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주식시장이 침체기를 맞자 일부 대기업 오너 2세들이 지분 늘리기에 나서 관심을 끌고 있다. 주가가 떨어질 때 지분확보에 열을 올리는 것은 주식 매입자금도 적게 들고, 증권거래세 등 세금도 줄일 수 있기 때문.
특히 상당수 재벌그룹들은 2세들의 지분확보를 위해 신주인수권부 사채 등을 저가로 넘기는 방식을 주로 이용했으나, 이 수법이 특혜시비를 불러일으킴에 따라 최근에는 직접 시장에서 주식을 사들이는 정공법을 택하고 있다. 현재 눈길을 끌고 있는 그룹은 중견 재벌인 효성그룹과 동양그룹. 두 재벌의 2세들은 최근 몇 년 사이 그룹 경영 참여를 선언했거나, 조만간 회사 경영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는 지난 1998년 IMF 위기로 국내 증시가 폭락하는 상황에서 몇몇 재벌그룹들이 싼 값에 자사 주식을 매입, 2세들에게 넘겨줬던 것과 비슷한 모습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같은 상황이 먼저 감지된 곳은 효성그룹. 효성그룹은 현재 조석래 회장이 활발한 경영활동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지난 2000년을 전후해 조 회장의 2세인 현준-현문-현상 삼형제가 모두 그룹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장남 현준씨(36세)가 전략본부 부사장을, 차남 현문씨(35)가 전략본부 경영전략팀 전무, 삼남 현상씨(33)가 전략본부 경영전략팀 상무를 맡고 있는 것. 이들 삼형제가 비슷한 시기에 그룹 경영에 참여하다보니 업계에서는 이들 중 누가 조 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 회장이 될 것인지 재계의 관심사가 돼왔다.
이런 가운데 이들이 이번 주식시장 침체기를 맞아 자사 주식을 적극 매입하고 있다.
지난 3월 초를 기준으로 이들 삼형제의 보유 주식은 장남 현준씨가 전체의 5.44%(1백78만6천8백18주), 삼남인 현상씨가 5.03%(1백46만7천2백10주), 차남 현문씨가 4.03%(1백32만3천7백9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과 두 달간의 주식 매집 후에 현재 이들의 보유주식은 크게 바뀌었다. 장남 현준씨가 6.29%(2백6만4천2백54주), 차남 현문씨 5.98%(1백96만2천9백13주), 삼남 현상씨 5.88%(1백92만8천6백80주)를 보유하게 된 것.
먼저 효성 주식을 사들인 사람은 삼남인 현상씨였다. 현상씨는 지난 3월16일 장내에서 2만7천주를 사들여 오너 2세의 주식 매입을 선언했다. 그는 3월17~18일 양일간에 걸쳐 각각 1만1천주, 2만주를 추가로 사들였다. 그 다음 주에도 시장이 열리기가 무섭게 현상씨는 22~24일까지 사흘간 각각 6만1천3백주, 2만5천8백10주, 3만7천주를 각각 사들이며 불과 6일 만에 18만2천1백10주를 확보했다.
그런데 이튿날인 25~26일에는 삼남 현상씨 외에 장남 현준씨가 여기에 가세했다. 현상씨가 25, 26일 양일간 1천주, 2만1천주의 주식을 샀고, 같은 날 현준씨도 각각 1만9천30주, 1만2천주를 사들인 것.
그동안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던 차남 현문씨도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주식 매집에 가세했다. 29일 현문씨와 현상씨가 각각 주식을 3천7백60주, 2만3천주를 사들인 것. 이후 차남 현문씨는 3월30일 2만주, 31일 2만5천4백주를 사들이며 주식 확보에 나섰다.
그러나 이들 삼형제의 주식 매집은 지난 4월이 되면서 본격화됐다. 지난 4월 국내 전체 주식시장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었지만, 효성의 주가는 하락과 반등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들 삼형제는 평균 1만원(지난 4월1일~30일 평균단가)에 효성주식을 적극적으로 매입했다.
지난 4월 들어서만 장남 현준씨가 총 29만1천2백20주, 차남 현문씨가 53만7천2백44주, 삼남 현상씨가 35만8천20주를 각각 사들인 것. 이들이 효성 주식을 사들이기 위해 한 달 동안 들인 금액은 차남 현문씨가 제일 많았다. 현문씨는 4월에만 총 53억원 이상을 주식 사재기에 쏟아부었고, 현상씨가 35억원, 현준씨 29억원 가량을 쏟아부었다.
효성의 주가가 지지선인 20일선과 60일선 밑으로 연달아 떨어지며 주가가 폭락하던 5월에도 이들 삼형제는 끊임없이 주식을 사들였다.
현준씨는 5월3일 3만2천주, 4일 2만8천4백10주, 6일 6천주, 10일 3천주, 13일 3만주, 14일 3만8천4백30주 등 총 13만7천8백40주를 추가로 사들였다. 현문씨도 5월4일과 10일 각각 3천주, 3만2천주를 사들였고, 17일부터 21일까지 일주일 동안 22만7천4백92주를 사들여 총 26만2천4백92주를 추가로 확보했다. 현상씨도 5월에만 5만5천3백50주를 사들였다. 현문씨의 경우 두 달 만에 보유 지분율을 1.6% 이상이나 끌어올린 것이다.
효성그룹의 오너 2세들이 주식 매집에 여념이 없을 무렵, 또다른 재벌 그룹인 동양메이저의 2세들도 바빴다. 현재현 회장이 이끌고 있는 동양메이저그룹은 아직까지 2세들이 일절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는 현 회장이 아직은 50대 중반이어서 경영활동이 활발한 데다가, 그의 1남3녀 역시 나이가 어리기 때문이다. 장녀인 정담씨가 1977년생, 장남 승담씨가 1980년생, 차녀 경담씨 1982년생, 삼녀 행담씨가 1987년생이다.
이들 중 이번에 주식 매집에 나선 사람은 장녀 정담씨와 장남 승담씨. 지난 3월말을 기준으로 이들의 보유 주식은 정담씨 1.3%(35만7천8백15주), 승담씨 1.3%(35만7천4백35주)였다.
정담씨와 승담씨는 같은 날, 거의 같은 수량의 주식을 사들여 지분 확대에 나섰다. 특히 이들 남매는 자사의 주가가 빠질 때에는 적극 주식 매집에 나섰지만, 반대로 주가가 오를 때에는 일체 주식을 사지 않았다. 정담씨와 승담씨는 지난 4월14일과 16일 평균 2천5백80원을 들여 각각 1만5천주와 1만주씩을 매입, 주식 사재기를 시작했다. 이후 4월19일과 20일에 이들 남매는 각각 1만주씩을 더 사들였다. 정담씨와 승담씨는 전날보다 주가가 2.23% 빠진 4월21일에 각각 1만주, 7천5백10주를 샀으나, 다음날에 주가가 전날대비 12.93% 오른 상황에서는 정담씨만 3백20주를 샀다.
이들 남매는 회사의 주가가 한창 오르던 때에는 (28일 종가 3천50원) 잠시 주식 사기를 멈췄다가, 주가가 하락세로 돌아서자마자 다시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정담씨와 승담씨는 4월30일 각 1만5천주, 5월4일 4만주를 추가로 사들인 것. 이후 동양메이저의 주가가 수직 낙하하면서 이들 남매의 주식 매집은 연일 지속됐다.
장녀 정담씨가 5월10일 2만주, 11일 5천4백10주, 13일 2만주, 19일 9천4백주 등을 사들였고, 장남 승담씨도 5월10일 2만주, 11일 5천주, 13일 2만주, 19일 1만3천8백주를 사들였다. 이들 남매는 5월 들어서만 정담씨가 9만4천8백10주, 승담씨가 9만8천8백주를 사들였다.
이들이 이 주식을 사들이기 위해 한 달 동안 쏟아부은 돈은 대략 당일 종가를 기준으로 볼 때 1억5천만원 정도. 그러나 정담씨와 승담씨의 나이가 아직 20대 중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정담씨와 승담씨는 지속적인 주식 매입 끝에 현재 전체 지분의 1.42%씩을 각각 보유, 두 달 만에 0.12%의 지분을 추가로 확보했다.
이에 대해 증권가 관계자는 “주가 하락이 일반인들에게는 악재지만, 해당 회사의 주식을 매집해야 하는 오너 입장에서는 기회일 수 있다”며 “효성과 동양메이저 오너 2세들의 주식 매집도 이런 틈을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