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증현 장관(왼쪽)과 강만수 특보 |
한쪽 방향은 금리 인상을 통해 위기 이후 팽창일로였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마무리 짓는 출구전략과 금리 인상 및 환율 안정으로 하반기 상승 우려가 나오고 있는 물가를 잡는 것이다. 또 다른 방향은 물가 상승 우려를 무릅쓰고 금리 인상을 최대한 늦추면서 경기 회복세를 가져가고, 고환율을 유지해 경상 수지 흑자규모를 키우는 것이다.
이 두 방향을 놓고 고민을 하게 된 배경은 한국 경제가 빠른 회복세를 나타낸 데 있다. 정부는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올해 5.8%의 경제성장률을 이룰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은행과 국제 금융기구, 국내 경제연구소, 해외 투자은행(IB) 등도 올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5%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의 잠재 GDP 성장률이 3%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잠재 성장률을 2%포인트 가까이 뛰어넘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이러한 수치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보니 경기 과열에 의한 인플레이션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각 기관의 하반기 경제 전망에서 물가 상승 압력이 빠지지 않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처럼 물가 상승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고환율이 지속될 경우 해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물가 상승 압력이 더욱 높아지게 된다. 낮은 금리 때문에 시장에 통화가 많이 도는 것 역시 물가 상승의 최대 요인으로 꼽힌다.
하반기 경제 운용에서 금리와 환율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는 금리와 환율에 대해 현재 경제운용의 키를 잡고 있는 윤 장관과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 멘토’인 강 위원장이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윤 장관은 환율의 시장 기능을 중시한다. 국제 경제에서 환율이 균형을 잡아주는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 윤 장관의 지론이다.
윤 장관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한 국가에서 무역수지 적자가 나면 들어오는 달러가 줄고, 이는 환율 상승을 가져와 수입이 줄어든다. 흑자가 난 국가는 환율이 내려가게 되고 흑자폭이 감소한다”고 말한 것은 이런 지론을 드러낸 것이다. 윤 장관이 환율 정책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으로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을 입에 달고 다니는 것도 마찬가지다. 경상수지 흑자로 들어온 달러가 늘어난 만큼 환율이 내려가는 것이 물가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반면 강 위원장은 대표적인 고환율주의자다. 1998년 외환위기 아픔을 겪었던 강 위원장은 고환율로 수출기업의 경쟁력을 높여 경상수지 흑자를 이루고, 이를 통해 외환보유고를 안정적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입장이다. 이렇다보니 환율 시장의 흐름과 맞설 때가 많았고, 결국 금융위기 발생 직후 고환율 정책 실패와 물가 급등, 시장 불신의 책임을 지고 재정부 장관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최근 유럽 국가들이 경상수지와 재정, ‘쌍둥이 적자’에 허덕이다 위기를 맞았다는 점에서 강 위원장의 경제운용 원칙이 잘못됐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고환율이 우리나라에 맞는 정책이라는 강 위원장의 인식에 변함이 없다. 그는 지난 6월 16일 중소기업중앙회 행사에서 “우리 경제 여건에 맞게 환율 정책을 폈는데 야당과 시민단체로부터 많은 도전을 받았다”고 밝힌 점은 이런 소신이 그대로임을 보여준 것이다.
출구전략의 핵심인 금리에 대해서도 두 경제 실세 간 의견에는 차이가 나타난다. 윤 장관은 최근 들어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를 보이며 금리 인상 가능성을 수차례 내비치고 있다. 윤 장관은 지난 14일 경제연구기관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물가 상승 압력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18일 한 조찬 행사에서는 “하반기 이후 물가 상승세가 예상보다 커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금리 인상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경기회복 정도와 자산시장 동향, 물가 등을 종합 고려해 합리적으로 결정할 것을 기대하고 있으며, 상반기 경제 실적을 바탕으로 금리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반기 금리 인상 수용 가능성을 내비친 셈이다.
그는 지난 21일 국회 기획재정위 전체회의에서도 “해당 공공기관 적자가 많으면 결국 재정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 적정한 수준에서 순차적으로 현실화한다”며 전력·가스요금 인상을 예고했다. 공공요금 인상은 결국 물가 상승을 가져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강 위원장은 금리 인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16일 행사에서 “출구전략은 전략적이고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조기 금리 인상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또 “정부는 기업들이 마음 놓고 경쟁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민간 투자와 소비가 활성화된 시점에 출구전략을 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하반기 경제 운용 방향을 결정할 환율과 금리에 대해 두 사람의 의견이 차이를 보이자 관가와 경제계에서는 누가 승자가 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강 위원장이 이 대통령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는 점과 청와대 경제팀을 자신의 사람들로 꾸렸다는 점에서 우위에 서 있다. 하지만 윤 장관은 시장의 신뢰가 높다는 점과 우리나라 경제의 틀을 짜는 재정부 수장이라는 점에서 만만치 않은 내공을 가지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여러 가지를 감안하면 ‘개국공신’인 강 위원장의 뜻이 하반기 경제 운용에 보다 강하게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지방선거 참패로 정부가 서민 경제를 감안한 금리 인상과 환율 안정이 필요한 상황이어서 윤 장관의 의견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특히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 그동안 없던 ‘서민생활의 개선’이 들어간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누구의 손을 들어주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김서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