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세를 읽어야… 지난 11일 ‘비상경제대책회의 겸 고용전략회의’에 참석한 윤증현 재정부 장관과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 청와대사진기자단 |
지난 9일 정부 과천청사 기획재정부 기자실에서는 예정에 없던 브리핑이 있었다. 이날치 <한겨레>가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의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이명박 정부의 감세가 고소득층에게 이익을 가져다준 부자감세’라는 기사에 대한 해명 자리였다. 언론 보도에 해명자료만 내는 일반적인 대응과 달리 이날은 김낙회 조세정책관(국장)이 직접 해명자료를 가지고 내려와 기사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날 김 국장은 “2009년부터 시행된 소득세율 인하조치는 상대적으로 저소득계층의 경감률이 더 크도록 설계됐다. 평균 소득의 67%인 저소득층의 경우 소득세부담 감소규모가 23.5%지만, 평균소득의 167%인 고소득층은 감소률이 5.2%에 불과하다”면서 “1만 원 받은 사람이 2000원 줄어든 것과 100만 원 받은 사람이 5만 원 줄어든 것은 액수로만 보면 100만 원 받은 사람이 많이 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혜택은 1만 원 받은 사람이 더 누린 것”이라고 기자들에게 일일이 수치까지 들어가며 설명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세부담 증가율이 고소득층으로 가면 갈수록 급격하게 늘어나는 추세라는 것을 표현한 그래프까지 별도로 마련해 오기까지 했다.
이어 15일에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과천청사에서 열린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서민의 체감경기가 아직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하반기에는 최근 경기회복 흐름을 계속 유지해가는 한편, 중도 실용 친 서민 정책 기조 아래 지표경기의 개선이 서민생활의 안정으로 연결되도록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정부가 서민을 다시 강조하게 된 이유를 보여준 것은 지난 9일 해명 브리핑이 끝난 뒤 이어진 김 국장의 말이었다. 그는 “정부의 올해 세제개편안 기조는 (최대한) 그대로 유지해나갈 것이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통해 나타난 민심을 겸허히 받들어 2010년 세제개편안에 받아들일 것은 충분히 수렴해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정부 관리가 아니라 선거에서 진 한나라당의 중진 의원이 할 법한 말을 한 셈이다.
이 발언에는 또 다른 의미도 숨어 있다. 윤 장관이 재추진을 언급했던 술과 담배에 대한 세금 인상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정부는 담배세와 주세에 ‘죄악세’라고 이름 붙여 인상을 추진했지만 서민생활에 부담이 된다는 반대에 부닥쳐 접어야 했다. 이후 유럽 재정위기가 터진 뒤 정부의 재정건전성 문제가 최근 글로벌 경제의 핵심 이슈로 떠오르면서 담배세와 주세 인상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러나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데다 7월 재·보궐 선거, 총선, 대선 등이 줄줄이 남아있는 상태여서 더 이상 서민층이 등을 돌리게 하면 안 된다는 판단에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관측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빠르게 극복하면서 정부가 당연히 서민들의 삶도 나아지고 있다고 섣부른 판단을 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 서민들의 삶은 금융위기 이후 악화일로였고, 이는 6·2 지방선거에서 정부에 대한 견제심리와 합쳐지면서 여당에 참패를 안겨줬다. 한나라당이 말로만 떠들 뿐 실제 서민들의 삶에 관심이 없다고 본 셈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선거 이후 강남시장이라고 불리는 것은 이러한 서민의 감정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산층과 서민을 강조하면서 최근 급격하게 오르고 있는 물가에도 정부는 신경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올해 들어 채소가격을 중심으로 장바구니 물가가 급등하고 있고, 통화량 관련 지표들은 향후 물가 상승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 5월 신선채소 가격은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14.1%나 올랐다. 파(78.2%)와 시금치(60.6%), 무(55.1%), 상추(35.8%), 미나리(32.9%) 등의 가격 상승세가 가파르다. 여기에 현대경제연구원과 한국금융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경기 과열이나 통화 유통속도 상승으로 물가 상승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정부는 물가상승이 서민들을 다시 자극할까 전전긍긍이다. 5월 물가지표가 공개된 직후 정부는 “농축수산물은 기후여건이 개선되면서 채소류 가격이 (전월 대비) 하락세로 전환되고, 수산물 가격 상승세도 둔화되는 등 전반적으로 안정세를 이뤘다”는 다소 현실과 동떨어진 분석 자료를 내놓았다. 급격하게 오른 물가를 보여주는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한 수치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정부는 하반기에는 경제성장보다는 물가안정에 주력한다는 밑그림까지 그려놓은 상태다. 임종룡 재정부 1차관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고용지수도 좋아질 것이고 성장률도 올라가는데 (성장률 전망치가) 5.5%냐 5.6%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제 주목해야 하는 지수는 물가”라며 하반기에 물가 안정에 주력할 것임을 시사했다. ‘서민’ 점유를 위해 최전방 공격수로 나선 경제부처가 ‘골’을 넣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서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