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전진단 결과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게 된 잠실주공 5단지. 하지만 재건축에 반대하는 조합원들도 많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안전진단을 통과하게 되면 그동안 아파트 입주자로 구성된 재건축추진위원회(추진위)는 입주자들의 동의를 얻어 재건축조합(조합)을 결성하게 된다. 조합은 시공사를 선정하고 사업계획을 세부적으로 세워 정부 승인을 받는 등의 순서로 사업을 추진한다.
잠실주공5단지의 재건축사업이 본궤도에 오른 만큼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안전진단 통과 소식이 알려지면서 집주인들이 매도를 보류하며 호가를 높인 것이다. 아파트 크기별로 2000만~5000만 원가량 호가가 올랐다. 119㎡형은 12억 5000만~13억 원 선에 시세가 형성됐다. 인근 S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제2롯데월드 호재까지 겹치면서 매수문의가 늘고 있다”며 “다만 갑작스런 호가 변동으로 선뜻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안전진단이 통과된 직후인 지난 2일 오전. 잠실주공5단지 입구에는 재건축 추진을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실익 없는 재건축 해산만이 대안이다’ ‘내 재산 지키려면 해산동의서 빨리 내자!’ 등 모두 현재 추진위를 해산시키자는 내용이다. 사업성이 없는 현재 방식의 재건축 추진을 중단하고 상업지구로 용도변경을 하거나, 획기적으로 사업 여건이 개선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조합원들에게 더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이런 플래카드를 내건 주체는 입주자대표회의 자치부녀회 경로당 등이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는 ‘재건축조합설립추진위원회 해산동의서 접수처’가 마련돼 올 초부터 지금까지 동의서를 받고 있었다. 입주자대표회의 김종언 총무이사는 “안전진단에 통과한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지금 같은 방식으로 재건축 사업을 하면 조합원 모두 손해”라면서 “추진위를 해산시킬 수 있는 규모인 조합원 50%에 육박하는 해산동의서를 거의 다 받았다”고 밝혔다.
입주자대표회의를 중심으로 한 재건축 반대그룹은 전권특별위원회란 조직을 새로 만들기도 했다. 이 모임의 최석동 회장은 “추진위 방식대로 사업을 할 경우 성냥갑 아파트가 될 것이 뻔하며 조합원 분담금을 수억 원씩 내야 하는데 아파트는 겨우 4~5평 늘어나는 데 불과하다”며 “추진위 계획대로 사업이 진행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우기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설립추진위원장은 “재건축 사업에 반대하는 세력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일정대로 사업성을 최대한 높여 조합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추진위에서 사업의 다음 단계인 조합을 결성하려면 조합원의 75%가 찬성을 해야 한다. 하지만 반대그룹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잠실주공5단지가 안전진단을 통과해 마치 금방 재건축이 추진될 것처럼 알고 문의를 해오는 사람이 있는데 사업이 기대처럼 진행되긴 어려울 것”이라며 “반대파가 많고 세입자도 많아 조합 설립에만 1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입자가 많이 입주해 있으면 집주인에게 일일이 연락해 조합설립동의서를 받아야 하는데 통상 부재 중인 경우도 많아 조합 설립에 필요한 유효 숫자를 채우기 어려운 것이 재건축 사업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4424가구나 되는 은마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은마아파트는 지난 3월 안전진단에 통과하면서 재건축 사업이 빨라질 것이란 기대감으로 일시적으로 호가가 움직였으나 역시 조합원 간의 내부 갈등으로 현재까지 사업이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은마아파트 조합원들은 기존 추진위 계획대로 재건축을 추진하자는 쪽과 용적률이 대폭 허용되는 역세권 개발이 가능할 때까지 기다리자는 입장, 그리고 재건축 반대 등 크게 세 가지 의견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역세권 개발을 원하는 쪽과 재건축 반대를 추진하는 조합원들은 은마재산찾기위원회 등의 모임을 결성해 조직적으로 추진위의 조합결성을 막고 있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은마아파트도 재건축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이 워낙 달라 조합 설립이 계획대로 진행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은마아파트는 특히 안전진단을 통과한 것이 오히려 전세가격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돼 불만을 터뜨리는 조합원들이 많다. 한 조합원은 “안전진단을 통과하면 집값이 5000만 원에서 1억 원 정도 오를 것으로 기대됐지만 호가만 일시적으로 올랐을 뿐 거래는 없다”면서 “안전진단을 통과해 사업이 빨라질 것이란 소문이 나돌면서 불안해진 세입자가 많아 오히려 전세금만 1억 원 정도 떨어졌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잠실주공5단지와 은마아파트 재건축 단지의 반대그룹은 기본적으로 부동산 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재건축을 추진하는 것은 조합원들에게 손해라는 점을 강조한다. 소형평형 의무비율 적용, 초과이익 환수, 분양가상한제 적용 등의 규제로 인해 지금 재건축을 추진하는 게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추진위를 해산시키고 잠실주공5단지의 경우 상업지역으로 변경되거나, 은마아파트의 경우 역세권개발지역 등으로 용도가 바뀔 때까지 기다리는 게 최선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추진위들은 “일부 소수의 조합원들이 재건축에 반대하고 물의를 일으키는 것일 뿐”이라며 “대다수가 재건축 추진에 찬성하고 있어 원활하게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택경기 침체가 심화될수록 사업성이 악화되므로 반대 세력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임달호 현도컨설팅 사장은 “재건축 사업도 주택시장이 활기를 띨 때면 쉽게 추진되지만 시장상황이 좋지 않으면 제대로 진행되기 어려운 것이 특징”이라면서 “안전진단 통과가 이들 단지에 호재로 작용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추진위들이 각종 고소고발, 소송전을 치르고 있는 점도 재건축 추진의 장애물이다.
박일한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기자 jumpcu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