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진 부회장. |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2부(부장판사 서창원)는 지난 6월 18일 경제개혁연대와 신세계 소액주주 10명이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 전·현직 이사 5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 재판은 신세계 계열사인 광주신세계가 1998년 유상증자를 하면서 신주를 발행했을 때 신세계가 인수하지 않아 생긴 실권주를 이 회사 등기이사였던 정 부회장이 모두 인수한 것을 경제개혁연대가 문제 삼아 시작됐다. 정 부회장은 현재 광주신세계 지분 52.08%를 보유한 상태다.
법원은 2년에 걸친 재판 끝에 신세계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당시 정 부회장은 광주신세계와는 별도 법인인 신세계의 이사였고 신주 인수는 정 부회장과 광주신세계 사이에 이뤄진 것이므로 신세계 이사회의 승인이 필요한 자기 거래로 볼 수 없다”며 “당시 신주가 현저히 저가로 발행된 것으로 단정하기에 부족하고 이를 인수하지 않기로 한 신세계 이사들의 결정을 임무회피로 보기 어렵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이에 경제개혁연대는 “사법부가 신세계에 면죄부를 줬다”며 “즉각 항소할 것”이라 밝히고 있다. 반면 신세계 측은 “재판부에서 우리 입장을 잘 반영해줘서 이런 판단을 내렸다고 본다”면서 “(원고가) 항소한다면 착실하게 준비할 것이다. 팩트(사실)에 자신 있다”고 맞받았다.
이번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정 부회장의 광주신세계 최대주주 등극 과정은 ‘삼성 황태자’ 이재용 부사장의 삼성에버랜드 최대주주 등극, ‘현대차 황태자’ 정의선 부회장의 글로비스 장악과 줄곧 비교돼 왔다.
삼성과 현대차 오너 일가는 삼성에버랜드와 글로비스를 통해 그룹 지배권과 막대한 이익을 취할 수 있었지만 이 회사들로 비롯된 검찰 수사와 재판을 통해 장기간 부침을 겪어야 했다. 반면 광주신세계 소송은 1심에서부터 재판부가 정 부회장 측 손을 들어주는 바람에 정 부회장의 향후 행보가 한결 수월하게 됐다는 점에서 삼성·현대차 사례와 대조를 이룬다.
일각에선 신세계 측이 법원의 우호적 판결을 이끌어낸 배경 중 하나로 신세계가 보유한 화려한 사외이사진을 거론하기도 한다. 신세계와 광주신세계의 사외이사진은 법조와 관료 출신 명망가들 위주로 꾸려져 있다. 이들은 대부분 시민단체 등에서 광주신세계 논란을 한창 불 지피던 지난 2007~2008년 사이에 영입된 인사들이다.
공시에 따르면 신세계는 문영호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와 강대형 전 공정위 부위원장(법무법인 케이씨엘 상임고문), 이주석 웅진그룹 총괄 부회장과 황병기 전 감사원 사무총장을 사외이사로 두고 있다.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재선임된 문영호 사외이사는 18회 사법고시 출신으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거쳐 대검찰청 기획조정부 검사장, 수원지방검찰청 검사장 등을 역임했다.
강대형 사외이사는 국세청 경제기획원 등 정부부처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지난 2005년부터 1년간 공정위 부위원장을 지냈다. 이주석 부회장은 서울지방국세청 직세국장을 거쳐 부산지방국세청장,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역임했으며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을 지냈다. 황병기 사외이사는 감사원에서 총무과장 심의실장 등을 거쳐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윤석범 법무법인 가교 세무사와 유영진 전 감사원 관리관, 그리고 하동수 전 신세계인터내셔널 지원담당 임원이 포진한 광주신세계 사외이사진도 만만치 않은 내공을 과시한다.
신세계와 광주신세계 사외이사들 7명 중 유통분야 전문가는 올 3월 주총을 통해 등기임원(사외이사)으로 선임된 하동수 전 신세계인터내셔널 지원담당 임원뿐이다. 이주석 부회장도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으로 있다가 지난해 12월 웅진그룹에 영입된 케이스로 경영 경력은 길지 않은 편이다.
반면 사외이사들 중 현재 법무법인·법률사무소에 소속된 인사가 검사장 출신을 비롯해 네 명에 이른다. 여기에 국세청 출신 세무 전문가 두 명과 감사원 출신 두 명, 공정위 출신 한 명이 포진해 있다. 그 이름만으로도 광주신세계 재판에서 신세계 측의 든든한 지원군이 됐을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그러나 이런 시각에 대해 신세계 측은 “그런 일은 절대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 박았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