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강조하던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나섰다. 사진은 시장을 둘러보는 이 대통령의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
이명박 대통령의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발언을 시작으로 현 정권 고위인사들의 연이은 ‘대기업 때리기’ 발언 이후 가장 먼저 나선 기관은 공정거래위원회다. 공정위는 8월부터 단가인하 강요 등 불공정거래 혐의가 있는 대기업을 상대로 직권조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전했다. 최근 정운찬 총리가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대기업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그 혜택이 중소기업까지 고루 퍼지지 않아 체감경기가 양극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직후 발표된 내용이다.
공정위는 박상용 사무처장을 단장으로 중소기업청 전국경제인연합회 등과 ‘대·중소기업 거래질서 확립 조사단’을 구성한 상태다. 그간 실시해 온 대기업 부당행위 실태자료를 근거로 8월 일제 점검을 실시할 것이라는 게 공정위 측의 설명이다. 사실 공정위의 올 하반기 조사는 이미 예견됐다. 공정위가 상반기부터 유통업체의 불공정 하도급거래, 대기업 계열사 부당지원, 라면·커피·면세유 담합조사 등 부당거래 내용과 관련한 서면조사를 실시해왔기 때문이다.
▲ 지난 7월 15일 만찬을 가진 전경련 회장단. |
그런데 이런 공정위의 기류와 더불어 국세청도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세청은 올 초 세무조사 대상 기업을 지난해 1만 5000여 건에 비해 25%가량 늘려 1만 8500여 건으로 정했다. 금융위기로 얼어붙었던 지난해보다 경기가 풀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정부의 친 서민 코드에 맞춘 세무조사 강화 차원에서 올 초 국세청 발표보다 훨씬 큰 규모와 강도의 세무조사가 벌어질 것이라고 관측한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지난 7월 29일 ‘최근 세무조사 관련 언론보도에 대한 국세청의 기본입장’이라는 반박자료를 통해 “2010년도 세무조사는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그동안 정기세무조사 유예조치 등으로 줄어들었던 세무조사 건수를 2007년도와 비슷한 수준으로 정상화시켜 진행 중”이라며 “2010년도 세무조사 원칙은 연초의 금년도 세무조사 운용 방향에 따라 정상적이고 일관되게 추진해 오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입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대기업들이 느끼는 부담감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세무조사를 받는 기업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이 대통령의 대기업 질타가 국세청 세무조사 강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무조사 강도가 세지면 추징금 규모는 커질 수밖에 없고 거액의 추징금을 맞은 기업의 경우 이미지에 큰 타격까지 입기 때문이다.
이 같은 움직임과 더불어 최근에는 검찰까지 이런 기류에 가세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최근 검찰 안팎에서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8월 초 새 수사팀을 구성하고 구체적인 수사 방향과 대상을 논의할 것이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주로 비자금 조성이나 횡령, 불공정 거래행위, 재산 국외 도피, 원청·하청기업 간 부당행위가 수사 대상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벌써부터 구체적으로 몇몇 대기업이 거론되고 있다. A 그룹의 경우 이미 7월 초부터 신축 공사현장 인허가 관련, 정부부처 로비 정황을 잡고 검찰에서 내사를 벌이고 있다는 말이 들리고 있다. B 기업의 경우 한 지방의 특정 행사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고위층에 커미션을 제공한 의혹을 두고 검찰에서 그간 내사 중이었다는 얘기가 있었다. 이 같은 대기업 관련 내사 사건들이 중수부로 이첩돼 수사가 진행되면 그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기업이 연루된 사건들인 만큼 대규모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쓴소리에 이어진 사정기관들의 대대적인 움직임 징후에 대기업들이 느끼는 불만과 부담감은 크다. 대기업 관계자들은 대부분 “그동안 일자리 창출 등 사회에 기여한 바가 작지 않은데 갑자기 정부에서 비판적 기조로 나오니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 28일 정병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이 ‘2010 전경련 제주하계포럼’ 개회사를 통해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강한 불만으로 해석되는 입장을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정부 움직임이 단지 정치적인 국면전환용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그것이 야당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7·28 재보선용’이었다면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일단 성공한 만큼 사정기관들의 대기업 공습 움직임이 현실화할지는 두고 봐야 할 듯하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