 금액 중 일부를 지인이었던 금융권 브로커인 B 씨에게 로비자금으로 건네준 후 자신의 명의로 45억 원을 대출받을 수 있는 제2 금융권을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일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금융권 브로커인 B 씨는 며칠 후 “대통령의 친인척이라 할지라도 현재 양 씨의 재산내역이나 신용등급을 감안하면 45억 원을 대출받는 것은 무리다”며 “현실적으로 대출이 불가능하다”고 통보했다. B 씨는 양 씨에게서 로비자금으로 받은 금액도 고스란히 돌려줬다. 그러자 양 씨 역시 “안타깝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고 김 씨에게 상황을 전한 후 건네받은 돈 7000만 원을 돌려줬다고 한다.
하지만 대출이 애초 약속대로 이뤄지지 않자 김 씨와 조 씨는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양 씨가 현직 대통령의 친인척이라는 점을 이용해 도움을 받고자 했던 두 사람은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이점을 이용해 오히려 양 씨를 협박하기 시작한 것. 두 사람은 “이건 엄연한 계약 위반이다. 7000만 원만 돌려준다고 해서 끝날 일이 아니다”며 양 씨를 압박했다. 김 씨와 조 씨는 양 씨에게 정신적 피해보상과 함께 위약금을 물어달라며 7000만 원 이상을 요구했다고 한다.
양 씨는 김 씨와 조 씨가 협박하자 처음에는 거듭 “사기를 친 사실이 없으며 지금 사기 협박을 받고 있는 내가 피해자”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 씨와 조 씨는 막무가내였다. 그들은 양 씨에게 “현직 대통령 조카인 점을 이용해 이렇게 일반인에게 사기를 치고 다녀서야 되겠냐”며 “노무현 대통령 친조카가 사기를 치고 다니는 사실을 언론과 방송사에 폭로하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씨는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명예에 피해가 갈까봐 입막음을 할 목적으로 3000만~4000만 원을 건네줬다. 양 씨가 협박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자 두 사람은 더욱 대담해졌다. 이들은 이후 세 차례에 걸쳐 모두 1억 8000만 원 상당을 갈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양 씨는 이후에도 피해사실을 신고하지 못하고 속앓이를 해오다 지난 5월 25일에야 경찰에 신고했다.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부산경찰청 강력부 폭력계 김영철 팀장은 6월 11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현재 김 씨는 도피 중으로 확인돼 부산지방검찰청으로부터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황이고, 조 씨의 경우는 도피 사실이 불명확해 체포영장이 기각됐다. 현재까지는 양 씨와 고향 후배인 A 씨, 금융권 브로커 B 씨의 진술만 확보된 상태”라며 “가해자로 지목받고 있는 김 씨와 조 씨의 진술을 들어야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양 씨는 경찰조사에서 “사기를 당했을 당시 즉각 경찰에 알리고자 했지만 외숙부인 노 전 대통령이 임기 말에 극심한 도덕성 논란에 휩싸인 상황이라 피해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속앓이를 해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