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연예술사> |
요즘은 트위터가 대세. 개인의 사회적 백그라운드가 엿보이는 트위터 덕분에 온라인 연애가 다시금 후끈 달아올랐다. 소식이 궁금하던 옛 지인을 찾아 자연스럽게 말을 걸거나, 전혀 모르는 사이였어도 마음에 드는 남자 혹은 여자에게 말을 걸어 ‘번개 만남’을 가지는 것. 재미있는 것은 전혀 모르는 남녀일수록 온라인상에서 상대에 대한 판타지가 점점 커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막상 번개를 하게 되면 혼자서 키워온 환상이 깨지면서, 상대에게 실망하게 된다.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온라인상에서는 박학다식한 문화 상식을 엿보는 게 그의 세련된 취향을 엿보는 매개가 되지만, 오프라인에서 음악 혹은 스포츠 지식을 나열하는 융통성 없는 남자는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즉 대화의 재미를 모르는 남자는 비호감인 셈. 원나이트스탠드를 위해 만났다면 남녀가 만나서 대화가 무슨 소용이냐고? 내가 “그와는 말이 안 통해. 당최 재미가 없어서 2시간 정도 술 마시다가 급히 일어났어”라고 말하면, “몸으로 대화하면 되지 않냐”고 우스갯소리를 던지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섹스=센스’라는 게 내 지론이다. 대화가 안 통하면 몸도 안 통하는 것이 대부분. 알아듣기 쉬운 언어로 말을 해도 못 알아듣는 남자가 몸의 언어를 알아들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내가 1을 말하면 아홉 단계를 뛰어넘어 10을 대답할 줄 아는 남자야말로 대화도, 몸도 잘 통한다.
모든 여자가 원나이트스탠드를 염두에 두고 ‘번개 만남’을 갖는 건 아니지만, 나이 든 싱글녀가 오프라인 약속을 정할 때에는 내심 ‘마음에 들면 잘 수도 있는 거지’라는 마음일 것이다. 최근 트위터에 재미 들린 선배 A도 마찬가지였다.
A는 트위터에서 긴 대화를 주고받던 남자 B와 오프라인 약속을 정한 후 나를 호출했다. “둘이 만나는 건 너무 속보이잖아. 너도 나와라”라는 게 그녀의 요청이었고 나는 A를 칭찬하다가 ‘약속이 있다’며 눈치껏 빠져나오는 속 보이는 전략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트위터에서는 근사해 보였던 B와 대화가 길어지면서 A는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너, 오늘 절대 먼저 가면 안돼”라는 것이 그녀의 요청. A는 B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럴 만도 했다. B는 일단 패션센스가 꽝이었다. 차라리 촌스러우면 ‘남자가 다 그렇지, 뭐’라고 귀엽게 봐줄 만한데, 어찌나 멋을 냈는지 마주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나, 센스 넘치지?’라고 강요하는 듯한 그의 옷차림을 보면서 나는 ‘이 남자는 섹스를 할 때도 자만심만 넘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가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섹스를 할 타입이 아닐까 싶었던 것.
게다가 B와의 대화도 너무나 재미가 없었다. 자기자랑에 여념이 없었던 그는 재미없는 경험담을 끝도 없이 내뱉었다. 예의상 대화에 장단을 맞춰주는 나와 A의 노력을 그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고, ‘이제 그만 일어날까요?’라는 말하지 못하는 마음 약한 A 덕분에 나는 그날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아마도 B는 대화의 기술이 부족한 남자였을 것이다. 잠시의 어색함도 참지 못하고 대화를 이어가다보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나? 그러다보니 그것을 만회하려고 또 말을 하게 되고, 악순환이 되는 것. 하지만 B는 대화를 잠시 멈추었어야 했다. 그리고 과묵하게 술을 마시는 시간을 가졌어야 했다. 그랬다면 어색한 시간은 잠시, A와 내가 그에게 말을 걸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우리는 서로 소통하는 대화를 하지 않았을까. 아무리 달콤한 밀어, 위트 있는 유머를 잘 구사하는 남자라도 일방적으로 떠든다면 여자는 결국 남자에게 질린다. 말할 기회를 잃은 여자가 따분해지는 것은 시간문제 아니겠나. 반면 말주변이 좀 부족해도 여자의 말을 잘 들어주고 따뜻하게 조언해주는 남자는 깊이 있어 보여서 여자들에게 인기다. 내 장점을 내세우는 것보다 상대의 장점을 찾아내고 제대로 인정하는 남자야말로 멋져 보인다.
마지막 조언. 첫 만남에서는 대화의 주제가 좁고 깊은 것보다 얕더라도 넓은 게 좋다. 상대의 취향을 알아낼 수 있으니까. 그러니 첫 섹스에서 스스로 자신 있는 몇 가지의 체위를 고집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다양한 체위를 구사하면서 여자의 성적 취향을 알아내야 한다. 섹스란 두 사람이 함께 즐기는 것, 그리고 서로를 위로하고 위로받는 애정표현이다. 제발, 여자의 제스처를 귀담아 들어주는 남자로 거듭나시길.
박훈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