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는 올 들어 무게감 있는 금융계 수장 자리에 공석이 생길 때마다 후보 영순위로 물망에 올랐다. 금융계 수장 자리에 처음으로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던 것은 지난 3월 중순부터. 3월 31일부로 임기를 마무리하는 한국은행 이성태 총재의 뒤를 이을 유력한 후보로 어 위원장이 거론됐던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김중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부 대사를 한국은행 총재로 내정한 이후 관가와 금융권에서는 ‘어 위원장에게 또 다른 금융계 수장 자리가 약속돼 있다더라’는 루머가 돌았다. 당시 어 위원장이 내정된 자리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공석으로 남아있던 KB금융 회장직이 었다.
이처럼 어 위원장의 KB금융 회장 내정설이 기정사실처럼 퍼지자 청와대에서는 이에 대한 ‘입단속’에 나서기도 한 것으로 알려진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표적인 친 MB 성향 인물인 어 위원장의 이름이 KB금융 회장 하마평에 벌써부터 오르내리자 청와대에서 부담을 느꼈다는 것. 당시 정부기관 관계자는 “정부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관치금융 논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특정 후보’의 이름이 나오는 것에 대해 입단속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이후 한때 ‘제3 후보론’이 힘을 받기도 했다. 6·2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후 “어 위원장 외에 다른 후보가 KB금융 회장 자리에 선택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 것. 지방선거에서 민심 이반을 맛본 정부가 다시금 관치금융 논란에 휩싸일 위험을 무릅쓰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었다. 이에 정권과 다소 거리가 있는 후보를 정부에서 밀어줄 것이란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지난 17일 명동 KB금융지주 본사 로비에서 KB노조가 어윤대 신임 회장 내정자(왼쪽)를 거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KB금융 내부에서는 회장직이 드디어 채워졌다는 것에 우선 환영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계속된 회장 선임 실패로 회장직 공석이 무려 9개월 넘게 지속되면서 KB금융 내부에서는 이로 인한 업무효율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왔다. 실제 지난해 자산규모에선 우리금융지주에 밀리고 수익성 면에서는 신한금융지주에 뒤지는 등 수모를 당하자 최고 결정권자인 회장의 필요성이 더욱 간절하다는 내부 목소리가 높았다.
KB금융의 한 관계자는 “당장 처한 난관을 극복하기에는 대행 체제에서도 가능하겠지만 장기적인 플랜을 세우는 데 부족함이 있었다”면서 “그동안 회장 내정이 10월까지 미뤄진다는 설이 나오는 등 내부적인 불안감이 높았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내정자가 빠르게 결정됐다는 점에서는 다행”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KB금융 내부에 어 내정자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노동조합은 어 내정자를 ‘낙하산 인사’로 규정하고 18일 현재까지 회추위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상태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노조·위원장 유강현) 조합원 30여 명은 앞서 6월 15일 면접 당일 “후보자 중 누가 선출되더라도 친 MB 정권의 낙하산 인사”라며 KB금융 본사 로비에서 농성을 벌였다.
이처럼 KB금융 직원들이 어 내정자에 대해 반감을 보이고 있는 데에는 그가 우리금융과의 합병에 강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앞으로 우리은행과 합병을 하게 되면 현 KB금융 구조상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수반될 수밖에 없고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에 대한 걱정이 크다는 것이다.
어 내정자는 내정 당일 언론 인터뷰에서 “세계 50위권 은행이 되기 위해서는 은행의 대형화가 꼭 필요하다”며 “사업다각화를 위해 우리금융 인수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KB금융 대형화를 위한 인수합병 작업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는 노조와 어 내정자 간에 앞으로 극심한 반목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노조 측은 어 위원장이 내정 이전부터 대형은행 간 합병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이러한 발언은 노동조합과 직원들의 극한 대립과 투쟁을 불러올 수 있다”며 “구조조정을 기정사실화하는 사고와 실행에 대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해 총력전을 펼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정치권에서도 이번 어 위원장 내정에 대해 다시금 관치금융 논란을 전면에 내세워 ‘파상공세’를 펼칠 것으로 보여 KB금융과 어 내정자 모두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15일 우상호 민주당 대변인은 “6·2 지방선거의 투표 인주가 아직 마르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 지분이 전혀 없는 민간 금융회사에까지 고려대 출신 인사를 낙하산으로 꽂는 게 MB표 시장주의냐”며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관치금융을 부활시키려 하나. 전 세계 금융위기의 주범이 시장주의 문란과 금융회사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그리고 관치금융의 위협임을 배우지 못한 대한민국이 한심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편 해외 굴지의 외신들이 어 위원장의 내정 사실에 부정적 평가를 내려 주목을 끌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을 비롯한 유력 외신들은 어윤대 후보가 이명박 대통령의 대학 후배이며 은행 경영 경험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KB금융에 정부 입김이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어 위원장의 내정에 부정적 해석을 내놨다. 이런 영향들 탓인지 어 위원장이 내정된 당일 KB금융지주 주가는 전일 대비 3.03%(1600원) 하락하기도 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