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활성화 대책 발표(지난 7월 22일 예정)를 이틀 앞둔 지난 20일 오전 신문과 방송에서 ‘정부가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지자 기획재정부 간부들이 만나는 기자들에게 되풀이했던 이야기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DTI 완화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정부는 DTI 완화 여부를 둘러싼 여권 내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부동산 대책 발표를 연기해야 했다. 어찌 보면 DTI 완화가 부동산 대책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 확정된 것처럼 보도될 때부터 이미 부동산 대책은 좌초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정부 관계자는 “부동산 정책에 혼선이 빚어져 정책 발표가 미뤄졌다기보다 일부에서 DTI에 대한 부처 간 합의가 완료되거나 정책 결정이 끝난 것처럼 떠들어대는 바람에 아무런 정책도 발표할 수 없게 된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고 규정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DTI가 빠진 정책을 내놓았다가는 핵심이 빠졌다는 비판을 받아 정책이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돼버렸다. 이 때문에 1주택 소유자 등 실제 부동산 거래자를 돕기 위한 정책 등 부동산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다른 정책도 발표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려버렸다. 또 주택을 분양받은 사람들이 기존 주택을 팔지 못해 이사를 못하고 주택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이 늘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들을 도울 수도 없게 돼버렸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번 부동산 활성화 대책에서 논란이 된 DTI란 금융부채 상환 능력을 소득으로 따져서 대출한도를 정하는 계산비율이다. 즉 총소득에서 부채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연간 소득이 5000만 원인 사람에게 DTI를 40% 적용할 경우 총부채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2000만 원을 초과하지 않도록 대출규모를 제한하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하자 DTI 기준을 강화하는 대출 규제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투기지역인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는 DTI가 40%로 규정되어 있으며 나머지 서울지역은 50%, 수도권은 60%로 되어 있다. 지방은 DTI 규제를 받지 않고 있다. 즉 DTI는 수도권의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한 핵심 정책인 셈이다. 또 DTI는 부동산 시장 하락이나 금리 인상시 금융시장 건전성을 지키고, 가계 부채 급증을 막는 수단이다.
그런데 최근 부동산 시장 침체가 심화되자 정부가 부동산 활성화 대책으로 DTI 기준을 완화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쏟아졌다. 특히 지난 7월 19일 고흥길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부동산 정책이 조만간 발표된다며 “(DTI 등) 금융제재를 조금씩 완화해야 한다는 시장의 얘기가 있었는데, 금융위 등에서는 부정적 입장을 취해왔다. 당도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왔는데 이제 공론화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언급하면서 DTI 완화가 기정사실화됐다.
이후 한나라당 의원들이 나서서 “부동산 경기 정상화를 위해 DTI 완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흐름이 강해지면서 언론에는 DTI 조정 수치까지 박아서 보도되기 시작했다. 강남 3구의 DTI는 현재와 같이 유지되지만 서울과 수도권의 경우 5∼10%포인트가 올라갈 것으로 정부가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아예 강남 3구와 서울, 수도권 모두 10%포인트 상향 조정한다는 내용까지 나왔다.
하지만 DTI의 핵심부처인 기획재정부에서는 이런 보도에도 아무런 변화 조짐이 없었다. 이석준 재정부 정책조정국장은 한나라당에서 DTI 완화이야기가 나온 19일 오전부터 “국토해양부와 논의를 하고 있지만 DTI 완화는 아니다. DTI 완화는 언론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우리의 기본 스탠스는 4·23 부동산 대책에 대한 보완책을 내놓는다는 데 있다”고 일관되게 이야기를 했다.
▲ 지난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야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윤증현 재정부 장관이 1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4회 소기업·소상공인 경쟁력강화 포럼 초청특강을 마친 뒤 기자들에게 “영원불변한 정책은 없다”고 말하면서 DTI 정책에 대한 재정부의 입장변화로 해석됐지만, 당시 자리를 함께했던 윤종원 경제정책국장은 “장관 발언에 대한 지나친 해석을 말아달라”고 선을 그었다. 문제는 누구도 이런 재정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 이번 DTI를 둘러싼 기사가 쏟아지는 동안 거의 모든 언론사의 재정부 출입기자들은 DTI 관련 기사 작성에서 배제됐다. 한 경제신문 출입기자는 지난 20일 “회사에서 마치 재정부 출입기자가 세상 흐름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 관련 정책의 실권을 쥐고 있는 재정부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한나라당 이야기만 듣고 기사를 쓰고 있다. 이러다 사단이 날 가능성이 크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처럼 재정부 주장을 귀 담아 듣지 않다보니 아예 출항도 하기 전에 좌초된 배가 마치 먼 바다를 항해 중인 것처럼 DTI 완화 기사가 쏟아졌다.
이번에 DTI 완화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진 국토부 내에서도 실제로는 DTI 완화에 부정적인 의견이 대세였다. 국토부 관계자는 “사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서울 집값이 조금 더 내려갔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22일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주제로 회의한다는 게 알려지면서 이 지경까지 와버렸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부동산 시장이 좀 더 가라앉아 가격 정상화가 이뤄지는 게 적합하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었다. 다만 부동산 업계를 대표하다보니 ‘DTI 완화에 반대한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정부의 이런 분위기는 20일 오후부터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최중경 청와대 경제수석과 윤증현 재정부 장관, 정종환 국토부 장관, 진동수 금융위원장, 김종창 금융감독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금융점검회의(서별관회의)에서 DTI 완화 문제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은 것이다. 친 서민을 내세운 청와대는 부동산 투기 조장 공세를 불러올 수 있는 DTI 완화에 부정적이었고, 정부 부처들도 DTI 완화에 소극적이었던 만큼 이미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다.
21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열린 주택거래 활성화 방안 관계 장관 회의도 이견을 좁히는 자리였다기보다 실제로는 ‘출구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자리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당연히 DTI 등의 문제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시장 상황 조사와 전문가 의견을 들어본 뒤 추후 대책을 내놓기로 했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당초 22일 발표키로 했던 부동산 활성화 대책 발표도 무기한 연기됐다.
김서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