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나잇 & 데이>의 한 장면. |
결혼한 남자가 섹시해 보일 때 불륜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코엑스몰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대학교 선배를 만났는데 그는 대학교 때 모습 그대로였다. 졸업과 함께 소원해진 그를 거의 10년 만에 다시 만나니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그는 결혼한 몸. 일단 연애를 포기하고 선후배 사이에 걸맞은 대화를 나누었다. 얘기를 듣다보니 그는 결혼했지만 아이는 가질 생각이 없고 아내와는 오빠&동생 같은 사이라나? 심심하면 언제라도 술 정도는 사주겠다나? 갑자기 내 마음 속에 응큼한 마음이 생겼다. 사회적으로도 성공하고 외모도 여전히 매력적인 이 남자의 친절이 내 마음에 흑심을 심어주었던 것. ‘좀 즐기면 어때?’ 하는 마음을 심어주었던 것.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매력적인 유부남이라 ‘좀 꼬셔볼까?’ 하는 마음으로 술자리에 나갔는데 오히려 그가 너무 적극적으로 작업을 걸어서 흥미가 똑 떨어졌던 기억. 그가 “훈, 밤이 외롭고 심심하다”며 “연애하고 싶다”라며 나를 떠볼 때, 그 후 그가 매일 밤 전화를 해서 “뭐해? 술 한잔 할까?”라고 물었을 때, 대놓고 유혹하는 유부남은 어쩐지 추하다.
결혼이 연애를 방해하지 못하는 세상이 된 것만은 확실하다. 사실 “술 한 잔 더 사주세요!” “밥 사주세요. 고민이 있어요”라고 조르는 여후배의 제안을 물리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밥 먹고 술 마시다 보면 연애 스캔들은 생기게 마련. 결혼하면서 인기가 더 많아졌다는 후배도 있다. 그녀는 “결혼하기 전에는 데이트 신청하는 남자가 별로 없었는데, 결혼한 후부터 접근하는 남자가 더 많아졌어요. 제가 새침하고 도도한 인상이라 접근하기 어려웠지만, 유부녀라고 하니 ‘아님 말고’ 하는 생각이 많아져서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연애? 불륜이라고 하면 좀 싫은 느낌이지만 결혼을 했어도 가벼운 연애는 하고 싶죠”라고 덧붙였다. 유부남 유부녀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도 바뀌었다. 결혼한 남녀는 ‘건드리면 안 되는 상대’가 아니라, 오히려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상대’가 되어 바람둥이들의 성욕을 자극하는 것이다. 특히 현재 불륜에 발 담그고 있는 남자 혹은 여자라면 ‘나도 한 번?’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 보수적인 성향의 남자 후배조차 “하룻밤 원 나이트 스탠드를 하는 남자는 능력이 있어 보이지만 불륜 하는 남자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아요. 불륜이란 장기적 관계를 갖고 있다는 뜻이니까. 책임지지 못할 일을 하는 남자는 일에서도 책임감이 없을 것 같거든요. 그 옆에 있으면 내 이력도 안 좋아질 것 같아서 되도록이면 멀리하죠. 그런데 불륜 하는 여자? 그건 좀 생각이 달라지죠. ‘오늘 밤 한 번?’이라는 생각이 들잖아요. 묘하게 섹시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사냥 본능은 남자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여자도 ‘나쁜 남자 콤플렉스’라는 사냥 본능이 있다. 특히 나는 불륜을 할 것 같은 유부남보다는 불륜을 안 할 것 같은 유부남에게 더 끌린다. 연애에 목마른 남자보다는 연애 욕구와 상관없이 친절한 남자는 여자로서 유혹하는 맛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안 넘어오는 남자에게 더 안달하는 것은 나뿐이 아닐 듯. “오늘 밤 어떻게 해보고 싶다”는 시커먼 속이 훤히 보이는 남자는 꾀는 맛이 없지 않나. 그때 여자는 오히려 ‘넘어갈까, 안 넘어갈까’ 도도해진다. 오히려 작업인지 친절인지 헷갈리게 하는 남자의 다정한 행동은 여자를 신경 쓰게 만든다. ‘이 남자, 날 좋아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순간, 여자는 그 남자를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단 여자에게 먼저 손 내밀지 말 것. 선배의 말이 생각난다. “술 마시고 싶으면 전화해!” 연애 못하는 남자는 “전화해”라고 말하면서도 먼저 전화해버리지만, 매력적인 유부남은 먼저 전화하는 실수는 저지르지 않는다. 그저 3~4개월에 한 번씩 물 관리 차원에서 “밥 먹으러 와!”라고 친절한 전화를 할 뿐. 그리고 이 남자들은 “연애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다. 술을 마시다가 연애 감정이 동하면 말 대신 키스를 날릴 뿐이다. 말로 표현하지 않는 사랑에 여자들은 더 갈증을 느끼는 법. 연애, 알고 보면 말보다 행동이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그런데 유부남 유부녀일수록 쿨해야만 연애가 가능하다. 한 사람에게 집착하면 그 연애는 지루해지고, 상대는 피곤해진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건 연애 진도에 도움이 되지만 관계가 형성되면서 말이 많아지면 연애의 끝은 빨라진다. 유사연애를 즐기면서 생활의 활력을 찾는 것은 좋지만, 유사연애는 쿨한 성격일 때만 즐길 수 있다는 얘기. 연애를 시작하기 전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묻는 일일 것이다. ‘나는 과연 쿨한가?’라고.
박훈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