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 |
벌써 3년이나 남자친구가 없는 후배 A가 내게 물었다. “선배, 대체 어딜 가야 남자를 만날 수 있는 거예요?” A는 남녀의 성비율이 10:90인 여초지역에서 근무하는 30대 중반의 노처녀로 자주 만나는 친구들도 모두 여자였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남자를 만날 기회가 좀처럼 없는 게 사실이었다. 그녀는 “선배, 남자 좀 소개시켜주세요”라고 나를 못살게 굴었다. 신기한 것은 남자가 90%인 부서에 근무하고, 거래처 직원의 대부분이 남자들인 B 역시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남자를 사귀고 싶어도 어디서 남자를 만나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눈이 높은 게 아니라, 진짜 남자가 없다니까. 좀 괜찮은 남자는 다 결혼했고, 내 주변엔 총각이 한 명도 없는 것 같아”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두 여자에게 말했다. “남자는 어딜 가나 만날 수 있다”고 말이다. ‘남자를 유혹할 마음의 준비를 제대로 한다면’이라는 단서가 붙긴 하지만 말이다.
가만히 앉아서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면 감을 먹을 수 없다. 감을 먹고 싶으면 나무를 흔들든, 기다란 막대로 가지를 흔들든, 감이 떨어지게 만들어야 한다. 연애도 마찬가지. 연애를 못하는 여자들은 늘 ‘기회가 없다’고 한탄하지만, 연애의 기회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나는 그것을 다이어트를 통해 깨달았다. 한창 살이 쪘던 서른 살에 한 후배는 “누나, 벌써 서른이야? 누나가 갑자기 여자로 안 보인다”라고 말했고, 소개팅을 주선하던 선배도 “야, 그 남자가 너 나이 많아서 싫대”라는 냉정한 말로 소개팅을 부러뜨렸었다. 그러다가 1년 후쯤 다이어트에 성공, 살이 쪽 빠지면서 내 주변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소개팅 할래?”라는 제안이 줄을 이었던 것. 심지어 거래처 직원까지도 “남자친구 없었어요? 당연히 있는 줄 알았어요. 내 친구 중에 괜찮은 애가 있는데…”라며 남자를 소개하겠다고 난리였다. 심지어 내가 여자로 보이지 않는다던 후배마저 “누나, 데이트하자”며 노골적으로 작업을 걸었다. 그때 절실하게 깨달았다. 남자를 소개해달라고 백번 조르는 것보다 나 자신이 매력적으로 바뀌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남자도 마찬가지다. 잘생기고 스타일리시한 남자는 여자들에게 인기다. 그런데 외모가 다는 아니라는 사실. 여자에게 제대로 어필하려면 외모 외에 한 가지가 더 있어야 한다. 태생적으로 유머러스한 남자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적어도 문화 상식 정도는 갖춰야 한다. 예전에 못생기고 뚱뚱한 데다 촌스러운 남자 동료가 있었는데, 그가 “리처드 용재 오닐이 내한한대. 이번엔 꼭 가야지”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나는 ‘어? 이 남자에게 이런 면도 있었나?’라며 그를 다시 본 기억이 있다. 평소 ‘스타일’에 있어서 ‘촌스럽다’고만 생각했던 남자가 우아한 클래식 문화에 정통하다는 것을 듣고, 그의 문화 스타일만큼은 인정할 만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의 아저씨 스타일마저도 클래식해 보였다고 할까. 그리고 여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비법을 하나 더 소개하자면, 스킨십이다.
사실 스킨십은 위험한 방법 중 하나다. 아무 일도 없는데 마음에 드는 후배 어깨를 잡았다가는 성희롱으로 고소당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컴맹인 그녀의 컴퓨터를 고쳐주는 상황이라면? 뒤에서 그녀를 거의 안다시피 해도 성희롱은커녕 “고맙다”는 인사를 들을 수 있다. 그것은 스킨십이 아니라 그녀를 돕기 위한 불가피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포즈를 취할 때 여자는 가슴이 살짝 두근거린다. 남자가 사심을 갖지 않았어도, 여자는 남자와 스킨십을 하는 순간, ‘어?’ 하는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그리고는 이내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내가 생각해도 오버다’라고 스스로를 자책한다.
확실한 것은 스킨십이 생기면 똑같은 남자도 달라 보인다는 것. 남자도 그렇지 않나? 청바지만 입던 10년지기 친구가 미니스커트를 입었다든가, 안경을 쓰던 친구가 렌즈를 꼈다던가, 생얼만 보여주던 친구가 메이크업을 했다던가 하는 사소한 계기로 친구가 여자로 보였던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스킨십은 이 사소한 계기를 만들어주는 좋은 방법이 되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변화로도 남녀 관계는 크게 달라진다. 딱 한 가지만 바꿔도 좋다. 그게 외모든, 라이프스타일이든, 아니면 그녀에게 접근하는 방식이든지, 뭐든지 하나만 바꿔도 관계는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다만 이 문제가 남는다. 살을 뺄 것인가, 옷을 살 것인가, 콘서트 티켓을 살 것인가의 문제 말이다.
박훈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