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
‘원정 월드컵 사상 첫 16강’의 위업을 달성한 태극용사들 덕분에 나도 월드컵 마니아가 되었다. 뭐, 알다시피 여자들은 축구에 별 관심이 없고, 월드컵 때만 축구 광팬이 된다. 나도 그저 그런 여자이기에 평소엔 축구에 별 관심이 없지만 요즘엔 채널을 SBS에 고정시키고 밤새도록 축구를 본다. 우리나라 경기에만 열심인 것은 아니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축구 강국들의 경기를 보면서 선수들을 유심히 살피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대한민국 여자를 통틀어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사실 내 주변의 여자들은 대부분 축구보다는 남자 선수들의 ‘미모’에 더 신경 쓴다. 독일과 세르비아의 경기를 보면서 카메라가 요아힘 뢰프 감독을 비춰줄 때마다 “저 감독, 되게 잘생겼다” “저, 카디건 입은 스타일은 어떻고” 등등 외모를 평가하는 것. 오죽하면 아르헨티나 전에서 우리가 첫 골을 먹었을 때 아쉬움의 탄식 직후에 “근데, 골 넣은 저 애 누구야? 미남이다, 얘”라고 한 친구도 있었다. 그 후 곤살로 이과인이 활약을 할 때마다 “미남, 너무 한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메시가 아무리 발 빠르게 움직여도 그에 대한 멘트를 사실 많지 않다. “아우, 저 메시!” 이 정도가 끝이다. 메시는 여자들의 눈을 끌 만큼 섹시하지가 않으니까. 남자들이 볼 때엔 한심스러워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여자가 축구를 재밌게 보는 방법인 것을 어쩌랴.
미국의 온라인 신문 <허핑턴포스트>가 홈페이지 방문객을 대상으로 ‘가장 섹시한 축구 선수’를 설문조사한 것도 이런 맥락이서일 게다. ‘축구계의 섹시남’ 1위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였다. 현란한 발동작을 이용한 드리블로 수비수 두세 명 정도는 단숨에 제쳐버리는 실력. 구릿빛 피부와 식스팩으로 8.2점을 받았다. 사실 호날두가 1위를 차지한 것은 축구장에서의 모습 때문이 아니라, 그가 모델로 활약한 아르마니 광고 이미지 덕분일지도 모르지만.
두 명의 축구 선수와 사귄 경험이 있는 한 후배가 “선배, 진짜 체력이 장난이 아니에요. 애들이 지치질 않아요. 그래서 더 문제이긴 했지만요. 그들과 헤어지니 다른 남자는 성에 안차더라고요. 조금만 해도 지치고 힘들어하니, 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기초 체력이 뒷받침되는 축구 선수는 섹스도 잘한다는 것. 하지만 소개팅에서 조기 축구회 회원 남자를 만난 나는 ‘축구를 좋아하고, 자주 한다고 해서 섹스를 다 잘하는 건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조기 축구에서 스트라이커를 맡고 있는 그 남자의 단순 무식한 삽입과 피스토닝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렇게 정정해야겠다. 축구 선수는 대체로 섹스를 잘할 수 있는 신체 조건을 가졌다. 하지만 다 잘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그러니 신이 나에게 선택권을 준다면, 나는 잘생긴 안정환보다는 박지성을 택하겠다. 나이지리아 전에서 최고의 프리킥 골을 선보인 공격수 박주영보다도 수비와 공격, 그리고 볼 연결 등 미드필더로서 두루 활약한 박지성 쪽에 마음이 기운다. 일단 박지성은 기초 체력이 탄탄한 에너자이저이고 삽입과 피스톤 등 골대 주변만 어슬렁거리는 게 아니라 온몸을 애무하는 플레이와 다양한 체위 변화로 경기장 전체를 조정하는 경기를 보여줄 것 같기 때문이다. 허를 찌르는 현란한 드리블도 마음에 든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여자는 G스폿을 잘 찾아내어 골문을 자극하는 남자도 좋아하지만 골문에 이르기까지 애무를 꼼꼼히, 그리고 현란하게 잘하는 남자에게 더 감동받는 경향이 다분하다. 무엇보다 박지성에게 감동할 만한 것은 경기 후 상대편 선수, 그리고 후배들을 대하는 태도다. 상대편 선수와 악수를 나누고 옷을 바꿔 입는 등 사교활동에 능하고 경기 운영에 실수를 범한 후배들을 토닥이는 그를 보면 섹스가 끝난 후 후희에도 신경 써 줄 것 같다.
축구와 섹스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경기 내내 최선을 다해 뛰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 섹스는 축구와 달리 어느 한 팀이 이기고 지는 경기가 아니다. 남자가 여자를 만족시켰다고 해서 섹스에 이긴 것도 아니고 여자가 오르가슴에 이르지 못했다고 해서 그 섹스에 패배자가 된 것도 아니다. 그러니 남자는 굳이 공격수가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여자는 골을 많이 넣는 남자보다 전체적인 경기 운영을 잘하는 남자를 더 좋아하니까.
그런 면에서 요아힘 뢰프 감독도 내 희망 사항이다. 일단 섹시하게 생겼지 않나. 경기 운영에 일가견이 있으니, 섹스 운영에도 훌륭하길 바라는 수밖에. 체력 부족은 어떻게 하냐고? 아무리 그래도 축구 감독인데 기본은 하지 않을까.
박훈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