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변 살인사건 수사기록. 사진=일요신문DB
지난 11월 12일은 낙동강변 살인사건 결심공판기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재판부는 마지막 증인신문과 함께 피고인(재심청구인) 신문과 검찰 구형, 변호인 최종변론, 피고인 최종진술 등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증인 송 아무개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현 변호사)가 법정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면서 계획 대부분이 무산됐다.
송 전 검사는 29년 전 부산지검 강력부 소속으로 낙동강변 살인사건 수사와 공판을 맡아 2인조를 ‘악질 범죄자’로 규정하고 법정에서 사형을 구형했다. 퇴직 후 현재 경남의 한 지역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며, 2000년대 이후부터 최근까지 이 지역 시장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법원은 7월 29일부터 10월 30일까지 송 전 검사에게 총 7차례 증인 소환장을 발송했다. 특히 증인신문기일이 결정된 9월부터 10월 사이에만 5차례 집중적으로 소환장을 보냈지만 모두 ‘폐문부재’(문이 잠겨있고 사람이 없음)로 전달되지 않았다. 직원이 직접 주소지에 찾아가 건네주는 교부송달 역시 같은 이유로 실패했다. 송 전 검사는 물론 가족, 사무실 직원 등이 4개월째 자택과 변호사 사무실 문을 잠그고 하나같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얘기다.
소환장이 송달되지 않으면 증인 소환의 법적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형사소송법상 소환에 불응할 때 강제로 데려올 수 있는 증인 구인 등 강제 소환 수단이나 과태료 결정을 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재심 공판에 참석 중인 부산지검은 11월 12일 법원에 의견서를 내고, 송 전 검사가 ‘의도적으로 재심재판에 불출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의견서에서 “송OO 변호사(전 검사)는 증인 소환장이 발송된 이후부터 본 재심 재판의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변호사 사무실을 열지 않고, 그 사무실 소속 사무장이 간헐적으로 사무실을 열어 서류를 들고 나오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송 변호사는 2020년 11월 초까지도 활동 지역 법원에서 진행되는 민사재판의 소송 대리인으로 참여하고 있고, 일부 변호사는 같은 시기 소송 상대방 대리인으로 송 변호사를 본 사실이 있다고 진술했다”며 “본건 재심 재판에 참여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사무실을 닫고 두문불출하고 있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재심청구인 2인조 측과 검찰은 모두 재심 공판에서 송 전 검사에 대한 증인신문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인조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경찰에서의 자백 경위 및 내용에 대해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재판에 넘겼으며 이 과정에서 허위공문서 작성, 직권남용, 폭행 등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검찰 역시 2020년 1월 6일 부산고등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 사유 가운데 하나로 꼽힌 증거서류 위조(왜곡, 허위공문서작성 및 동행사) 등에 대해 송 전 검사 본인에 대한 증인신문을 통해 사실 관계를 확인하겠다는 입장이다.
검찰이 11월 12일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 첨부된 사진. 검찰은 송 전 검사가 사무실을 닫고 증인 소환장을 받지 않고 있으나 변호사 활동은 정상적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 의견서를 확인한 재판부는 재심 청구인 측과 검찰 측에 송 전 검사에 대한 증인신문 진행 여부를 물었다. 검찰은 단순 우편 및 교부송달 외에 송 전 검사에게 소환장을 전달할 수 있는 별도 방안을 강구했다며 재판부에 전달했다. 2인조의 변론을 맡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는 “증인 신문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나 이로 인해 재심청구인들의 권리구제가 기약 없이 늦어지는 건 바라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송 전 검사에 대한 증인 신문 시도를 한 차례 더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기일은 오는 12월 10일이다. 결심공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검찰 구형은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과정에서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절차 가운데 하나다. 앞서 검찰은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위한 심리 과정에서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의 조사 내용과 결론에 신중한 입장을 보여 왔다. 과거사위 결론은 부산고등법원이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개시를 결정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또 다음 기일에서 송 전 검사가 증인으로 출석할 경우, 과거 이 사건에서 사형을 구형했던 검사의 주장과 재심 재판을 맡고 있는 현직 검사의 새 구형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게 되는 점도 관전 포인트다.
이날 증인신문과 변호인의 최종변론, 피고인 최종 진술, 검찰 구형 등은 무산됐으나 피고인(재심청구인) 신문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장동익, 최인철 씨는 둘 사이에 좀처럼 꺼내지 못해온 말을 꺼냈다. 박준영 변호사가 최인철 씨에 대한 신문을 마무리하며 “장동익 씨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
과거 최인철 씨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고문과 폭행을 이기지 못해 “장동익과 공범임을 시인하라”는 다그침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장동익 씨가 공범으로 몰려 고문을 받았다. 최인철 씨는 “진심으로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후 같은 질문을 받은 장동익 씨는 “인철이를 너무나도 많이 원망했다”면서도 “고문과 폭행을 직접 겪었던 만큼 어떤 상황이었고 어떤 마음이었는지 잘 안다. 용서한다”고 말했다.
그 밖에 장동익, 최인철 씨는 경찰에 끌려가기 전과 출소 이후의 자신들의 삶,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차분히 꺼내 놨다. 이들은 특히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여러 차례 표현했다.
최인철 씨는 “오랜 시간 나의 빈자리를 채우느라 이제는 몸이 많이 상해 버린 아내에게 너무나도 미안하다”며 “어린 아들 딸에게 과자 하나 사주지 못하는 등 아버지 역할을 못했다. 손주들에게는 좋은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장동익 씨 역시 “어머니의 유품인 과거 수사기록을 20여 년 동안 깨끗이 보관해뒀다가 출소한 뒤 건네준 셋째 동생 봉익이가 너무 고맙다. 이 기록들이 재심 청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누명을 쓰기 전부터 믿어주고 따라준 아내와 다른 형제들도 고맙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