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오일게이트’는 당시 부동산개발업자였던 전대월 씨가 주도해 실패했던 러시아 유전개발사업과 관련, 철도청(현 철도공사)이 사업에 참여했다가 수백억 원대의 손실을 내면서 불거진 사건. 사업 이면에 노무현 정부 실세들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오일게이트는 당시 정치권의 최대쟁점으로 부각됐다.
정치권의 공방이 계속되자 관련 의혹들은 특별검사(특검)의 수사로 이어졌다. 2005년 4월 특검은 정치자금법 위반, 특가법상 배임 공범, 가장납입 등의 혐의로 전 씨를 구속했다. 그해 10월 21일 전 씨는 재판부로부터 유전과 관련된 배임 혐의는 무죄, 정치자금법 위반과 코리아 크루드 오일의 자본금을 가장 납입한 혐의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당시 실세 정치인들의 깊이 있는 개입 여부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출감 이후 한동안 행적을 드러내지 않던 전 씨는 2006년 8월 러시아 사할린주 우글레고르스크 지역의 유전개발회사인 ㈜톰가즈네프티를 매입해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유전개발 사업자로 모습을 나타냈다. 그리고 2007년 5월에는 유가증권시장 상장 자동차 부품업체였던 명성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회사를 인수, 국내 시장에 화려하게 컴백했다.
당시 전 씨는 “사할린에서 1억 5000만 톤이 매장된 유전을 발견했다”며 “해외에서 투자를 받을 수 있지만 사기꾼 오명을 벗기 위해 국내에서 다시 사업을 계획했다”고 밝혔다. 주가 9000원 대에 불과했던 명성은 전 씨의 인수 소식이 전해진 지 13일 만에 5만 3000원이라는 역대 최고치의 주가를 기록하며 주목을 끌었다. 이후 자원개발업체로 탈바꿈한 명성은 업체명을 ㈜케이씨오에너지로 변경하고 유전개발 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케이씨오에너지의 유전개발사업은 그다지 순탄치 않았다. 케이씨오에너지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전 씨가 2008년 9월 검찰에 구속 기소돼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 2007년 8월 톰가즈네프티 지분 24%를 적정 거래가격보다 고가인 1주당 2850원으로 계산해 케이씨오에너지가 총 684억 원에 사들이도록 해 전 씨가 재산상 이익을 얻고 그만큼 회사에 손실을 끼친 혐의였다.
이처럼 화려한 복귀 뒤 부진한 실적만 보여주던 전 씨는 올 들어 다시 사기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지난 1월 20일경 서울중앙지검은 투자전문 회사 J 사 대표로부터 ‘전 씨가 수백만 주를 가로챘다’는 내용의 고소장이 접수돼 수사에 들어갔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전 씨는 2009년 9월 자신이 대표로 있던 케이씨오에너지가 러시아에 보낼 사업자금 20억 원이 필요하다며 투자업체인 J 사 대표 이 아무개 씨로부터 시가 30억 원에 이르는 주식을 빌린 후 약속된 기일까지 갚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5월 3일 20억 원의 어음을 막지 못하면서 케이씨오에너지는 부도를 맞았다. 당시 케이씨오에너지는 사할린 톰가즈네프티 광구 개발을 내세워 수차례 자금 확보에 나섰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없어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매킨리인포캐피털로부터 지원받기로 한 1억 달러의 입금도 미뤄졌다. 게다가 올 4월에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을 추진하다 실패하면서 심각한 자금난을 겪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케이씨오에너지가 심각한 자금난을 겪었다고 하더라도 부도와 관련, 의심이 가는 대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지난해 10월 케이씨오에너지는 220억여 원을 유상증자한 뒤 톰가즈네프티사에 117억 7700만여 원을 금전대여 명목으로 송금한 것으로 나타나 가장납입(자본금을 넣은 뒤 즉시 인출) 의혹을 받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단 20억 원에 부도를 맞았다는 점에서 개인주주 피해자들은 전 씨가 의도적으로 부도를 낸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최근 검찰은 전 씨에 대해 ‘수배령’을 내렸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전 씨는 대표이사로 있던 케이씨오에너지가 상장폐지돼 사실상 부도를 맞은 지난 5월 3일 당일에 홍콩으로 출국해 아직까지 소재지가 파악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이에 따라 검찰은 지난 6월 1일 전 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의 사기 등 혐의로 기소중지 처분하고 뒤이어 23일 지명수배를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케이씨오에너지 개인주주 피해자들은 이미 앞서 1월 20일 고소가 접수된 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전 씨의 출국금지 처분을 해놓지 않아 문제를 더욱 키웠다며 반발하고 있어 앞으로 논란이 예상된다. 한 피해자는 “상장폐지가 된 이후 피해를 본 개미투자자가 1만 5000여 명에 이른다”며 “전 씨의 또 다른 자금창구(톰가즈네프티)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만약 도피만 하지 않았으면 피해를 어느 정도는 보전 받을 수 있었을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