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 D 씨. 무역회사 중간간부인 그는 업무상 출장이 많은 편이다. 한 달에 보름 이상은 집을 비운다. 그러다 보니 명절은 물론 집안 대소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내가 그렇게나 꿈꾸었던 결혼 10주년 여행도 가지 못했다. 아내는 기념일에 맞춰 유럽여행을 가겠다고 몇 년 동안 적금을 부어온 터였다. 아내의 오랜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아내의 말수가 부쩍 줄어들었다. D 씨가 늦으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찍 들어와라” “내가 하숙집 아줌마냐”며 잔소리를 해대던 아내가 자신에게 무관심해 보이자 이제는 D 씨가 신경 쓰이게 되었다. 그러다가 부부 사이에 소동이 벌어졌다. 평소에 D 씨는 월급을 아내에게 통째로 맡기고 용돈을 타 쓰면서 살림에 대해서는 거의 관여를 안 하는 편이었다. 워낙 바쁘다 보니 월급날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그런 D 씨가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카드 청구서에는 대금이 200만~300만 원으로 나와 있었다. 네 식구 살림이라는 게 씀씀이가 빤한데 도대체 카드로 무엇을 샀을까 싶어 상세내역을 보니 대부분 아내의 옷과 화장품이었다. 최근 못 보던 옷들이 많아 물었더니 아내는 처녀 때 입던 옷이라고 했는데 그게 다 카드로 산 것이었다.
♥ 아내의 쇼핑중독 탓하기 전에 남편 일중독부터 탓하라
D 씨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여느 남편들 같았으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는데, D 씨는 아내를 추궁하기보다는 왜 그런 과소비를 했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았다. 그랬더니 적금을 타던 날 울던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내는 많이 미안해하면서도 어디에 정신을 몰두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고 했다. D 씨는 그런 아내를 떠올리며 ‘10년 참았으면 병이 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드 지출은 컸지만 그래도 아내가 쇼핑을 하면서 기분이 풀렸기를 바랐다.
D 씨는 사실 아내가 바람이 나서 자기 몸치장을 하는지 덜컥 겁이 났는데 그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싶었다. 그날 부부는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부부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는 아내에게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아내 역시 쇼핑이 아닌 다른 취미생활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부부생활의 권태와 허탈감을 쇼핑을 통해 해소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쇼핑중독은 당사자가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 하지만, 배우자나 가족에게도 책임이 있다. 여성의 경우 파트너와의 관계가 단절되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통로가 단절되면 쇼핑으로 화를 풀어내곤 한다. 그러므로 아내의 쇼핑중독을 탓하기 전에 남편은 일중독이 아닌지, 혹은 아내를 외롭게 한 것은 아닌지, 자신을 되돌아본다면 쇼핑중독이 가정파탄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웅진 좋은만남 선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