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회사가 전략적 사업제휴를 맺은 것은 지난 2000년 9월. 당시 국내외 시장에서 위기를 맞았던 현대차는 다임러크라이슬러와 기술 및 자본제휴를 체결, 기사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다임러측도 중국, 일본시장을 겨냥해 동방진출을 모색하고 있던 터라 현대차와의 제휴는 아시아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여겼다.
당시 두 회사의 제휴조건을 보면 다임러측은 현대차에 상용차 엔진과 자동차생산 기술을 제공하는 한편 전체 지분의 9.99%를 인수하는 것이었다. 다임러측이 지분인수에 투입한 자금은 4억2천8백만달러였다. 이와 함께 다임러는 전체지분의 5%를 2010년 9월까지 추가매입하는 옵션도 맺었다.
만약 다임러측이 5%를 추가매입하게 되면 총지분은 15%를 넘어 현대차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준에 이르게 된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다임러는 5% 추가매입 옵션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현대차는 인수합병설에 시달렸다. 이렇게 되자 현대차측은 정몽구 회장과 현대모비스, INI스틸 등 그룹계열사들이 총동원돼 현대차 지분을 매입하는 등 방어전을 펴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계약을 맺은 지 4년 만에 두 회사는 결별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최근 다임러측은 현대차와의 포괄적 제휴관계를 청산하기 위한 전략적 수정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차도 최근 공시를 통해 “현대차와 다임러크라이슬러는 포괄적인 제휴관계를 프로젝트별 제휴관계로 전환하기 위해 협상을 진행중”이라고 공식 확인했다.
세계랭킹 3위(다임러)와 6위(현대차)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전세계 자동차업계의 시선을 집중시켰던 두 회사는 전략적 제휴 4년 만에 결별이라는 이슈로 다시 이목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 현대와 다임러크라이슬러사의 제휴관계가 곧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00년 9월 제휴발표를 하는 모습. | ||
다임러가 현대차와 전략제휴를 맺은 것은 크라이슬러와의 합병, 미쓰비시 지분 인수(37%) 등 글로벌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다임러는 현대차를 제외하고는 다른 두 제휴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야심을 갖고 추진했던 미쓰비시 지분인수 문제는 일본 증시의 몰락으로 인해 막대한 손실을 입게 돼 추가 투자에 나서야 할 만큼 다임러를 압박하고 있다.
다임러가 부실화된 미쓰비시의 경영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향후 추가로 7천억엔의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와의 결별을 고려하게 된 배경도 바로 이 때문이라는 게 자동차 업계의 분석이다. 현대차에 대한 투자로 벌어들인 돈(9천억원으로 추정된다)을 미쓰비시에 박겠다는 생각인 것.
대우증권 리서치본부의 자동차 산업 담당인 조용준 연구원은 “다임러 입장은 한국보다 중국이 더 매력적일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미쓰비시를 살리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현대차는 다임러와의 제휴에서 손해본 것일까.
전문가들은 다임러가 지분을 시장에서 처분할 경우 주가하락으로 인해 평가자산이 줄 수는 있지만 전주에서 다임러와 상용차 엔진공장을 1년 넘게 가동해오면서 핵심 기술을 전수받았다는 점에서 손해 본 장사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또 다임러가 현대차 주식을 시장에서 매각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도 “주가하락이 뻔한데 막무가내로 시장에서 매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대차측과 일종의 그린메일(주식인수 청구)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메리츠증권의 이영민 연구원도 “미쓰비시차가 지난해 7백20억엔의 적자를 기록해 자금수혈이 급한 상황이다. 따라서 현대차보다는 다임러가 다급하기 때문에 결별협상의 주도권은 현대차가 쥐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