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이 돌연 “당장은 우리금융과 합병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혀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지난 13일 열린 어윤대 신임 회장 취임식.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금융권에서는 지난 5월까지만 해도 금융당국에서 우리금융지주 민영화 방안으로 지분 분산 매각 방식을 가장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금융당국이 지분 일괄 매각, 분산 매각, 합병 등을 놓고 고심 끝에 인수자 부담을 덜어주는 차원에서 경남은행, 광주은행을 분리해 넘겨주는 방식의 분산 매각을 가장 적합한 방안으로 꼽았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금융당국이 우리금융의 민영화를 완전히 시장 자율 경쟁에 맡기는 쪽으로 이미 결론을 내렸다는 얘기가 있었다. 인수자가 매각 방식을 제안하고, 금융위가 이를 심사해 결정하는 방식이 유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금융위는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정해진 것도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발표 시기는 아직 정확하지 않다. 다만 현재 내부에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금융위 측의 설명이다.
이처럼 우리금융의 민영화를 놓고 7월 중순까지는 매각 방식을 확실히 밝히겠다던 금융당국의 입장과 달리 그 발표 시기가 차일피일 미뤄지자 이를 둘러싸고 각종 소문들이 쏟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금융 민영화가 미뤄지는 이면에 금융당국이 이미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결정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에서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풍문’이 금융권에 나돌면서 의혹을 더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이토록 우리금융 민영화 방안을 계속해서 늦추는 것에 대해 ‘어윤대 회장에게 시간을 벌어주려 하는 것 아니냐’는 설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KB금융지주 회장에 선임되면서 노동조합의 반발과 산적한 내부 과제 해결이 시급한 어 회장으로서는 우리금융 민영화 방안이 당장 발표되더라도 특별한 ‘액션’을 취하기는 아직까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어 회장에겐 우리금융 민영화 작업이 내부 조직을 안정시킨 이후로 미뤄지는 것을 가장 환영할 만하다는 관측이다.
어 회장은 지난 7월 13일 취임식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KB금융의 체질이 굉장히 약화돼 있어 앞으로 2년이 됐든 5년이 됐든 건강해질 때까지 우리금융 등 은행 인수는 없을 것”이라며 “증권사도 인수 재원이 없어서 자생적인 성장을 기본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우리금융 민영화 작업이 당장 이뤄진다면 M&A(인수·합병)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금융권에서는 이 같은 어 회장의 발언 역시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어 회장은 오래 전부터 대표적인 ‘메가뱅크론자’로 잘 알려져 있다. 취임 이전부터 KB금융의 덩치를 키울 필요성을 언급했던 어 회장으로서는 우리금융과의 합병안을 이처럼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금융권에서는 당초 약속됐던 우리금융 민영화 방안 발표 시기가 미뤄지고 그 와중에 우리금융의 가장 유력한 인수자로 거론되던 KB금융의 어 회장이 갑작스럽게 ‘선 내부 재활, 후 M&A 고려’ 발언을 한 것을 단순한 구도로 보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당국이 우리금융 민영화는 어차피 수년 내 이뤄지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고, 현 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어 회장으로서는 내실을 다지고 수년 후 우리금융과의 합병을 이루는 시나리오를 세운 상태에서 던진 발언이 아니냐는 것이다.
반면 현실적인 면에서 당장 노조의 반발 등에 어쩔 수 없이 우리금융 M&A를 포기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어 회장은 내정자 시절까지만 해도 “KB금융의 장기 발전을 위해 노조와 타협하지 않겠다”고 선포할 정도로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내정자 시절 국민은행 노조 측에서 면담을 요청했지만 어 회장이 이를 거절했다는 얘기가 들릴 정도다. 이는 주도권 경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로 분석됐다.
하지만 최근 어 회장은 노조와 적극적인 관계개선에 나선 상태다. 지난 14일 어 회장은 국민은행 노조 사무실을 방문해 노조 간부들과 장시간 면담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서 어 회장은 “우리금융과 합병은 부풀려진 측면이 있고 인력 구조조정 역시 강제로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노조의 반발이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어 회장 측의 판단이 작용하면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선임 당일 몸싸움까지 불사하며 어 회장의 퇴진운동을 벌였던 국민은행 노조 측은 현재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이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온 상태다. 더불어 영포라인 등 정권실세의 민간인 사찰 의혹이 불거지면서 ‘KB금융 회장 인선 개입 논란’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 이뤄진 어 회장의 우리금융 합병 포기 선언은 복잡한 이면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서는 피치 못할 선택이었을 뿐이라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제2의 관치논란을 우려한 금융당국에서 우리금융을 하나금융에 양보하는 쪽으로 조율에 나선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최근 영포라인, 선진연대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함께 대두된 어 회장의 선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우리금융을 KB금융 측에 몰아주는 모양새를 연출하게 되면 금융당국으로서도 부담감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어 회장의 KB금융이 우리금융 M&A 불참을 선언하자 금융권에서는 하나금융이 유일한 합병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의 경우 어윤대 회장이 KB금융에 내정된 직후 은행 대형화에 대한 필요성을 거론할 당시 이를 비판하며 치열한 신경전을 벌일 만큼 우리금융 M&A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하나금융의 김 회장 역시 대표적인 ‘친 MB’ 인사로 꼽히지만 KB금융의 현 상황보다는 부담이 덜할 것이라는 분석도 뒤따른다.
어쨌든 이처럼 금융권에서 각종 잡음이 난무하고 있는 것은 금융당국이 우리금융 민영화 방안에 대한 발표 시점을 뚜렷한 이유도 없이 차일피일 미루기 때문인 것은 분명하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 약속된 날이 미뤄지기만 하면 현 정권과 금융당국에 대해 시장의 신뢰도만 떨어뜨리는 부정적 결과를 부를 수밖에 없다”며 우려감을 표하기도 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