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빼어난 풍경속 고즈넉한 여유 만끽…역사의 숨결속으로
경주 둘레길 10개 구간(사진=경주시 제공)
[경주=일요신문] 경북 경주 둘레길은 가을의 정취를 듬뿍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산과 들, 호수, 바다를 배경으로 곳곳에 자리한 천년 세월을 품은 다양한 유적지를 만나 볼 수 있는 경주만의 독특한 매력을 지닌 곳으로 유명하다.
혼자서도 좋고 가족과 함께라면 더 좋다.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한적한 길을 걸으며 고즈넉한 여유 속에 힐링하고, 찬란한 천년 역사 문화의 따뜻한 숨결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노천박물관으로 천천히 발길을 옮겨보자.
경주의 아름다운 둘레길에서 고즈넉이 거닐며 가을 단풍 같은 추억을 한가득 담아보자.
# ‘경주읍성길’ – 신라 이후 경주 역사 잇는 길
경주읍성길 ‘서봉총’(사진=경주시 제공)
신라시대 이후 지방통치의 중심지 역할을 한 경주읍성을 중심으로 고려 시대 객사인 동경관, 조선시대 태조의 어진을 모셨던 자리 등 오랜 세월을 견뎌온 크고 작은 유적들을 찾아가는 길이다. 도심지 현대식 건물 사이에서 신라부터 조선까지 이천년의 세월을 고고하게 이어온 경주의 역사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지나는 길에 위치한 경주역 앞 성동시장은 푸짐한 먹거리가 즐비해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손맛이 듬뿍 담긴 반찬들을 원하는 만큼 덜어 먹을 수 있는 뷔페식 한식식당과 짭짤하게 조린 우엉을 김밥과 곁들여 먹는 우엉김밥이 특히 유명해 시장기를 달래기 좋다. (법장사-서봉총-금관총-경주문화원-동경관-집경전지-향일문-성동시장-경주역. 거리 2.6㎞, 소요시간 40분)
# ‘선덕여왕길’ – 자연에 안긴 역사의 향기
선덕여왕길 ‘겹벗꽃길’(사진=경주시 제공)
보문교 삼거리 쪽 명활성 아래부터 시작하는 길이다. 명활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의 다섯 지구 중 한 곳(산성지구)이다. 진평왕릉으로 향하는 오솔길은 옆으로 개울이 흐르고 꽃나무가 끝없이 이어진다. 진평왕릉은 보통의 왕릉처럼 화려한 장식 대신 크고 작은 나무에 둘러싸여 찾아온 이들을 편안하고 넉넉하게 품어준다. 진평왕릉 앞으로 푸르게 펼쳐진 풀밭에 서 있는 큰 나무 아래서 꼭 쉬어가길 권한다. 수평으로 길게 뻗은 큰 가지 아래 운치있게 놓인 벤치는 절대 놓치면 안될 포토존이다. 황복사지삼층석탑과 선덕여왕릉으로 가는 길은 흡사 누렇게 익은 너른 가을 들판 사이로 헤엄쳐 나아가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평화롭고 드넓은 가을 평야가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축복이 내리는 길 위로 조용히 거닐며 사색에 잠길 수 있는 여정이다. (명활성-겹벚꽃 산책길-진평왕릉-황복사지-선덕여왕릉, 거리 6.1㎞, 소요시간 1시간40분)
# ‘신라왕경길’ – 신라 문화 중심지에 서서 느끼는 여유
신라왕경길 ‘동궁과월지’(사진=경주시 제공)
신라의 수도 경주는 천년 수도이다. 세계사에서도 한 나라의 수도가 한 번도 바뀌지 않고 천년을 이어온 경우는 매우 드물다. 신라 왕실은 어떻게 서라벌에서 오랜 세월 기세를 떨칠 수 있었을까? 경주시에서는 천년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올바로 이해하고 우리 민족의 위대한 얼을 되살려 후대에 제대로 물려주기 위해 신라왕경 핵심유적을 복원·정비하는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신라왕경길 코스는 성덕대왕신종을 현대의 기술로 재현한 신라대종공원에서 시작된다. 경주관광의 메인 플레이스인 대릉원 돌담길을 지나 첨성대, 계림 숲을 지나면 신라 역대 왕들의 궁궐이 있던 자리인 월성에 다다른다. 현재 월성은 성터를 발굴·복원하는 작업이 한창이어서 직접 현장을 보는 특별한 경험은 덤이다. 신라시대 왕들의 생활을 상상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동궁과 월지가 눈 앞이다. 시간을 잘 맞추어 해질녁에 도착한다면 아름답고 신비한 동궁과 월지의 야경을 만날 수 있다. 과거 신라시대로 돌아가 찬란했던 신라의 중심에 한 발 더 가까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신라대종-대릉원 돌담길-첨성대-계림-월성-동궁과월지, 거리 3.6㎞, 소요시간 1시간)
# ‘보문호반길’ – 마음 틔우는 크고 둥근 길
보문호반길 ‘보문호산책길’(사진=경주시 제공)
보문호수는 경주시 동쪽 명활산 옛 성터 아래에 만들어진 인공 호수로 165만 m²의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한다. 호반길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산책로와 자전거 길 가에 가을의 손길이 닿기 시작한 벚나무 잎이 살랑거리며 방문객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순환 탐방로에는 다양한 볼거리와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며 쉬어 갈 수 있는 벤치, 쉼터가 곳곳에 자리해 있다. 특히 보문단지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아치형 상부 구조가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어지는 물너울교를 건너면 넓게 펼쳐진 호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사랑공원-수상공연장-호반광장-호반교-징검다리-물내항쉼터-물너울교, 거리 6.5㎞, 소요시간 1시간45분)
# ‘파도소리길’ – 드넓은 바다로 뻗은 주상절리의 절경
파도소리길 ‘주상절리’(사진=경주시 제공)
경주 양남면 하서항과 읍천항을 잇는 길로 드넓게 펼쳐진 청정 경주 동해바다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시원한 파도 소리와 함께 걷다 보면 오랜 세월이 겹겹이 쌓인 아름다운 주상절리를 만날 수 있다. 여러 가지 모양의 주상절리가 모여 있는 양남 주상절리군은 세계적으로 드문 부채꼴 형상의 주상절리가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평탄한 해안 산책길이라 쉽게 걸을 수 있으며, 거대한 해안 암석 틈에 비죽 자라난 소나무같은 신비로운 자연의 힘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천연 건축물’을 감상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읍천항-출렁다리-주상절리전망대-부채꼴주상절리-몽돌길-주상절리-하서항, 거리 1.7㎞, 소요시간30분)
# ‘감포깍지길1구간’ – 바다와 마을에 안긴 정겨움
감포깍지길1구간 ‘감포항’(사진=경주시 제공)
감포깍지길 1구간 중에서도 전촌항부터 송대말등대까지 잇는 코스로 부드러운 소나무 숲 능선을 따라 기이한 해식동굴인 용굴을 만날 수 있다. 정다운 어촌 마을을 지나며 호젓한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코스다. 감포항에 다다르면 근처 해국길도 들러보자. 오래된 골목에 남은 일제 강점기의 적산 가옥과 해안 절벽에 피는 해국(海菊)이 그려진 벽화를 바라보면 어려운 시절을 버티며 살아온 감포 사람들의 절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전촌항-용굴-해국길-감포항-송대말등대, 거리 4.7㎞, 소요시간 1시간)
# ‘기림사 왕의길’ – 발걸음마다 깃드는 역사의 숨결
기림사왕의길 ‘왕의길가는길’(사진=경주시 제공)
죽어서도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한 문무왕의 장례길이자, 신문왕이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대왕암으로 향하던 길이라 ‘신문왕 호국행차길’로도 불린다. 모차골, 수렛재, 세수방 등 가는 길 지명마다 그 흔적이 남아 있으며, 울창한 나무 사이 오솔길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함께 신문왕이 따르던 충과 효, 그리고 이 길을 거닐던 선조들의 오랜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왕의길주차장-모차골-수렛재-세수방-불령-삼거리-용연폭포-기림사, 거리 5.9㎞, 소요시간 3시간)
# ‘토함산바람길’ – 푸른 하늘과 어우러진 하얀 바람개비
토함산바람길 ‘경주풍력발전소’(사진=경주시 제공)
토함산 옆에 위치한 조항산 정상부의 경주 풍력발전소 인근 산책길이다. 풍력발전소까지는 꽤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가야 하니 차를 타고 가는 것이 좋다. 풍력발전소 주차장 아래 산등성이를 따라 걸을 수 있는 길을 걸으면 굽이치는 능선과 푸르른 하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멀리 바람개비처럼 보이던 풍력발전기는 가까이서 보면 웅장한 크기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문무대왕릉과 감포 바다에서 석굴암, 불국사로 가는 길목에 있어 하루 일정으로 찾는 사람이 많다. 특히 노을이 지는 황혼 녘, 발전소 주위를 따라 난 길로 늘어선 바람개비들이 바람에 돌아가며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토함산바람길, 거리 1.5㎞, 소요시간 30분)
# ‘동남산가는길’ – 천년 신라의 이야기를 만나다
동남산가는길 ‘산림환경연구원’(사진=경주시 제공)
경주 동남산을 중심으로 한 둘레길로 걷다 보면 신라와 통일신라를 잇는 역사 속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자식의 효심이 담긴 춘양교지, 삼국 통일에 공을 세운 신라 장군과 왕의 영정을 모신 통일전, 왕을 해하려는 계략을 막는 데 도움을 준 쥐와 까마귀의 설화가 담긴 서출지까지. 머릿속으로 옛 이야기의 흐름을 그려보며 발걸음을 옮겨 보자. 동남산 일대에는 부처골 감실불상, 미륵골 마애여래좌상 등 신라 불교 문화재가 많이 모여 있으니 그 흔적을 따라가 보는 것도 좋다. (월정교-남산불곡마애여래좌상-남산탑곡마애불상군-경북산림환경연구원-화랑교육원-통일전-서출지-남산동동서삼층석탑, 거리 7.32㎞, 소요시간 2시간10분)
# ‘삼릉 가는 길’ – 신라의 시작과 끝을 따라 걷는 길
삼릉 가는 길 ‘삼릉’(사진=경주시 제공)
40여 개의 골짜기가 굽이치는 남산은 예부터 신라인들이 신성시하는 곳이었고, 그 역사가 지금도 곳곳에 서려 있다. ‘동남산 가는 길’에서 남산의 동쪽을 따라 걸었다면, ‘삼릉 가는 길’은 신라의 흥망성쇠를 모두 담은 남산의 서쪽 부분을 둘러보는 코스다. 알에서 태어난 비범함으로 서라벌을 건국한 박혁거세의 탄생 설화가 깃든 나정, 그와 그의 왕비가 잠든 능이 있는 오릉, 그리고 신라가 가장 번성했던 헌강왕 때의 연회 장소인 포석정지. 신라의 시작부터 가장 흥했던 시기를 지나 저물어가는 순간까지 모든 역사를 지켜본 땅 위를 담담히 거닐어보자. 특히 이번 코스는 자전거를 타고 둘러보기에도 좋은 코스이다. 코스의 마무리인 삼릉에 다다르면 잠시 자전거를 세워두고 우거진 솔숲을 걸어보는 여유를 느껴보자. (월정교-천관사지-오릉-양산재-나정-포석정지-삼불사-삼릉, 거리 8.9㎞, 소요시간 2시간30분)
코로나19 시대 가장 안전한 언택트 힐링 여행의 성지, 경주 둘레길이 대세이다.
최창현 대구/경북 기자 ilyo0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