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잊을 수 없는 M 씨. 그는 한때 잘나가는 사업가였다. 돈 많고 젊은 데다 호탕한 성격에 사교성까지 갖춘 그의 주변에는 늘 여자가 많았다. 대개 이런 남성들은 주(술)와 색(여자)과 친해지게 마련이다. 그 역시 이 필수코스를 빼놓지 않았다. 그런데, 도가 지나쳤다.
그의 아내도 처음에는 남편의 바람기를 묵인했다. “잘난 남자한테 여자들이 많이 꼬이는 건 당연하다. ‘엔조이’ 정도라면 봐줘라”는 친정어머니의 조언을 따랐다. 남편도 여자 만나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남편이 친구들과 동남아로 골프여행을 가면서 여자를 동반했다는 것을 알았을 땐 부부싸움을 크게 벌일 수밖에 없었다. 현지에서 여자를 만나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아예 한국에서부터 여자 파트너를 데려간다는 것은 아내가 보기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행동이었다.
M 씨도 처음에는 아내와 이혼할 뜻이 없었다. 아내가 자신의 취미생활(?)을 알고도 모르는 척해줬을 때는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을 조금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아내에게 값비싼 선물도 사다주곤 했다.
그러나 동남아 사건으로 자신의 죄상이 백일하에 드러난 뒤로는 아내의 선처나 이해를 바라지 않게 됐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됐다. ‘다른 여자들 만나지 않고는 못 산다. 이렇게 아내 눈치 보고 살 바에야 차라리 이혼을 하자. 그러면 아내도 자기 인생 찾아가고 나도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다’는 생각에 M 씨는 먼저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죄인이 큰소리를 친다는 욕을 먹을 수도 있지만, 굳이 껍데기뿐인 가정을 유지할 이유는 없었다.
♥ 불행의 씨앗이 된 ‘돌싱’
이혼 후 첫 1년은 M 씨에게 그야말로 지상낙원이었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누구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짓을 마음 놓고 했다. 가정에 대한 의무감에서 해방되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M 씨의 화려한 싱글라이프는 딱 거기까지였다.
2년째부터는 술이 늘더니 정상 컨디션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몸도 안 좋아지고 사생활도 복잡해지다 보니 사업은 내리막길로 치달았다. 2~3년 정도는 그동안 쌓은 신용으로 버텼다. 이후부터는 주색을 즐기면서 만들어진 네트워크에 얽히다가 완전히 주저앉고 말았다.
결국 M 씨는 큰 빚을 지고 해외로 도피했다. 전도유망했던 한 청년 사업가는 이혼 5년 만에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안겨 주고 신용불량자, 수배자 신세로 전락했다. 이혼 후 자기관리를 제대로 못한 뼈아픈 대가였다. 이혼을 하면 모든 게 다 자기 뜻대로 될 줄 알았건만 결국 이혼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런 선택이 됐다.
필자는 최근 M 씨 소식을 오랜만에 접했다. 40대 후반이 된 그는 재혼을 했고, 지방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조금만 자제하고 절제했더라면 그의 삶은 화려한 꽃을 피웠을 것이다. 모든 에너지를 쾌락에 쏟았던 이 남자의 사연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혼에는 승자가 없다. 이혼이 모든 문제와 갈등을 해결해 주리라는 생각은 큰 착각이다. 경솔한 이혼 결정은 불행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높다.
좋은만남 선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