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개혁연대에서 증거자료로 제시한 ‘이중통장’ 사본. 두 통장이 계좌번호는 같은데 거래 내역이 다르다. |
국민은행이 의료개혁국민연대(의개연)에 의해 고발을 당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7월 23일 대검찰청에 고발장을 접수한 의개연 측은 국민은행이 은행거래법에 위반되는 이중통장을 발행해줌으로써 의협의 회계부정 및 횡령에 협조했다고 주장하며 국민은행과의 한판 전쟁을 선포하고 나섰다. 의개연 측의 주장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국민은행의 이미지 실추와 타격은 물론이고 그간 소문만 무성했던 의협의 횡령 의혹도 실체가 드러날 가능성이 높아 엄청난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의개연 윤정호 운영위원장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국민은행은 가짜 이중통장을 발행했고 의협은 이를 이용해 수십억 원의 횡령을 일삼아온 의혹이 있다. 의사라는 내 직업은 물론 내 모든 것을 걸고 말할 수 있으며 객관적인 증거도 있다. 시급한 것은 국민은행 이중통장 발행에 대한 검찰의 철저한 조사다. 의협의 횡령은 이중통장의 실체가 드러난 후에 검찰이 밝혀내야 할 부분이다.”
그러면 의개연 측이 국민은행을 고발하게 된 배경은 뭘까. 다음은 이에 대한 윤 위원장의 설명이다. 2004년 3월 의협 경리직원인 장 아무개 씨가 의협공금 13억 7000만 원을 횡령한 대형사고가 터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의협의 미온적인 예산처리가 계속 구설에 올랐고, 결국 2006년 3월 새로 선출된 의사협회장은 ‘공금횡령사건조사특위’를 구성했다.
그런데 2004년 예·결산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점이 포착된다. 2004년 2월 여의도에서 열린 의권투쟁을 위한 특별회비 중 남은 17억여 원이 2004년 예산안 어디에도 이월되지 않은 사실이 발견된 것이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의개연 측은 특별회비 이월액 17억여 원의 잔고 확인을 의협 집행부에 요구했다. 하지만 집행부는 “특별회비 통장에 17억 원이 고스란히 있으며 특별회비는 여러 통장으로 분산이체하지 않았다”며 잔고확인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해 7월 상근부회장이 특별회비 통장 잔액이 87만 5895원이라 보고함으로써 특별회비의 분산이체 사실이 발각되자 집행부는 특별회비가 새로 만든 H 은행 MMDA 통장으로 입금된다고 설명했다. 의개연은 이후에도 특별회비 통장의 잔고확인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이후 약 2년이 지난 2006년 9월 의개연 측은 “17억 원이 특별회비 통장에 잘 보전되어 있다”는 집행부의 말이 거짓일 뿐 아니라 의협에서 계좌번호가 같고 거래일도 중복되는데 입금일자와 잔액은 다른 ‘이중통장’을 이용해왔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문제의 통장은 국민은행 이촌지점에서 개설한 ‘대한의사협회 2004 특별회비 통장(계좌번호 803301-04-XXXXXX)’이다.
“총무이사와 예결산위원장은 2004년 5월과 8월에도 특별회비 통장에 17억원이 있다고 했으나 특별회비 원장을 보면 이미 2004년 4월 16일 특별회비 통장에서 17억 3400만 원이 인출됐고 당일 인감과 명의를 바꿔 타은행 여러 통장으로 분산이체된 상태였다. 또 H 은행 MMDA로 특별회비가 입금된다고 밝힌 것과는 달리 2004년 4월 16일 17억 3400만 원이 인출된 뒤에도 투쟁성금이 계속 특별회비 통장으로 입금 되고 있었다.”
▲ 국민은행 이중통장 발급 의혹에 대해 <일요신문>에 제보한 경희 요양병원 윤정호 내과과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특별회비 통장을 확인한 결과 2004년 4월 16일 18억 252만 5895원 중 17억 3400만 원을 인출해서 잔액이 6852만 5895원인 통장과, 2004년 4월 16일 17억 3487만 5895원에서 17억3400만 원을 인출해 잔액이 87만 5895원인 통장 등 두 개의 통장이 존재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이 특별회비 통장은 의개연 측이 2004년 5월부터 17억 원의 잔고가 있는지를 확인해달라고 요구했으나 의협 측으로부터 공개를 거부당한 바로 그 통장이었다.”
의개연 측이 입수한 특별회비 통장의 은행원장에 따르면 2004년 4월 16일 17억 3400만 원을 인출해 잔고는 6852만 5895원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사실은 의협 측에서 회계부정이 없었다며 발표한 통장의 잔액이 원장과 다르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확인결과 당시 의협 예결산위원장과 상근부회장 등이 보고한 특별회비 잔고는 87만 5895원이었다. 또 의협의 특별회비통장 보조부원장(모든 은행 계좌에 담긴 거래내역을 기록하는 장부의 보조장부)과 특별회비 제예금현황에도 2004년 4월 16일 17억 3400만 원을 인출해 잔고가 87만5895원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윤 위원장은 의협 측이 ‘이상없다’고 발표한 통장의 잔고가 바로 가짜 이중통장의 잔고라는 점을 거론하며 가짜통장이 있는 게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동일한 계좌임에도 거래내역과 잔액이 다른 두 개의 통장이 존재했고, 의협은 가짜통장을 이용해 회계감사를 받고 돈을 뒤로 빼돌린 의혹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의개연 측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국민은행과 의협 측은 이중통장의 존재 자체를 전면 부인했다. 의협 측은 예산결산심의분과위원장의 공문을 통해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2004년 특별회비회계 등에 대해 관련서류 일체를 확인한 결과 이월금액인 17억여 원은 2004 특별회비 통장에 예금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따라서 회계부정은 전혀 없으며 통장 및 회계관리는 철저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반박했다.
국민은행 역시 감사 명의의 공문을 통해 “국민은행은 허위통장을 발급한 사실이 없고 허위통장의 실체를 확인한 바도 없다”고 밝혔다. 국민은행 본점 관계자는 7월 22일 “우리 입장은 앞서 발송한 공문내용과 마찬가지다. 이 사건 관련 감사팀 담당자에게도 재차 확인했으나 결코 이중통장을 발급해준 사실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렇게 된 이상 검찰조사에도 성실히 응할 생각이다. 검찰조사결과 진실이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의개연 측은 이번만큼은 흐지부지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윤 위원장은 과거 몇 차례 검찰에 진정을 냈지만 담당 검사는 의협과 국민은행 관계자들을 일절 조사도 하지 않고 ‘증거불충분’으로 사건을 종결시켰다며 울분을 토했다.
윤 위원장은 “검찰이 제대로 수사만 한다면 진실은 금방 드러날 것이다. 우리는 모든 증거를 제출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실명을 걸고 공론화하고 있는 만큼 우리의 주장에 일말의 거짓이라도 있다면 어떤 책임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이중통장을 목격했으며 가짜통장의 존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를 갖고 있다는 의개연 측과 이중통장 발행 및 존재 자체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는 국민은행. 이들의 갈등은 23일 의개연 측이 검찰고발이라는 강수를 던짐으로써 이제 검찰 수사에 의해 결론이 날 수밖에 없게 됐다. 의협 횡령 의혹의 마스터키나 다름없는 이중통장 의혹은 과연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까.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