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다툼을 벌이던 형제들은 결국 장녀 A 씨를 정신병원에 감금시키고 그가 관리하던 재산을 몰수하는 범죄까지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유산에 눈이 멀어 형제 사이의 우애마저 저버린 드라마보다 더 기막힌 패륜현장 속으로 들어가 봤다.
2006년 1월 아버지 맹 아무개 씨가 갑작스레 유명을 달리한 순간부터 형제들의 기나긴 싸움은 시작됐다. 유서 한 장 없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터라 유산배분 문제로 형제들 간에 갈등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 어머니 역시 건강이 좋지 않아 재산문제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3남 2녀 자녀들 가운데 장녀인 A 씨가 대신 유산 일체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관리했다.
49제가 끝날 무렵 유산 배분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형제들이 자주 만남을 가졌지만 원만한 해결을 보지 못했다. 만날 때마다 고성이 오가기 일쑤였다고 한다.
갈등만 되풀이되는 상황에서 장녀 A 씨는 동생들에게 유산내역에 대해 아예 함구했다. 그는 “유산 배분에 대한 의견이 모아질 때까지 절대 입을 열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그렇게 끝도 없는 갈등이 두 달 동안 오고갔고, 차녀 B 씨의 남편 C 씨는 유산내역을 알아낼 수 있는 묘안을 떠올렸다. 처형 A 씨를 정신이상자로 입원시키면 유산에 대한 권리를 법적으로 박탈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경우 자연스레 차녀인 부인에게 유산에 대한 권리가 넘어올 터였다. 재산문제로 형제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로 한 3월 15일, B 씨는 남동생 세 명에게 이 같은 계획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이날 모임에서 장녀 A 씨는 유산내역 공개를 완강히 거부했고, 결국 C 씨의 계획대로 형제들은 응급환자이송단에 전화를 걸어 “언니(A 씨)가 정신발작을 일으켜 이성을 잃었다”고 허위 신고 했다. 곧 긴급이송차가 도착하자 A 씨는 “나머지 형제들이 자신을 모함하는 것이다”고 소리쳤지만 다섯 명이 입을 맞춰 정신이상자로 모는 통에 상황을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그들은 심지어 A 씨가 반항할 수 없게끔 이송차량에서 손과 발을 끈으로 묶기도 했다.
정신병원에 도착한 후 의사 앞에서 A 씨가 광분하며 상황을 설명하자 동생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피해망상증에 시달리고 있어 그렇다”며 눈시울을 붉히는 연극을 펼치기도 했다. 격렬히 반항하던 A 씨는 결국 감금됐고,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어머니가 정신병원으로 찾아올 때까지 독방에서 11시간을 보내야 했다.
친 형제를 정신병원에 감금시키면서까지 알고자 했던 유산내역은 예금통장 하나와 부동산 하나로 이 두 개를 모두 합해도 6000만 원 정도의 금액에 불과했다. B 씨는 애초 유산을 몰수해 형제들과 나눠 갖기로 했지만 금액이 기대에 미치지 않자 남편 C 씨와 이 돈을 챙긴 후 약속을 어기고 잠적했다.
정신병원을 빠져나온 A 씨는 경찰서에 피해사실을 신고하는 동시에 동생들을 고소했다. 그러나 이들은 반성하기는커녕 고소를 취하시키기 위해 다시 한 번 A 씨를 정신병원에 감금시켰다. 이번에는 어머니와의 연락 수단마저 차단시켰다. A 씨는 27일을 감금된 후 외삼촌의 도움으로 간신히 정신병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A 씨가 퇴원했을 때 기존에 진행 중이던 고소건은 ‘A 씨의 정신이상’을 빌미로 동생들이 무효화시킨 후였다.
동생들은 A 씨와 연락을 끊고 모두 잠적했지만 A 씨는 다시 한 번 동생들을 고소했다. 결국 A 씨를 비롯한 형제들은 법정에서 4년 만에 기구한 만남을 가졌다.
7월 22일 기자와 만난 서울동부지법 최누림 판사는 “형제들은 법정에 섰을 때도 여전히 A 씨를 정신병자로 몰아붙였지만 A 씨는 정신 이상 증상이 전혀 없는 걸로 입증됐다”며 “범죄를 주도한 B 씨에 대해 징역 1년 6개월이 선고됐다”고 설명했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