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은 직장에서도 종종 통용된다. 순해보이던 동기, 청렴결백을 입에 달고 살던 선배, 회사에 충성을 외치던 상사도 사실은 뒤가 구릴 수 있다. 우연이더라도 직장 동료들의 비리를 알게 되는 것은 달갑지 않다. 아는 척해도 곤란하고 모르는 척해도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이다. 한심한 눈길 한 번으로 족한 경우도 있고 간 큰 행동에 본인까지 가슴을 쓸어내리는 경우도 있다. 물들지 않게 마음을 다잡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보다 많은 직장인들이 한번쯤 경험하는 ‘사내 비리 목격담’을 모아봤다.
일을 제대로 안하고 눈속임하거나 교묘한 방법으로 이득을 챙기는 직장인들은 대부분 업무 권한을 최대한 활용한다. 고유 영역이기에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거나 확인하는 경우가 드물어서다. 하지만 아무리 보안을 유지해도 예상하지 않은 목격자가 있기 마련이다. 마케팅 회사에 근무하는 L 씨(여·30)는 졸지에 목격자가 됐다. 직속 선배가 회사의 신뢰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속임수를 쓰고 있었던 것.
“거래처 회사에서 제품이나 브랜드에 대한 설문조사를 요구할 때가 많아요. 다수의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서 통계 수치를 내는 것이 정석이죠. 때문에 거래처 쪽에서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선배는 일단 조사대상 인원을 부풀리는 것은 기본이고, 결과도 거래처에서 마음에 들어 하는 쪽으로 어떻게든 맞추더라고요. 만약 거래처에서 구체적인 자료를 요구하면 딱 걸릴 텐데 순간을 편하자고 일을 그렇게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다른 직원들은 이쪽 업무 프로세스를 잘 모르고 결과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지금껏 무사했던 것 같아요. 이런 사실을 모르는 척하는 게 맞는지 요즘 고민이에요.”
중소기업에 다니는 P 씨(29)도 L 씨와 사정이 비슷하다. 선배의 비리를 폭로하자니 입이 안 떨어지고 담아두자니 속이 쓰리다. 솔직히 선배처럼 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선배가 친절한 성격은 아닙니다. 어떻게든 후배에게 일을 떠넘기는 편이죠. 본인이 해야 할 일도 때로 제가 하게 만들기 일쑤예요. 그런 선배가 한 번은 외주 주는 일을 맡으면서 어쩐 일인지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말라’면서 위해주는 척하는 겁니다. 1000만 원이 훌쩍 넘는 큰 건이거든요. 바로 의심이 갔죠. 조용히 알아보니 외주 업체가 선배랑 친분이 있는 곳이더라고요. 작업을 맡기면서 일정 비율의 돈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전에도 수차례 이런 일이 있었더군요. 평소에는 일을 잔뜩 맡기면서 이런 일에는 시치미 뚝 떼고 뒷돈을 챙기는 모습을 보니까 사람 참 치사하게 보이데요.”
P 씨는 “그래선 안 되지만 선배의 행동을 말리기보다는 나한테도 좀 돌아오는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스스로에게 놀랐다”고 고백했다. 참 한심한(?) 비리도 있다. 딱 보기에도 사람이 참 잘아 보이는 경우다. 유통업체에 다니는 C 씨(여·28)는 같은 사무실 동료 직원을 보면 왜 그렇게 사는지 이해가 안 된단다.
“1년 넘도록 이상하게 회사 물건이 조금씩 없어지는 거예요. 비품이나 먹을거리 같은 거죠. 그러다 한 직원이 잠깐 휴직했다가 복직했는데 잠잠했던 사건이 줄을 이었어요. 몇몇 사람들이 그 직원을 의심하기 시작했죠. 평소에는 신경 쓰지 않았는데 가만히 지켜보니까 출근할 때는 홀쭉했던 가방이 퇴근할 때는 불룩해져있더라고요. 물건은 매일매일 없어지고 의심은 커져만 갔죠. 양심상 찔리는 일이지만 한번은 그 직원이 자리를 비웠을 때 사람들과 가방을 열어봤어요. 그랬더니 커피믹스부터 시작해서 컵라면 종이컵 음료수 사무용품 등이 한가득 나오더라고요. 기가 막히더라고요.”
사람 면전에 두고 뭐라고 할 수가 없어서 C 씨와 동료들은 입을 다물고 있지만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 직원의 자잘한 ‘절도 행각’은 계속되고 있다. C 씨는 “그렇게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는 사람이 그런 일을 할 줄은 몰랐다”며 “계속되면 조만간 상사한테 보고를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 정도는 귀엽게 봐줄 수도 있다. 증권사 직원 Y 씨(32)는 옆에서 보기에도 아슬아슬하게 큰 단위로 비리를 저지르는 동료 때문에 덩달아 조바심이 난다.
“친한 입사 동기가 있는데 자꾸 욕심을 내서 일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러다 큰일 터지지 싶어서 충고를 했는데 눈감아 달라고만 해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에도 큰 건을 겨우 무마시켰어요. 회사 몰래 고객한테 자금을 받아서 개인적으로 투자를 했답니다. 5000만 원이나 되는 큰돈이었는데 한마디로 다 날렸습니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도 없고 회복할 길이 없어 고객한테 무릎까지 꿇고 빌어서 겨우 무마시켰어요. 그 고객이 일본에서 오래 살아 물정 모르고 인정 많은 아주머니여서 그 동기의 앞길이 구만리라고 넘어가 주셨대요. 동기도, 그 고객도 이해가 안 되지만 문제는 이 친구가 여전히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거죠. 저 혼자 알고 있는데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제조회사에 근무하는 K 씨(31)도 진즉부터 선배의 비리를 알고 있었지만 갈수록 액수가 커지고 대담해지는 것이 여간 불안한 게 아니란다.
“제조 공정상 필요한 물품을 구입할 때 구입한 회사에서 실제 구입 금액보다 영수증을 부풀려 받은 다음 나중에 그 차액을 돌려받더군요. 뭐 회사에서 그렇게 푼돈을 모으는 직장인들이 꽤 있으니까 처음에는 그냥 눈감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욕심이 커져 그런지 점점 단위가 높아지는 겁니다. 처음 몇 만 원에서 지금은 수십만 원으로 훌쩍 늘었습니다. 구매량이 많은 달은 백만 단위로도 가져가는 것 같아요. 선배가 혼자 부당이득을 취하는 게 배가 아픈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저렇게 가다가 크게 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충고라도 해보려고 하지만 선배라 그것도 쉽지 않네요.”
직장 내에서 다른 직원들의 비리를 알게 되면 답답해질 때가 많다. 내부고발자가 환영받지 못하는 게 우리네 직장 문화이기 때문이다. 한 노무사는 “직장에서 조직적인 비리를 보고했을 때 오히려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아 쉬쉬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개인적인 작은 비리라도 확실한 증거가 확보되지 않으면 섣불리 보고하는 것은 다소 위험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