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은 KB카드가 지난해 10월 국민은행에 흡수 합병되면서 시작됐다. 2002년 10월부터 KB카드는 교보생명, 신한생명, SK생명, 라이나생명 등과 제휴를 맺고 이들 보험회사의 장기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업무를 대리해왔다. 보험상품을 판매한 대가로 KB카드는 보험계약 1건당 보험금의 10~20%에 달하는 수수료 수당을 이들 보험사로부터 받아 왔다.
그러나 KB카드가 국민은행에 합병되면서 이같은 보험업무를 중단하고 말았다.
그동안 KB카드는 텔레마케팅에 의존해 보험판매에 나섰으나 국민은행과 합병되면서 방카슈랑스(은행내에서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형태를 말함) 규정의 적용을 받게 돼 더이상 보험을 모집할 수 없게 됐다.
방카슈랑스 규정에 따르면 은행에 내방한 고객에 대해 보험을 판매할 수 있으나 텔레마케팅이나 은행매장을 벗어나 보험을 판매하는 것은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이 때문에 KB카드는 텔레마케팅에 의한 보험 판매를 할 수 없게 되었고 보험업무 또한 국민은행의 전담 인력이 있어 중단하게 됐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KB카드가 보험판매와 업무를 중단하더라도 기존에 인수한 보험계약은 유효하게 살아 있고 매달 보험료가 들어온다. 장기 보험상품은 만기가 10년에서 20년에 이르는 것으로 계약자는 만기시까지 KB카드에 보험료를 납입하게 된다.
KB카드는 “계약자들은 카드결제를 통해 매월 보험료를 납부하게 되는데 향후 입금될 보험료에 따른 ‘잔여수당’인 수수료수당 1백억원을 보험사에 청구했다. 그러나 보험사에서는 줄 수 없다고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KB카드의 논리는 ‘우리가 인수한 보험계약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보험사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KB카드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다. 보험업계에서는 ‘잔여수당’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지급하지 않는 것이 업계의 관행이라고 말하고 있다.
보험업계는 “보험모집에 따라 발생하는 수수료 수당은 보험계약의 관리유지측면에서 지급하는 것이다. 따라서 KB카드가 보험업무를 중단한 이상 잔여수당 1백억원은 줄 수 없다”며 “보험업계의 관행상 이런 경우에 잔여수당이 지급된 적이 없다”고 못박았다.
보험사의 논리는 향후 KB카드를 통해 ‘기존의 보험계약자들이 보험료를 납부하더라도 그 계약관리는 보험사가 하므로 수수료 수당은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보험사의 입장에 대해 KB카드는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KB카드의 한 관계자는 “보험계약은 처음 신규 인수가 매우 어렵고 이 과정에서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계약자들이 자동이체나 카드결제로 보험료를 납부하기 때문에 계약인수 후 유지관리비용은 매우 적다”고 반박한다.
또한 이 관계자는 “보험계약자들이 보험가입시 KB카드와 계약한 것이므로 보험료 수금과 고객응대도 KB카드가 계속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KB카드와 보험사는 1백억원에 이르는 이 수수료 수당의 명칭까지 달리 하며 싸우고 있다. KB카드는 향후 입금하게 될 보험료에 따른 ‘잔여수당’이라고 부르고 보험사는 보험계약의 유지관리측면을 강조하여 ‘계약관리수당’, ‘유지수당’ 등으로 부르며 티격태격하고 있는 것이다.
보험사측에서는 보험업무 제휴당시의 계약서내용도 문제삼고 있다. 교보생명의 한 관계자는 “당시 계약서에는 KB카드측의 사정으로 보험업무를 중단하게 된 경우에는 향후 수수료 수당은 지급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 KB카드와 국민은행이 합병한 것도 그쪽의 사정이므로 수수료 수당은 지급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KB카드는 “합병 후 보험업무를 지속하려 해도 방카슈랑스 규정에 묶여 할 수 없다”며 “보험회사들이 계속해서 잔여수당 지급을 거절할 경우 법적 대응도 고려중”이라고 전했다.
반면 보험회사들은 “부실경영으로 흡수합병된 마당에 이제 와서 방카슈랑스 규정 운운하는 것은 억지”라고 불쾌해 했다.
방카슈랑스시장에서 국민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임을 감안하면 보험회사들이 일방적으로 KB카드의 요구를 묵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교보생명의 경우 현재 국민은행과 방카슈랑스 업무제휴를 맺고 있어 이번 사태로 국민은행과의 관계가 악화될 것에 대해 염려하고 있다.
교보생명의 한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수수료 수당을 지급할 수 없으나 회사 내부에서 지급여부를 논의 중이다. 무조건 지급거절이라고 단정짓지 말아 달라”고 전했다.
보험사들이 수수료 수당 지급에 주저하는 것은 국민은행의 영향력 말고도 또 있다. 기존의 퇴직 설계사에 대한 잔여수당 문제가 바로 그 것이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만약 보험사가 KB카드에 잔여수당을 지급하게 된다면 기존의 잔여수당을 받지 못하고 퇴직한 설계사나 보험대리점들이 소급해서 잔여수당을 청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금액은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돼 보험사들이 이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2002년 교보생명은 퇴직한 설계사들이 잔여수당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해 법정 공방을 치른 적이 있다.
당시 소송에서 힘겹게 이긴 교보생명이 이번 KB카드의 요구에 굴복해 수수료 수당을 지급하게 되면 퇴직한 설계사들이 다시 이 문제를 들고 나올 것으로 보인다. 다른 보험회사들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금융감독원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원 보험감독국 관계자는 “문제의 성격이 민감하나 감독규정이 없어 금융감독원에서도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이번 사태는 어디까지나 카드사와 보험사 간의 개별계약에 대한 문제이므로 우리가 나설 사안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과연 KB카드와 보험사가 뜨거운 감자인 1백억원의 수당지급 문제를 두고 어떤 합의점을 찾아낼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