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25일 이종휘 우리은행장(오른쪽)이 기업 신용위험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민유성 산업은행장, |
건설업계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은 이미 지난해부터 이어져 왔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미분양이 늘어나면서 상당수 건설사들이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려왔다. 이런 와중에 6월 들어 예고돼 있던 금융당국의 신용위험평가와 금융권의 건설사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 만기가 맞물려 건설사들의 연쇄부도 우려는 극에 달한 상태였다.
우선 뚜껑이 열린 6·25 신용위험평가에서 구조조정 대상에 오른 건설 업체는 총 16곳이다. 9개사는 C등급(워크아웃)을, 7개 업체는 퇴출에 해당하는 D등급을 받았다. 그런데 금융당국과 채권은행단은 기업 실명을 공개하지는 않기로 했다. 지난해 신용위험평가에서 실명을 공개했다가 개선은커녕 오히려 불이익만 받은 사례가 상당수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상장기업의 경우 공정공시 요구를 받으면 신용위험평가 내용을 공개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불이익이 커진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구조조정 건설사의 명단을 비공개로 하면서 오히려 시장의 혼란만 더욱 가중될 것이란 지적도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카더라’ 통신 때문에 피해를 보는 건설업체가 상당수 있을 것 같다”며 우려감을 표했다. 이는 지난 6월 초 대한전문건설협회가 청와대 등에 긴급 건의서를 보내면서 출처가 불명확한 퇴출 예상 업체 9곳의 명단을 실명으로 거론해 불거졌던 문제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당시 전문건설협회 측은 “종합업체가 살아야 전문건설업계가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보냈던 건의서로, 명단이 불확실하다는 점을 해당 건의서에도 분명히 명기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들 9개 업체가 여의도 증권가의 정보지, 일명 ‘찌라시’에 거론됐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을 키웠다. 이들 중 대부분 업체가 이번 구조조정 명단에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든 이번 구조조정 명단에 속한 업체들이 무분별한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건설업계 내부에서는 ‘7월 해고대란’ 가능성이 제기되며 직원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는 “인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서 구조조정의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 부실 업체들이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는 토지나 건물을 매도하는 등 자산 구조조정보다는 인적 구조조정 위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탓에 6월 신용위험평가를 앞두고 건설사들 사이에서는 이미 지난 5월에 들어서면서 위험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자체적인 인력 감축 작업을 실시한 곳이 상당수라는 얘기가 들린다. 워크아웃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S 사는 한때 700명에 이르던 직원 수가 6월 초 들어 300여 명으로 대폭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된 이후에는 회사 내부에서 “조만간 200여 명 정도 직원이 더 해고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떠돌고 있다.
이런 사례는 비단 S 사만의 얘기가 아니다. 다수의 건설업계 관계자들에 의하면 N 사, B 사 등 중견 업체들 중 상당수가 6월 들어 대규모 인력 감축에 들어갔다고 한다. B 사의 경우 올해 들어 서울에 있던 사옥을 팔고 지방 이전까지 했지만 아파트 분양에 실패하면서 결국 대규모 인력 감축에 들어갔다는 후문이다.
문제는 당장 안전한 등급을 받은 업체라고 하더라도 아직까지 ‘완전한 안전지대’로 피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B등급을 받은 일부 업체들은 자산매각, 대주주 지원 등을 통한 추가 유동성 확보를 담보로 워크아웃 명단에서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만약 채권은행과의 약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언제라도 다시금 퇴출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때문에 B등급을 받은 업체도 당장 유동성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7월 대규모 인력 감축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남아 있는 셈이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건설업계에서는 대규모 ‘엑소더스’(인력누수) 현상이 극심하다. 또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난 5월 말부터 명단은 이미 정해졌고 금융당국이 발표 날짜를 정하는 일만 남았다는 말이 돌면서 건설업계의 불안감은 극도로 가중됐다”며 “이런 상태에서 경영상황이 악화되고 임금체불 등이 이어지자 직원들이 자진해서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들이 정작 회사를 그만두고 나오더라도 전망이 그리 밝지는 않다. 30대 중반의 한 건설업체 직원은 “올해 들어 미분양된 아파트를 직원들에게 강매하면서 회사를 그만뒀고 이번 달 이직하면서 연봉이 2000만 원가량 깎였지만 이직을 한 것만으로도 운이 좋았던 셈”이라고 전했다. 그는 “건설업계가 전반적인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에 계약직이어도 들어갈 자리가 없다. 그렇다고 들어간 곳이 경영상황이 좋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기 때문에 불안감만 키우고 있다”고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건설업계의 ‘잠 못 드는 밤’은 한동안 계속될 듯하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