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태원 회장(왼쪽),제임스 피터 크레스트증권 최고경영책임자 | ||
일단 경영권 방어에 성공한 최 회장은 손길승 전 회장 측근과 최 회장 친인척 중심으로 짜여졌던 경영진을 자신의 직계체제로 개편, 변신에 나섰다.
또 SK주식회사 등 주요 계열사의 사외이사 비율을 대폭 확대해 기존의 1인 중심 지배체제에서 탈피하고, 이사회를 활성화하는 등 투명경영 실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2대 주주 소버린측은 여전히 최 회장체제에 대한 불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주총이 끝난 뒤 소버린측은 크레스트증권 최고경영책임자 제임스 피터 명의의 신문광고를 통해 새롭게 구성된 SK주식회사의 이사회에 변화를 요구하는 등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공세의 핵심은 지난해 검찰 수사결과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이 분식회계를 통해 조성한 것으로 밝혀진 4조4천억원대의 ‘사라진’ 자금의 행방.
소버린은 또 SK해운이 1조원 규모의 자금을 선물투자 등으로 날렸다며 이에 대한 책임자 규명 및 원금 회수, 재발방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소버린의 이같은 요구는 SK주식회사 주식 매집 이후 줄기차게 제기돼왔다. 그러나 주총에서 경영권 장악에 실패한 후에 다시 제기됐다는 점에서 그 배경이 무엇인지 주목된다.
이에 대해 재계에서는 주총에서 패배한 소버린이 내년 주총을 대비, 새롭게 명분을 축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하고 있다.
소버린의 홍보대행 업무를 맡고 있는 엑세스 커뮤니케이션 박희정 팀장은 “주주로서 소버린이 SK를 향해 합당한 권한을 행사하는 차원에서 신문광고를 게재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총 이후 새롭게 이사회가 구성된 만큼 새로이 이사회에 합류한 인사들이 주주들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특히 “소버린에서 내건 요구조건을 새로 구성된 이사진이 알도록 하고 실현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주주로서의 권리일 뿐 아니라, 향후 SK의 장래와도 관련이 있다”며 “경영권 확보에 나서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투명경영의 실현 여부에 달려 있다”는 원론적인 주장을 폈다.
그러나 ‘주주로서의 권한 행사’라는 단순한 설명은 주총 이후 소버린에서 ‘광고전’을 통해 또다시 최 회장측에 직격탄을 날린 배경에 대한 설명으로는 부족하다는 관측.
이 같은 소버린의 공세에 SK는 “오래 전부터 주장해왔던 내용일 뿐 새로울 것은 없다”며 애써 태연한 모습이다.
특히 SK는 “주주는 주주로서 투명한 경영을 요구할 권리가 있는 것이고, 회사로서는 투명경영, 정도경영을 통해 회사발전과 이익을 극대화해 주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할 책무가 있다”며 “통상적인 활동일 뿐이며, 주주들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주총 이후 소버린에서 다시 ‘광고’를 통해 ‘공세’의 고삐를 당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뭔가 또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단 주총을 앞두고 가파르게 상승했던 SK 주가를 유지하고자 하는 의도가 녹아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통상 경영권 다툼이 예상되는 회사의 주가는 주총을 전후해 큰 폭으로 상승했다가 주총 이후 하락해왔다.
소버린이 주총에서 경영권 쟁탈에는 실패했지만, 이미 투자해 놓은 SK 주가가 하락하는 상황을 막아 투자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
실제 SK 주가는 주주총회 이후에도 오히려 상승하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주총 이후에도 소버린측에서 SK 이사진을 향해 요구조건을 되풀이하며 내년 주총에서 또다시 경영권 쟁탈전에 나설 뜻을 내비치고 있어, 소액투자자들은 물론 기관투자자들까지 주식을 던지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주총을 통해 경영권 방어에 성공한 SK측에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소버린의 향후 태도 변화가 여전히 예측불허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은 주총 이후 그룹 인사를 통해 직계 측근 인사들을 전진배치함과 동시에 최측근 인사인 박영호 실장과 황규호 실장을 각각 투자회사관리실장과 CR전략실장에 임명, 내년 주총에 대비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박 실장 부임 이후 투자회사관리실은 지주회사로서 SK주식회사가 계열사들에 대한 소유지배구조 문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조직을 확대 개편하는 등 내년 주총을 대비, 안정적인 경영 기반 확보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황규호 전무가 실장으로 임명된 CR전략실의 경우, 기존의 CR전략실이 담당해왔던 6R(Public Relations, Employment Relations, Investment Relations, Government Relations, Business Relations, Customer Relations)을 기본업무로 하고, 덧붙여 최태원 회장 개인 보좌업무를 담당할 PI(Personal Identity)까지 총괄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황 전무의 경우 회사 경영의 축으로 새롭게 자리매김된 이사회의 원활한 업무추진을 보좌할 이사회 사무국 국장을 겸직해 사실상 과거 대기업 회장 비서실 기능을 총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이 주총 이후 안정적인 경영권 유지를 위해 다각도 방안을 모색하는 상황은 자연 SK주식회사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높여준 것 또한 사실이다.
주총을 앞두고 오를 만큼 오른 주가가 주총 이후에도 하락하지 않고 현상을 유지하는 이면에는 소버린측의 공세 외에도 경영권 방어에 나서야 하는 최 회장측의 기민한 노력이 덧붙여졌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물론 증시 전문가들을 ‘SK의 잠재적 기업가치는 현재 주가를 상회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주가가 상승할 여력은 충분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의 분석처럼 SK(주)의 높은 잠재적 기업가치에 덧붙여, 2대주주로서 호시탐탐 경영권 쟁탈전에 나설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는 소버린이 버티고 있고, 경영권 방어에 전력을 쏟고 있는 최 회장 등의 노력이 맞물리면서 SK 주가는 한동안 고공행진을 계속할 것으로 관측된다.
물론 언제든 소버린측에서 태도를 바꿔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매각할 경우 상황은 1백80도 달라질 수 있음은 물론이다. 주총에서 경영권 확보에는 실패했지만, SK의 내면을 움직일 키는 당분간 소버린에서 쥐고 있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