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김대중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울음을 참지 못한 김옥두 전 의원. |
1980년대 대형 음반제작사를 경영하던 K 씨는 2007년 10월 “‘김대중’이라는 이름도 입에 담기 어려웠던 군부시절, 목숨과 생업을 걸고 물심양면으로 DJ를 도왔으나 약속과 달리 팽당했다”며 DJ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바 있는 장본인이기도 하다. 당시 K 씨는 “약속했던 녹음테이프 대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당시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진술과 정황상 K 씨가 부탁을 받고 테이프를 제작·배포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소멸시효가 지나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그런 K 씨가 이번에는 DJ의 최측근 인사이자 동교동계 핵심인사인 김 전 의원과 법정 다툼을 벌일 상황에 처했다. 한때 정치적 동지로서 같은 길을 걸왔던 두 사람이 불미스러운 일로 엮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소장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 5월 11일 오전 11시 30분경 국립현충원 내 DJ 묘역에서 발생했다. 그동안 DJ 측에 테이프 제작에 들어간 원금보상을 끈질기게 요구해왔던 K 씨는 DJ 서거 이후에도 이희호 여사와의 면담을 요청해왔다. 하지만 이 여사와의 면담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동교동계 핵심인사와 이 여사의 운전기사, 교회 장로 등을 통해 “사업을 시작하면 도움을 주시겠다더라”는 약속까지 전해 들었으나 아직까지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여사를 직접 만나 사정을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은 K 씨는 결국 DJ 가족들과 동교동계 등 측근들의 묘역 참배가 예정된 이날 현충원을 찾았다고 한다. 사건 당일 DJ 묘역에는 이 여사와 김홍업 전 의원, 동교동계 인사 등 2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이 이 여사를 대면해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공개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 K 씨는 참배가 끝난 뒤 이 여사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이 여사가 보는 앞에서 “군사정권에 의해 재갈이 물린 언론이 DJ의 정치적 수난에 침묵하고 있을 때 사비를 털어 강연테이프를 제작해 배포하는 등 목숨 걸고 물심양면으로 DJ를 도왔으나 약속한 보상은커녕 팽당했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K 씨는 DJ가 미국에 망명해있던 시절, 옥중서신 ‘이제가면’과 손주항 전 의원의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안기부 지하감옥에서’를 자비를 들여 녹음테이프 5만 개를 제작해 배포한 바 있다. 또 김진배 전 의원이 소설 <인동초의 새벽>을 집필할 수 있도록 자기 사무실과 경비를 제공하기도 했다. DJ가 일본에서 납치되어 수중고혼이 될 뻔한 사연이 담긴 육성녹음테이프 10여 만 개를 ‘행동하는 양심’ ‘도덕정치를 구현하자’ ‘민족혼과 더불어’ ‘동학 난’ 등의 제목으로 제작해 전국에 배포하기도 했다.
▲ K 씨가 김 전 의원을 상대로 낸 고소장 접수 증명서. |
이날 사건은 K 씨가 이 여사와 동교동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간 겪은 고통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비참한 상황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을 때 발생했다. 다음은 당시 상황에 대한 K 씨의 설명이다.
“갑자기 일행 중 한 명인 김옥두 전 의원이 누군가에게 ‘당장 끌어내서 혼내주고 감금시켜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갑자기 어디선가 건장한 청년 2~3명이 달려들어 나를 순식간에 제압했다. 나는 이 여사를 비롯한 20여 명의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질질 끌려갔다. 누구하나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묘역 인근에 위치한 초소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퍽’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고통이 밀려들었다. 그들은 나를 마구잡이로 폭행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과거 군부에 당한 고문과 폭행으로 목과 척추에 쇠를 박는 대수술까지 받았던 K 씨는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짓밟는 장정들의 폭행을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고 한다. K 씨는 결국 그 자리에서 혼절하고 말았다.
“깨어나보니 초소 안에 쓰러져 있었다. 온몸에 통증이 밀려들었다. 그때 참배에 참석했던 일행 중 한 명이 들어와서 쓰러져있는 나를 추슬러줬다. 그리고 ‘정말 안타깝다. 내가 K 전 의원(동교동계 핵심 실세)을 만나 당신의 억울한 사정을 얘기해주겠다’고 말한 뒤 나갔다. 그가 나간 뒤 나도 몸을 추스르고 문을 열고 나가려했으나 건장한 남성들이 문을 막고 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결국 나는 감금된 상태에서 또다시 혼절했고 얼마 후 깨어보니 모두들 사라지고 없었다.”
허리와 어깨, 갈비뼈와 목 부분에 상해를 입은 K 씨는 병원으로 가서 입원치료를 받았으나 현재도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며 추후 수술까지 요구되는 상태라며 고통을 호소했다.
K 씨는 사건 이후 몇 차례 김 전 의원을 만나 그날의 폭행건에 대해 사과를 듣고자 했지만 김 전 의원은 단 한마디 사과도 없이 피하기만 했다고 한다.
“내 억울한 사연을 잘 알고 있는 김 전 의원이기에 내가 받은 충격은 더욱 컸다. 사건 당일 내가 행패를 부린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무지막지하게 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나는 김 전 의원의 진심어린 사과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은 철저히 나를 무시하고 피하기만 했다. 김 전 의원이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만 했어도 이렇게 고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고 K 씨는 말했다.
K 씨는 억울한 마음에 이 장면을 목격한 이 여사에게도 내용증명을 보내 자신의 주장이 사실이 아닐 경우 사기·명예훼손으로 고소해도 좋다는 의견을 밝히고 사건과 관련된 수습을 요구했으나 현재까지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한편 이 사건과 관련해 사실확인 및 김 전 의원의 직접 해명을 듣고자 국회헌정회 측에 메모를 남겼으나 김 전 의원으로부터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30여 년 전 DJ와의 악연이 빌미가 돼 형사고소건으로 비화된 두 사람의 소송전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주목된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