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0만 관중 달성에 도전하겠다.” 2010시즌을 앞두고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밝힌 당찬 각오였다. 시즌 초 관중몰이는 좋았다. 그런데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6월 뜬금없는 ‘한파 주의보’가 발령됐다. 월드컵이 열리는 해마다 프로야구 흥행이 죽을 쑨 탓이다. 많은 야구인은 오랜만에 찾아온 프로야구 열기가 월드컵으로 급격히 식을까봐 전전긍긍했다. 반면 일부에선 월드컵과 프로야구는 별개라며 월드컵 특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과연 어느 쪽 예상이 맞고 있을까.
“K-리그는 라이벌로도 생각하지 않는다. 프로야구보다 인기나 흥행 면에서 바닥이 아닌가. 그러나 월드컵은 다르다. 월드컵이야말로 프로야구의 열기를 단번에 식게 할 악재다.”
월드컵을 앞두고 KBO 고위관계자는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치명적인 경험을 한 까닭이다. 그가 근무하던 2002년 KBO는 프로야구 중흥을 기치로 내걸었다. 1999년 322만 명의 총 관중을 기록하고서 2년 연속 200만 명대에 그치며 프로야구의 위기가 표면화됐던 시기였다. 어떻게 해서든 반전이 필요했다.
시즌 초반까지 KBO의 바람대로 진행되는 듯했다. 프로야구에 등을 돌렸던 관중이 하나둘 구장을 찾은 것이다. 이 해 5월 경기당 평균 관중은 6477명이었다. 2001년 경기당 평균 관중 5622명을 넘어서는 기록이었다. 그러나 월드컵이 시작하며 진공청소기로 빨아 들인 듯 구장은 텅 비어갔다. 6월 경기당 평균 관중이 2142명으로 급감했다. 결국, 이 해 시즌 총관중은 239만 4570명에 그쳤다. 1989년 이후 최악의 관중수였다.
2006년에도 관중수는 월드컵 이후 감소했다. 월드컵 한 달 전인 5월 경기당 평균 관중이 6769명이던 게 6월 월드컵이 시작하며 4893명으로 줄었다. 이 해 역시 전해보다 시즌 총관중이 34만 7589명이나 감소했다. 2010년 KBO는 겉으론 “프로야구 흥행 가도에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면서도 내심 관중이 급감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5월 경기당 평균 관중만 보면 일단 장담이 현실이 될 것처럼 보였다. 월드컵 열기가 고조됨에도 경기당 1만 4943명이 구장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도 월드컵이 열리기 한 달 전은 큰 이상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6월 본격적인 월드컵 시즌이 시작하며 관중수에 변동이 생겼다. 한국과 그리스전이 열린 6월 12일 토요일 3개 구장엔 총 2만 9325명이 입장했다. 경기당 평균 관중 9775명. 앞선 토요일 4개 구장에 총 5만 3880명이 몰려 경기당 평균 관중 1만 3470명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관중이 4000명가량 준 셈이었다.
그렇다면 월드컵이 시작된 6월은 어떨까. 1만 189명으로 전달보다 3000명가량이 줄었다. 그러나 3000명이 줄었어도 경기당 평균 관중이 1만 명 이상인 점을 고려하면 관중이 급감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실제로 KBO는 지난해 6월 경기당 평균 관중이 9740명이었던 점을 들어 “월드컵이란 악재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이맘때보다 되레 관중이 증가했다”며 “한국 경기가 있는 날만 관중이 감소할 뿐, 다른 날은 별 차이가 없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예년과 같은 ‘월드컵 한파’는 없다는 것이다.
이진형 KBO 홍보팀장은 월드컵 기간 중에도 프로야구가 선전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꼽았다.
“2006년 이후 가족중심의 관전문화가 정착됐다. 이들은 월드컵 기간에도 외식하러 가듯 야구장을 찾는다. ‘월드컵은 밤에 하니까 낮엔 가족과 함께 야구를 보자’는 식이다. 여기다 요즘 야구장은 단순히 야구만 보는 곳이 아니라 일종의 테마파크다. 과거처럼 자기 팀이 진다고 술 마시고 소리 지르는 관중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지금은 응원하는 팀이 지고 이기는 것과 상관없이 경기를 즐기다 가는 이들이 절대다수다. 야구가 이 시대의 트렌드이자 가장 재미있는 여가생활이 된 까닭인지 예전처럼 월드컵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다.”
월드컵을 앞두고 KBO만큼이나 긴장한 곳이 있었다. 야구 중계를 담당하는 케이블 스포츠채널이다. 시즌 초 사상 유례가 없는 시청률 고공행진을 펼치던 스포츠채널은 월드컵으로 인해 시청률이 급감할까봐 전전긍긍했다. 역시 치명적인 경험을 한 까닭이었다.
그렇다면 올해는 어떨까. 5월 프로야구 전체 평균 시청률은 1.535%였다. 프로야구 중계사상 역대 최고의 월간 시청률이었다. 야구 중계의 선두주자 MBC ESPN은 무려 1.651%의 시청률을 자랑하며 ‘케이블 시청률의 지존’이라 불리는 드라마 채널을 누를 기세였다.
문제는 월드컵이 시작하는 6월이었다. 방송 관계자들은 “월드컵 때문에 프로야구 중계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월드컵 영향은 미미했다.
6월 전체 프로야구 평균 시청률이 1.393%를 기록한 것이다. 전월과 비교하면 0.142%포인트 줄었지만, 2006년에 비하면 미미한 감소폭이었다. 재미난 건 SBS 스포츠는 5월보다 6월 시청률이 오히려 0.154%포인트나 증가했다는 것이다.
MBC ESPN의 한 관계자는 “월드컵은 이벤트로, 프로야구는 일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며 “그 때문인지 월드컵은 월드컵대로 보고, 프로야구는 프로야구대로 시청하는 층이 많아 시청률에 큰 변화가 없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