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조사에 따르면 김 씨는 거주지 없이 서울 소재 호텔을 전전하며 지내온 전문 사기범이었다. 김 씨는 사기행각을 통해 벌어들인 수입을 통해 명품 핸드백과 옷으로 화려하게 겉모습을 꾸민 뒤 피해자들을 속여 왔다. 그가 머문 호텔 직원들 역시 김 씨의 겉모습에 속아 그를 ‘샤넬 사모님’으로 부를 정도였다.
그러나 호텔 밖에서 김 씨는 아들을 동원해 사기행각을 벌일 정도로 베테랑 사기꾼이었다. 김 씨는 분당 소재 한 고급주택에 아들의 월세 집(월 500만 원)을 구해줬다. 집주인이 돈 많은 무역업체 대표였기 때문이었다. 김 씨는 월세 계약 자리에서 “2년치 월세 1억 2000만 원을 현금으로 한꺼번에 지불하겠다”며 재력을 과시했다. 뿐만 아니라 집부인을 불러내 ‘인사 차 들렀다’며 청와대 문양이 새겨진 보자기에서 인삼을 꺼내 “이전 정권 때부터 청와대 직속 비밀조직위원으로 일했는데 그쪽에서 선물을 보낸 것이다”며 신분을 속이기도 했다.
김 씨의 거짓말은 아들이 월세를 사는 2년 동안 계속됐다. 2년치의 월세 계약이 만료될 때쯤 김 씨는 본격적으로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김 씨는 “전직 대통령들이 컨테이너 등을 이용해 지하 금고에 비자금을 숨겨 놓는다”며 “그들이 숨겨둔 금괴와 달러, 구권 화폐 등을 찾아내 정부에 반환한 뒤 은닉자금의 15%를 받는 일을 하고 있다”며 위조지폐 뭉치를 보여주기도 했다.
2년 동안 계속된 김 씨의 계획된 사기행각에 속은 집주인은 김 씨가 “은닉된 비자금을 찾는 데 돈을 투자하라”고 종용하자 쉽게 제안을 받아들였고, 1년여의 시간 동안 모두 8억 4000만 원을 건네줬다.
7월 22일 기자와 통화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 수사대 관계자는 “김 씨는 비밀요원인 것처럼 속이기 위해 자신만의 특수 암호를 곳곳에 기록할 정도로 2년 동안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해 왔다”고 말했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