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날아라 펭귄>의 한 장면. |
최근 한 취업포털 사이트의 조사에서 직장인들이 가장 마음에 드는 복리후생제도로 꼽은 것이 ‘휴무·휴가’제도다. 그만큼 직장인들에게 재충전을 위한 휴식은 중요해졌다. 이런 변화들도 일상이 된 지 오래지만 식품회사 3년차에 접어드는 K 씨(여·30)는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여겨진다.
“입사면접 볼 때는 향후 주5일제를 실시한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들어왔죠. 하지만 웬걸요, 다들 불만이 한 가득인데도 사장님 눈치 보느라 감히 입도 뻥긋 못하고 있어요. 윗분들이 나서야 되는데 몸을 사리고들 있으니 답답합니다. 격주라도 감지덕지일 텐데 아예 얘기를 꺼낼 분위기가 아니에요. 사실 토요일 근무 때문에 밑에 직원 구하기가 힘들어서 잡일까지 제가 다 한 적도 많아요. 근데 정말 지원하는 사람이 없으면 모르겠는데 구하기 힘들기는 해도 어찌어찌 구해진단 말입니다. 이러니 직원 구하기 힘들어서 토요 휴무를 해야 한다는 소리도 못하죠.”
K 씨는 “요즘 취업하기가 정말 힘든 모양”이라고 투덜댔다. 그는 “직원 구하는데 애를 먹어봐야 요새 추세가 어떤지 알 텐데”라면서 “하지만 사장님이 정작 이런 조건 때문에 꼭 필요한 인재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은 못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J 씨(여·27)도 휴가나 연차가 중요하긴 하지만 맘 편하게 써 본적은 없다고 털어놓는다.
“이사님들은 월차 연차 남김없이 싹 다 쓰라고 난리인데 쉽지가 않아요. 실질적으로 허락을 해 주는 부서장들은 직원들이 휴가 쓰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하거든요. 눈치란 눈치는 다 주고 하도 꼬치꼬치 캐물어서 허락 맡기 전에 완벽한 시나리오 짜느라고 머리가 터진다니까요. 무슨 작가도 아니고 휴가 계획을 꼼꼼하게 짜서 제출하거나 아니면 중견배우 같은 완벽한 연기력으로 병자가 되어야 겨우 허락이 떨어집니다. 며칠 전부터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눈치 빠른 상사들은 잘 넘어가지도 않아요. 당연히 쓰라고 있는 휴가를 왜 이렇게 어렵게 받아야 하는지 서글퍼져요.”
휴가나 휴무만큼 중요한 조건이 적절한 복리후생비용 지원이다. 하지만 IT회사에 근무하는 L 씨(31)는 쪼잔한 회사의 행태에 심각하게 이직을 고려 중이다.
“어이없는 게 회식비까지 걷더라고요. 한 달에 한 번 한 사람당 3만 원씩 걷는데 이런 상황이면 아예 회식을 안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경조사비가 지원되는 것도 아닌데 생돈 3만 원이 매달 나간다고 생각하니 속이 안 쓰리겠습니까. 안 내고 안 가겠다고 했더니 참석을 못해도 회식비는 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경우가 어디 있나 싶어요. 개인당 3000원씩 걷어서 생수 값 충당하는 회사도 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막상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회식비를 걷으니 받아들이기가 힘드네요.”
전자부품제조사에 다니는 S 씨(28)도 회사의 복리후생제도가 짜증을 넘어 부당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나름 인지도 있는 회사라서 처음 합격했을 때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본사 출근이 아니고 4개월간 지방에 있는 공장으로 출근해야 했어요. 서울에서 출퇴근하는데 왕복 4시간 걸립니다. 4개월만 참자고 했는데 매일같이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주말도 없이 한 달 내내 출근했는데 수당은 단 한푼도 없습니다. 신입은 원래 그러려니 하다가도 다른 회사 친구들 보면 저는 혹사 수준입니다. 야근하면서도 상사가 김밥 몇 줄 사주고 식대 한 번 받아본 적이 없어요. 애사심? 그런 건 전혀 생기질 않네요.”
M 씨(여·25)도 건축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회사가 참 ‘치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단다. 연봉이 높은 것도 아닌데 힘들게 대학 나와서 참 허무하단다.
“회사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서 대기업 같은 번듯한 복리후생제도는 아예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기본적인 건 있을 줄 알았죠. 일단 퇴직금이 없고요. 심지어 식대도 안 나와서 매일 도시락 싸갖고 다닙니다. 요즘 밥 한 끼가 5000원 훌쩍 넘잖아요. 월급에서 밥값 빼면 손가락 빨고 살아야 해서 피곤해도 꼭 도시락 쌉니다. 연봉이나 복리후생이 별로면 일이라도 적고 편해야 하는데 야근도 많고 자기개발 할 시간이 도대체 나질 않아요. 미래에 대한 비전을 생각하면 그저 탈출할 생각뿐이에요. 스펙 높여서 좋은 회사 못간 제 탓이 크죠 뭐.”
M 씨는 직원들끼리 만나면 회사에 대한 불만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그는 “회사에 불만이 많으니까 동료들끼리는 오히려 더 뭉치게 되더라”면서도 “매일 회사 욕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우울하다”고 털어놓았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H 씨(29)도 얼마 전 대학 친구 회사 이야길 듣고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꼈다. 그는 예비 직장인에게 “연봉이 다가 아니다”라고 충고하고 있다.
“연봉은 제가 조금 높습니다. 하지만 친구 회사는 퇴직금에 유류비 통신비 출퇴근비 중식비 경조사비 자녀학자금 자기개발비 인센티브 등등에 주5일제입니다. 저는 퇴직금에 중식비만 겨우 주거든요. 자녀학자금은커녕 내 공부할 돈도 지원 안 되는 마당에 그저 부러울 따름이죠. 하도 취업이 안 된다고 해서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급하게 취업한 것 같아 후회됩니다. 지금 다시 재취업에 도전하자니 엄두가 안 나기도 하고 그렇다고 만족하면서 다닐 자신은 없고 요새 기분이 좀 그래요.”
지난 7월 말 한국경영자총협회가 100인 이상 고용 382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대졸 신입사원의 퇴사 비율이 대기업의 3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급여 및 복리후생제도에 대한 불만이 조직 및 직무적응 실패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이유였다. 취업포털 잡코리아 김화수 대표는 “복리후생은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는 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제도로 유연한 회사 분위기를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며 “연봉인상 외에 복리후생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기업의 이직률을 낮출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