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 위치한 A 중공업은 가스운반선, 해양시추지원선 등을 건조하는 업체로서 지난해 매출이 5300억 원에 이르는 국내 10위권, 세계 100위권의 조선업체다.
작은 철공업체로 시작한 이 회사는 1999년 조선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이후 불과 10여 년 만에 국내 조선업계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화학제품운반선은 세계 시장 점유율 80%를 기록하고 있으며 다른 특수선 건조 분야에서도 유명한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물산도 이 회사의 4대 주주에 해당한다.
대기업이라 해도 무색하지 않을 규모를 자랑하는 A 중공업에 대해 처음부터 검찰의 칼끝이 향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회사 전체와 대표이사에게 검찰 수사의 불똥이 튄 것은 회사 임원이 하청업체 임원으로부터 받은 리베이트 관행이 덜미를 잡히면서부터다.
울산지검 특수부는 A 중공업에 선박자재를 납품하는 B 중소기업의 실질적 사주 박 아무개 씨가 납품대가 명목으로 A 중공업 임원 김 아무개 씨에게 2억 원의 리베이트를 줬다는 혐의에 대해 올 2월 수사에 착수했다. B 중소기업은 매출의 대부분을 A 중공업과 그 계열사에 의존하고 있었던 터라 리베이트 등이 거의 관행화되어 있었다는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이 김 아무개 씨가 받은 리베이트의 사용처 등을 들여다보면서 사건은 A 중공업 전체로 확대됐다. 만약 리베이트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없었다면 A 중공업이 벌인 희대의 분식회계와 사기 대출은 드러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검찰 수사진이 A 중공업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회계 장부를 분석하자 전형적인 기업 범죄들이 굴비 엮듯 줄줄이 흘러나왔다. 검찰이 청구한 영장에 따르면 A 중공업 노 대표는 특별경제가중처벌법상 사기, 배임뿐만 아니라 주식회사 외부 감사와 관련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먼저 A 중공업은 사실상의 계열사인 D 사로부터 선박 관련 공사를 하도급하고 대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공사대금 64억 원을 지급한 것처럼 회계처리하고 이를 비자금으로 조성했다.
또한 지난 2년간 매출 1778억 원과 영업이익 1620억 원을 과대계상하는 식으로 장부를 조작해 이를 금융감독원에 공시했다. 이러한 분식회계를 바탕으로 A 중공업은 총 11개 은행으로부터 3288억 원을 부당대출 받기도 했다.
실제로 이 회사의 감사보고서 중 지난 2년간의 단기 차입금만 따져보면 2008년까지는 5개 은행으로부터 400억 원 정도의 대출을 받은 게 전부였지만 2009년 감사보고서에는 총 11개 은행으로부터 1600억 원을 대출받은 것으로 돼있다. 불과 1년 사이에 4배가 넘는 금액을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셈이다. 물론 여기에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조선 산업이 치명타를 입은 영향도 없지는 않다. 실제로 이 회사는 지난 해 6월 최종부도 위기까지 몰렸다가 겨우 회생했다. 이 회사를 감사한 회계법인도 감사보고서에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능력에 대해 중대한 의문을 제기한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2008년까지 3년간 회사를 감사한 회계법인은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A 중공업에서 손을 뗐다. 문제는 공시된 감사보고서에서 회사 재정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음에도 시중 은행들이 이 회사에 선뜻 거액의 대출을 해줬다는 점이다. 이 회사가 지난해 기준으로 4조 원가량의 수주 잔량이 남아있었다고는 하나 한때 부도 위기에 놓였을 만큼 재정적인 상황은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은행 대출 과정에서의 부당한 압력 유무와 조성한 비자금의 용처 파악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검찰은 이 회사가 정치권과 유착됐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구속된 A 중공업 노 대표는 지난해 지식경제부가 주관하는 수출의 날 기념행사에서 수상을 한 전력이 있는가 하면 현직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을 비롯해 일부 여권 실세와 적지 않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2007년에는 여권 실세와 관련 있는 대기업 임원 출신을 대표이사로 앉히는 등 현 여권과의 접촉점이 적지 않다.
검찰은 이 회사 대출의 3분의 1가량이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압력이 어떤 식으로든 있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때문에 검찰은 노 대표가 조성한 비자금 등이 정치권에 뿌려졌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관련 계좌를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 지역 중소기업들이나 은행들은 이번 검찰 수사가 어디로 불똥이 튈지 지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A 중공업의 대표이사가 구속된 데다 막대한 규모의 분식 회계가 드러난 만큼 회사 존속이 어렵지 않겠냐는 소문도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A 중공업이 흔들릴 경우 지역 협력 업체들의 연쇄 부도로 이어져 울산지역 경제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또한 이 회사에 수백 억대를 대출해 준 시중은행의 경우도 자칫하면 본전도 못 건질 위기에 놓여 있다.
회사 임원의 관행적인 리베이트 수수가 단초가 돼 시작된 검찰의 수사 칼끝이 울산지역 정·관계를 넘어 여권 실세까지 겨냥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