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의 위조문서 발급 사이트 캡처화면 합성사진. |
피의자들은 중국에 있는 전문위조업자 임 아무개 씨(31)에게 돈을 주고 문서 위조를 부탁했고, 임 씨가 전자메일로 위조문서를 보내면 이를 출력해 취업 등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위조한 문서로 국내 굴지의 기업에 취업하는가 하면 경쟁자를 제치고 승진시험에 버젓이 합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위조문서로 이루고자 했던 ‘인생역전’의 꿈은 순식간에 들통이 났고 지난 7월 26일 103명 모두 공문서 위조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위조 사이트를 클릭할 수밖에 없었던 피의자들의 기막힌 사연 속으로 들어가 봤다.
A씨는 과거 얼떨결에 단체 미팅에 나갔다가 ‘가짜’의 유혹에 빠지고 만 케이스. 그가 갑작스레 참석한 자리는 S 대 출신 남자들과 서울소재 사립대 출신 여성들이 참여한 소위 ‘명문대’ 미팅이었다. 사실 A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구직을 한 상태로 대학졸업장도 없었다. 하지만 사정이 생긴 친구가 간청을 해 ‘대타’로 참석, S 대 학생인 양 학력을 속였다. A 씨는 처음엔 단순히 몇 시간의 거짓말로 끝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당시 미팅에 참여한 여성 B 씨에게 첫눈에 반하면서 거짓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됐다.
만나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B 씨는 차츰 S 대 출신이라는 A 씨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A 씨가 대학 동기는 물론 간단한 대학 문화에 대해서도 통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B 씨는 결국 A 씨에게 “S 대 출신이라는 증거를 보여 달라”고 추궁하기 시작했다. A 씨는 거짓말이 들통 나 연인과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지만 그렇다고 진실을 밝힐 수도 없었다.
고민하던 그는 이메일에 전송된 광고 속에서 우연히 ‘위조문서 발급으로 고객님의 고민을 해결해 준다’는 인터넷 사이트를 발견했다. 이 사이트를 방문하자 위조하고 싶은 문서와 연락처만 남기면 하루 만에 원하는 문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소개돼 있었다. 반신반의하며 S 대학교 졸업증명서를 요청하며 연락처를 남기자 중국에 있던 위조업자 임 씨로부터 바로 연락이 왔다.
임 씨는 “하루 만에 서류를 받아볼 수 있고 성적증명서의 경우 위조가 복잡하기 때문에 80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며 가격을 흥정했다. 임 씨는 또 “문서위조 과정을 캠코더로 촬영해 증거를 먼저 보여준 뒤 돈을 받겠다”며 온라인 거래에 불안해하는 신청자를 달래기도 했다. A 씨는 결국 순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성적증명서를 위조했고 가짜 학력으로 B 씨와의 교제를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위조 증명서로 맺어진 인연은 결코 오래갈 수 없었다.
잘못된 사랑을 감추기 위해 임 씨의 사이트를 찾은 유부남도 있었다. C 씨(36)는 자신에게 내연녀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 아내를 속이기 위해 통화목록에서 내연녀의 전화번호만 삭제하는 ‘서비스’를 신청했다. 통신사를 방문해 자신의 통화내역을 건네받은 C 씨는 임 씨에게 120만 원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내연녀의 번호와 문자메시지 등 모든 증거를 지워 달라고 요청했다. C 씨의 이러한 요구는 어렵지 않게 성사됐고, 내연녀와의 통화목록을 정리하면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 뒤 C 씨는 ‘한동안’ 평탄한 가정생활을 이어갔지만 ‘가짜 알리바이’의 유효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D 씨의 경우는 위조 증명서 때문에 가짜 목사 행각까지 발각된 사례. D 씨는 고등학교 졸업 학력자로 신학대학원은커녕 신학대학교조차 졸업한 사실이 없었지만 신분을 속이고 오랜 기간 한 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해왔다. 교회에서 인지도가 높고 지도자로서 능력도 인정 받았던 그는 1년여 전 미국의 한 선교센터 원장 후보로 추천을 받는다.
그는 다른 후보들을 제치고 원장직에 오르려는 욕심으로 자신의 가짜 이력을 부풀리는 무리수를 뒀다. 대학원 박사 학위는 물론 졸업증명서, 그럴싸한 졸업논문까지 모두 위조한 것이다. 여태껏 쌓은 명성을 잃지 않기 위한 몸부림으로 D 씨는 모두 1200만 원을 임 씨에게 지불했지만 그의 위험한 거래는 더 큰 화를 불러왔다. 정작 원장 후보자 투표에서 다른 목사에게 고배를 마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서 위조범인 임 씨의 계좌가 경찰에 의해 추적되며 몇 년 동안 신도들을 속여 온 자신의 행각도 전부 들통이 났던 것.
가짜 대학 합격증으로 부모를 속인 후 등록금을 타 쓴 E 씨(21)의 행각 역시 1년 만에 덜미가 잡혔다. E 씨는 지난해 부모에게 대학진학에 실패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임 씨의 사이트를 찾았다. 그는 명품 옷과 가방을 사거나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느라 등록금 전액을 탕진하고 만다. 한 번 잘못된 길에 들어서자 그는 차마 거짓을 고백하지 못했고, 등록금 납부 영수증을 요구하는 부모에게 임 씨로부터 전달 받은 위조 영수증을 건네며 위태로운 가짜 대학생활을 이어왔다.
대학을 다니다 집안형편으로 자퇴를 해 학업을 마치지 못한 F 씨(37)에게도 위조 사이트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으로 다가왔다. 같은 대학을 졸업한 동기들이 하나둘씩 취업에 성공하며 평탄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 F 씨는 중도에 포기해야 했던 대학 졸업장이 점점 아쉬워졌다. 그는 반신반의하며 위조 사이트를 찾았고, 다른 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임 씨와의 통화 후 동영상을 통해 감쪽같은 문서 위조 과정을 목격했다. 그는 결국 30만 원을 송금했고 그토록 바라던 대학졸업장을 얻을 수 있었다.
졸업장을 손에 쥐자 F 씨는 더 큰 욕심을 부렸다. 대졸자 신분이 됐다고 느낀 그는 더 나은 직장에 구직을 신청했다. 입사지원서를 낸 뒤 임 씨에게 50만 원을 더 송금해 위조된 전기기사 2급 자격증까지 발급받았다. 그는 이 두 장의 허위문서로 ‘○○전력’에 최종 합격해 잠시나마 원하던 삶을 살았지만 한여름 밤의 꿈은 이내 깨지고 말았다.
7월 28일 기자와 만난 경찰 관계자는 “위조문서를 주문한 피의자들의 70%가 모두 취업시험에 낙방한 구직자들로 명문대 졸업장을 원했다”며 “위조된 졸업장으로 결국 취업에 성공해 지난 수개월 동안 문제없이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경찰 조사가 계속되자 문서 조작 사실이 들통날까봐 일찌감치 퇴직신청을 해 대부분 다시 무직상태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