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이자 이재현 CJ 회장의 부친이기도 한 이맹희 씨를 상대로 양육비 청구 소송이 제기됐다. |
박 씨는 소장에서 “이맹희 씨와 3년간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며 낳은 아들을 그간 혼자 키워왔다”며 “아들 이 씨가 20세가 된 시점까지를 기준으로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박 씨가 갑작스레 양육비 소송을 제기한 것을 두고 각종 억측이 쏟아지고 있다. 우선 세인들의 관심이 쏠리는 박 씨의 파란만장 인생사부터 이번 소송의 후폭풍까지, <일요신문>은 원고 박 씨의 아들 이 아무개 씨 단독 인터뷰 등을 통해 모든 궁금증을 풀어봤다.
1939년 일본에서 4녀 중 막내로 태어난 박 아무개 씨(는 해방 후 어머니를 따라 고국인 한국으로 건너왔다. 일본에서 세무서를 다니던 아버지는 일찍이 박 씨가 한 살 무렵 작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귀국 후 1960년까지 어머니와 함께 대구에서 거주하던 박 씨는 이듬해인 1961년 영화배우 데뷔를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영화계 문을 두드린 바로 그해 박 씨는 <황진이의 일생>(감독 윤봉춘)이란 영화에 출연했다. 당시 영화계에서 박 씨는 예명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도금봉 김지미 등 역대 황진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은 모두 영화계에 대스타가 되면서 황진이 영화는 당시 최고의 인기였다. 그만큼 신인 배우로서는 성공적 데뷔작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유는 알려지지 않은 채 그녀는 스크린에서 사라졌다. 그 이면에 바로 삼성가 장남 이맹희 씨가 있었다. 1962년 처녀의 몸으로 이 씨의 아이를 가진 박 씨는 영화계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박 씨가 이맹희 씨를 만난 것은 1961년 <황진이의 일생>이 막 개봉된 직후. 후배의 소개로 처음 박 씨를 만난 이 씨는 이후 1년여 동안이나 구애를 펼쳤다. “첫눈에 반했다”는 말과 함께. 기나긴 구애 끝에 이 씨는 결국 박 씨와 동거에 들어갔고 1963년 9월 아들 이 아무개 씨를 낳았다. 박 씨 나이 스물넷 때 일이다.
이들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맹희 씨는 박 씨와 만난 1961년 이미 유부남이었다. 앞서 1958년 이 씨는 경기도지사와 농림부 양정국장을 지낸 고 손영기 씨의 딸, 손복남 씨(77·현 CJ 고문)와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한 그해 이 씨는 손 씨와의 사이에서 이미경 CJ엔터테인먼트 부회장을, 이후 1960년 이재현 CJ 회장을 낳았다. 박 씨와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던 기간인 1962년에는 이재환 전 CJ 상무가 태어났다.
박 씨가 이 씨의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은 삼성가에서도 알고 있었다. 1964년 무렵 고 이병철 회장이 이 사실을 알고 대노해 박 씨에게 심부름꾼을 보낸 일이 있었다고 한다. “정말 이맹희 씨의 아들이 맞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맹희 씨가 돌림자를 쓰게 할 만큼 확실한 친자였지만 박 씨는 아들을 뺏길까 두려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 심부름꾼은 ‘이맹희의 아들이 아니다’라는 각서까지 받아갔다고 한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박 씨는 이 씨와 헤어져야만 했다.
헤어진 이후 3년간은 이맹희 씨가 꾸준히 생활비를 보내줬다고 한다. 아들 이 씨도 자주 보러 왔었다고. 하지만 이후 이병철 회장의 불호령이 떨어지면서 생활비도 끊겼고 이 씨는 아들을 만나러 오지도 않았다고 한다. 당시 이 씨가 박 씨에게 남긴 것이라곤 장충동에 위치한 20평대 주택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 뒤로 10년여 동안 이들은 만나지 못했다.
이후 박 씨가 이맹희 씨를 다시 만난 것은 1984년,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기 직전의 일이었다. 부자상봉을 위해 박 씨가 마련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이 씨는 아들에게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버클과 지갑을 줬다고 한다. 이후 아들 이 씨는 아버지와 해운대 별장, 대구의 호텔, 서울의 호텔에서 세 번 정도 만남을 가졌다. 하지만 이맹희 씨가 해외 출국 후 소재지가 불분명해 지면서 이들 가족은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이후 지금까지 박 씨는 CJ그룹 측에 아들과 관련해 금전적인 문제를 거론한 적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CJ그룹 관계자도 “지금까지 박 씨가 양육비나 특별히 금전적인 부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온 적은 전혀 없었다”고 확인했다.
박 씨의 아들 이 씨가 이맹희 씨의 친자라는 사실이 확인된 때를 봤을 때도 이번 양육비청구 소송의 시점은 의문이다. 2004년 부산지방법원에 친자확인 인지청구 소송을 제기한 이 씨는 2006년 7월 대법원으로부터 이맹희 씨의 친자가 맞다는 승소 판결을 받았다. ‘친자일 확률 99.9%’라는 유전자감식 결과가 결정적이었다.
당시 판결 이후 박 씨 측에서 곧바로 이번 과거양육비상환 청구소송을 충분히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 모자는 당시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때문에 왜 지금에 와서 갑작스럽게 양육비 소송을 벌이게 됐느냐는 궁금증이 남는 것이다.
▲ 모친 박 씨와 아들 이 씨의 오래전 사진. |
아들과 떨어져 현재 양평에서 거주하고 있는 박 씨 역시 금전적인 어려움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박 씨가 1984년 고등학교 3학년이던 아들 이 씨의 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시점은 1992년. 이후 1999년경부터 경기도 양평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다가 2004년 그만뒀지만 그해 아들이 사업을 시작했고 이에 성공하면서 이 씨가 모친 박 씨의 생활비를 책임지고 있다. 결국 이 씨의 사업체가 잘 되는 상황에서 어머니 박 씨의 경제적인 부분에도 어려움은 없다는 얘기다.
박 씨에게 특별한 건강상의 문제도 없다고 한다. 이 씨는 “어머니는 비록 노령이긴 하지만 건강하신 편”이라고 전했다. 이번 양육비소송도 박 씨가 모두 준비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 씨는 “양육비소송이라는 게 정해진 기준 안에 맞춰서 준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없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건강하시기 때문에) 변호사를 직접 만나 서류 준비 등 모든 소송 절차를 진행하셨다”고 보탰다.
그렇다면 박 씨는 왜 갑작스러운 양육비 소송을 벌이게 된 것일까. 사실 이번 소송을 두고 재계에서는 ‘상속재산분할청구 소송의 전초전’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지난 2006년 친자확인소송에서 승소한 후 재계에서는 이 씨가 상속된 재산의 분할을 요구하는 소송을 진행할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하지만 지금껏 이 씨는 CJ그룹에 재산 분할 등 금전적인 부분에서 특별한 요구를 한 적이 없다. 지난 2008년 말경에는 이 씨가 이재현 회장을 만나 상속재산의 분할을 요구했다는 말이 한때 돌기도 했지만 이 씨와 CJ그룹 양쪽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박 씨 측이 이번 양육비 소송에서 승소할 경우 상속재산분할청구 소송은 좀 더 수월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법무법인 우리 관계자는 “합의를 보기 위해 양육비 청구소송을 한 것이 아니라면 상속재산분할 청구소송으로 넘어가는 전 단계로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면서 “만약 양육비 소송에서 승소할 경우 상속재산분할 청구소송에 유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씨는 이런 일련의 분석에 대해 “소송의 시점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친자확인 소송 후 (이재현 회장 등) CJ 가족들이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렸는데 지금까지 ‘나 몰라라’ 식으로 대응하고 있어 이제야 소송을 시작하게 된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이 씨는 아직까지 상속재산분할 청구소송에 있어서는 신중한 입장이다. 그는 “주변인들도 도대체 왜 CJ그룹 측에 무언가 요구를 하지 않느냐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면서도 “하지만 우선은 현재 행방불명인 아버지(이맹희 씨)를 찾는 것이 급선무고 다른 문제는 차후에 생각해 볼 것”이라고 전했다.
이 씨는 2006년 친자확인 소송에서 승소한 이후 경찰에 ‘실종신고’를 통해 아버지 이맹희 씨를 찾아 나섰지만 실패했다. 이맹희 씨가 해외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 이 씨는 현재 또 다른 경로를 통해 아버지를 찾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CJ 쪽 사람들이 아버지를 만나게 해 달라면 ‘모른다’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어 찾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아직까지는 중국 어딘가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냈을 뿐”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를 찾은 이후 상속재산분할청구 소송을 진행할 가능성에 대해 이 씨는 “아직까지는 모르겠다”고만 밝혔다. 부정하지는 않은 셈이다. 결국 아버지를 찾는 수순이 끝나고 나면 CJ그룹으로서는 재산분할 소송이라는 회오리바람이 몰아칠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CJ그룹 관계자는 “이재현 회장이 재산을 상속 받은 것은 어머니 손복남 고문으로부터이지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과거양육비상환 청구소송은 비록 피고인 이맹희 씨가 ‘소재불명’ 상태지만 재판 진행에는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 이 씨에게 소장이 직접 송달되지 못할 경우 공시송달을 거쳐 재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시송달은 원고의 신청에 따라 법원게시판에 소장을 게시한 후 피고인이 소장을 직접 받은 것과 동일한 효력을 발생시키는 방법. 피고인이 국내 거주인인 경우 게시한 날로부터 2주, 외국인 경우에는 2개월간 공시를 거친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