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한강에 버린 혐의로 검거된 10대들이 6월 23일 오후 서울 홍은동 범행장소에서 현장검증을 마친 뒤 한강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일요신문>은 6월 22일 마포경찰서 부근에서 피의자 6명 중 한 명의 가족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 봤다.
“그날 그 아이를 우리 집으로 데려와서 재웠으면 이런 사단이 안 났을 텐데….”
마포경찰서에서 기자와 만난 6명의 피의자 중 한 명인 A 군의 할머니는 “사건이 있기 4일 전 손자와 함께 집에 온 김 아무개 양(피해자·15)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와 할머니, A 군 이렇게 세 식구가 살고 있던 집에 A 군이 피해자 김 양을 데리고 온 것은 지난 6월 9일이었다. A 군은 김 양이 잘 곳이 없다며 하룻밤만 김 양을 집에서 재워줄 것을 할머니에게 부탁했다.
“손자가 그러는데 (김 양의) 엄마가 새엄마인데 매일같이 집에 들어오지 말라며 얘를 때리고 그렇게 윽박을 지른다대요. 얘가 주눅이 들어가지고 어른 앞에서 말도 잘 못하는데 어디 모자란 애 같아 보이기도 하고….”
할머니는 김 양의 딱한 사정이 안타까웠지만 A 군의 아버지가 집에서 여자를 재운 사실을 알게 되면 노발대발할 것이 걱정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얼마 전 중학교를 자퇴한 A 군은 진로 문제로 아버지와 잦은 갈등을 빚고 있던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집안이 시끄러워질 일을 피하고자 할머니는 같은 동네에 사는 A 군의 또 다른 친구인 최 아무개 양(15)의 집에서 김 양을 재우라고 했다.
결국 김 양은 9일 저녁 최 양의 집으로 가게 됐고, 그곳에서 불행히도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시작됐다. 도배 일을 하며 하루벌이를 하는 최 양의 부모님은 지방에 일이 생겨 한 달 동안 집을 비운 상태였다. 오랫동안 집에 어른이 없다보니 최 양의 집은 또래들의 아지트가 된 지 오래였다. 그날도 최 양은 A 군의 부탁으로 재워주기로 한 김 양 외에 또래 여자친구 두 명을 더 불렀다.
김 양에 대한 폭행은 사소한 말다툼에서 시작됐다. 최 양과 친구들은 김 양에게 “평소 우리가 남학생들에게 하는 행동이 헤프다고 말하면서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걸 들었다”며 트집을 잡아 번갈아가며 폭행하기 시작했다. 최 양의 남자친구였던 A 군과 또 다른 또래 남자 친구들 역시 전화를 받고 최 양의 집으로 모였다.
“내 여자친구를 욕한다”며 남학생들 역시 김 양을 돌아가며 폭행하기 시작했다.
다음날(10일) 평소 아버지와 불화가 있던 A 군은 아버지의 불호령에 밤에 집으로 돌아왔다. A 군의 엄지손가락은 부어 있었고 얼굴 부근에 빨간 상처가 보였다.
A 군 할머니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아이들이 워낙 심하게 얘를 때리다보니까 자기들도 다친 거 같더라고요.”
이상한 낌새를 느낀 A 군의 할머니는 최 양의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지만 손자가 ‘친구들과 라면을 끓여 먹었다’는 말만 하고 잠이 들자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렸다고 한다.
▲ 10대들의 잔혹한 장면이 나오는 일본 애니메이션 <쓰르라미 울 적에>. |
이 군은 수사 초기 “김 양이 살해된 후에 전화를 받고 범행현장에 도착해 시체유기만 도왔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6월 24일 경찰조사에서 이 군이 이들에게 범행 초부터 김 양을 “반쯤 죽여 버려라”고 지시를 내린 사실이 발각됐다.
결국 김 양은 그렇게 계속된 4일 동안의 감금과 폭행을 견디지 못하고 12일 저녁 사망했다. 김 양이 사망한 후에도 이들은 반성보다는 범행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연장자인 이 군은 우선 만화영화에서 본 것을 상기해 사체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아킬레스건을 절단해 피를 뺐다. 사체가 가벼워지자 최 양의 집에 있던 기념타올로 얼굴 부분을 감싸고 카페트를 가져와 몸 전체를 싸맸다.
이후 택시를 타고 ‘과제물로 쓸 조각상이다’고 기사를 속여 일행들과 행주대교에 도착해 사체를 유기했다. 사체가 수면 위로 뜨지 않게끔 마지막엔 벽돌과 시멘트 덩이를 연결시키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혼령의 복수를 막아야 한다며 향 대신 이쑤시개에 불을 피우는 엽기적인 행위도 저질렀다. 저승 노잣돈을 준다며 김 양의 윗옷 주머니에 동전을 넣어 넋을 기리기도 했다.
하지만 사체는 5일 후 양화대교 북단에 떠올랐고, 경찰의 추적 끝에 이들이 저지른 끔찍한 범행 역시 수면 위로 드러났다.
범죄 행각이 발각됐을 때도 이들은 태연한 모습이었다. 경찰이 체포했을 당시 정 군과 최 양은 교회에서 종교활동을 하고 있어 경찰을 당혹케 했다. 경찰서에 잡혀 온 다음에도 철면피 같은 모습은 계속됐다. 6월 22일 기자와 만난 마포경찰서 관계자는 “취조 중인데도 서로 몸이 부딪히면 툭툭 밀며 장난을 하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 조사를 받고 있던 한 10대는 수갑을 툭툭 치며 웃기도 했다.
한편 피해자 김 양의 부모는 자녀의 실종 사실도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양은 폭행이 시작된 9일부터 사체로 발견된 17일까지 가족과 연락을 끊은 상태였지만 가족들은 실종신고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