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중생 성폭행 살해범 김길태가 최근 사형선고에 불복, 항소장을 제출했다. 연합뉴스 |
김 씨는 지난 2월 24일 부산 사상구 덕포동의 한 다세대 주택에 침입, 혼자 있던 여중생 이 아무개 양(13)을 납치해 성폭행 후 살해한 혐의로 지난달 25일 사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김 씨가 마지막 항소 시한인 2일 ‘무죄’를 주장하며 직접 항소장을 제출했다는 소식은 국민들을 또다시 들끓게 만들고 있다. 참회의 시간을 보내야 할 그가 ‘모르쇠’로 부인하며 직접 항소한 것에 대해 파렴치하다는 질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김 씨의 항소장 제출을 계기로 그동안 극형을 선고받은 ‘살인마’들이 사형선고의 부당성을 주장해 국민들을 공분케 했던 사례들을 들여다 봤다.
김 씨는 검거 직후부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그런 사실이 없다”며 죄를 뉘우치기보다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는 1심 선고공판에 앞서 최후 진술에서도 “기억이 안 나는데 억울하다. 내 안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다”며 절도와 폭행을 제외한 혐의 대부분을 부인했다.
하지만 법원은 김 씨에게 법정 최고형을 선고했다. “자신의 성적 욕구 충족을 위해 어린 아이를 무참히 살해한 점과 재판 과정에서도 반성하지 않는 태도 등을 볼 때 교화 가능성이 없고 사회에 복귀하면 더 잔혹한 범죄를 저지를 소지가 충분하다”는 것이 1심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김 씨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7월 2일 ‘무죄’를 주장하며 직접 항소장을 제출했다. 김 씨의 이러한 행동을 두고 피해자 가족을 두 번 죽이고 있다는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김 씨의 사례처럼 그동안 사형을 선고받은 범죄자 모두가 순순히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판결에 승복했던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자신에게 내려진 사형선고의 부당성 혹은 원천무효를 주장한 사례도 있었다.
사형제에 대한 헌법소원을 처음으로 제기한 사형수는 1989년 2월 강도 살인죄로 사형이 확정된 서 아무개 씨였다. 서 씨는 집행을 기다리던 중 형법 338조(강도살인, 치사)와 행정법 57조(사형의 집행) 1항이 생명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청구 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각하됐다.
강도살인 혐의로 1990년 4월 사형선고를 받은 손 아무개 씨는 같은 해 5월 “사형제도를 규정한 형법 338조는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헌법재판소에 냈다. 그러나 손 씨는 그 해 12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995년 살인·특수강간 혐의로 사형이 확정된 정 아무개 씨도 형법 41조(형의 종류)와 250조(살인, 존속살해)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 정 씨는 “생명권이 헌법에 보장된 신체 자유의 본질적 내용이므로 법률로써 이를 제한하는 사형은 위헌”이라고 주장했으나 1996년 11월 헌재는 7:2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2007년 8월 31일 전남 보성 앞바다에서 여행객 4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어부 오 아무개 씨(72)도 자신의 생명권을 주장했다. 오 씨는 항소심 도중 ‘사형제는 위헌’이라며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2008년 9월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여 재판이 정지됐으나 올 2월 헌법재판소는 사형제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간 사형수들의 사형제 위헌주장은 ‘제도살인’으로서의 사형제의 필요악을 공론화시키고 존폐 논란을 불러일으켜왔다. 하지만 타인의 소중한 생명을 무참히 짓밟았던 이들이 아이로니컬하게 자신의 ‘생명권’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서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다. “죽어도 마땅하다”며 용서를 빌고 또 빌어도 시원찮을 판에 자신의 구명을 위해 항소를 하고 헌법이 보장하는 생명권을 들먹이는 자체에 대다수 국민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이번 김 씨의 항소가 논란이 되면서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죄를 짓기는 했지만 사형까지는 심하다” “누구에게나 숨 쉬고 살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이 최우선시돼야 한다”는 사형수들의 ‘파렴치한’ 주장은 사형제의 옳고 그름을 떠나 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피해자 가족들에게는 더 큰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