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야기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진동수 금융위원장(위), 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 청와대사진기자단 |
장관이 대거 바뀐 8·8 개각에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진동수 금융위원장, 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 등 핵심 경제라인은 자리를 그대로 지켰다. 이명박 대통령이 1년 이상 된 인사들은 전원 교체대상이라고 밝혔음에도 이들이 유임된 것은 향후 친 서민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 관가의 평가다. 글로벌 경제위기 파고는 무사히 넘었지만 이후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 현상을 막는 일이 이들에게 주어진 셈이다. 문제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별 뾰족한 정책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이번에 수장이 유임된 재정부는 물가안정과 친 서민 예산 및 세제 실업대책을, 금융위원회는 친 서민 금융을, 공정거래위는 대중소기업 상생방안의 핵심 부처다. 관련 정책의 발표 일정도 이미 8~9월에 예정돼있다. 8월 하순에는 2011년 세제개편안이 발표되며, 8월 말에는 대기업-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위한 종합대책, 9월에는 국가고용전략, 청년실업종합대책, 물가안정종합대책, 2011년 예산안 등이 발표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발표를 앞두고 있는 부처들은 담을 만한 내용을 찾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세제개편안은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라면서 “이미 각종 세금 인하가 이뤄진 데다 지방정부 재정 문제 때문에 소득세, 법인세 인하를 일부 유보하기로 해서 새로 담을 만한 내용이 없다. 일용근로자의 세율 감소, 서민 대중교통비 소득공제, 다자녀 세제혜택 증가 등이 논의되고 있지만 ‘그렇게 친 서민이라고 외치더니 겨우 이 정도냐’는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대기업-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위한 종합대책은 말의 성찬이 될 것이라는 자괴감 섞인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달 말에 발표되는 이번 대책에는 납품단가 협상을 개별 기업이 아닌 조합이나 단체 등이 맡는 방안, 납품단가 인하시 대기업에 인하 이유를 입증할 책임을 지우는 방안, 대기업 불공정 행위 상시 신고센터를 설치하는 방안 등이 들어가는 것이 유력하다. 하지만 조합이 가격 협상에 개입하는 데 한계가 있고 대기업의 권한이 막강하다는 점, 대기업 신고센터의 실효성 문제 등을 간과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가고용전략과 청년실업종합대책은 아직도 관계부처 간 협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공기업부터 유능한 청년 인재들을 보다 많이 고용하는 방안도 현재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것처럼 고용노동부는 청년 고용을 늘린 공기업에 평가점수를 높게 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공기업 개혁과 평가를 주도하고 있는 재정부는 ‘처음 듣는다’는 반응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공기업 선진화를 추진하면서 공기업은 총 2만 명의 인력을 줄여야 하는 상황. 기존 인력도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판에 새로운 인력을 뽑는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렵다. 게다가 청년 고용을 공기업 평가지표에 넣는다는 것은 연말이나 돼야 가능하다.
재정부 당국자는 “공기업 평가지표는 평가위원회에서 연말에 정하게 된다. 청년 고용 문제의 경우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평가지표에 청년 인턴과 청년 고용을 넣는 방안을 가져왔지만 두 개의 개념이 겹친다는 지적이 있어 청년 고용은 뺐다”면서 “이런 상황을 뻔히 알고 있는 고용노동부가 평가 지표에 청년 고용을 넣는 안이 9월 발표 대책에 포함된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고용노동부에서 이런 방안에 대한 공식적인 논의를 아직 제의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물가안정은 아예 거꾸로 가고 있다. 물가안정대책을 내놓겠다고 말은 했지만 실제로는 물가에 영향이 큰 가스와 전기 요금을 이미 올린 상황이다. 이렇다보니 유통구조 개선과 가격정보 공개 확대, 공공요금 가격 상한제 등 구조적인 부분만 건드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장바구니 물가는 폭등하는데 정책은 뜬 구름을 잡는 셈이다. 예산안 역시 친 서민기조를 담기에는 역부족이 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재정건전성 확보가 최대 화두인 상황에서 복지 예산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핵심 경제라인이 유임된 것은 실효성 있는 친 서민 정책을 내놓으라는 뜻으로 해석되지만 현실화할 만한 정책 수단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논란이 있지만 한나라당에서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아동수당 지급 방안 정도가 채택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 정책을 제외하면 피부에 와 닿을 만한 친 서민정책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개각에서는 자리는 지켰지만 이들 정책을 책임진 부처장들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서찬 언론인
옮기거나 관두거나
이용걸 차관은 국방부 차관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재정부 차관이 국방부 차관으로 수평 이동한 것이어서 아쉽다는 평가다. 국방부에서 차관은 그다지 힘이 없는 보직이라는 점도 그런 평가에 무게를 싣는다. 장관은 4성 장군, 차관은 3성 장군 퇴임자가 대개 앉지만 국방부 내에 현역 4성 장군이 8명이나 되기 때문에 실제 권한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용걸 차관은 차관급 인사 중에서 교체 영순위이었지만 8일 있었던 장관급 개각 때 내심 노렸던 국무총리실장(장관급)을 놓치면서 승진을 하지 못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예산실장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2개 회기 예산을 짜지 않는다는 관례가 있어 류성걸 예산실장의 2차관 임명은 거의 기정사실화됐었다. 이용걸 차관이 국무총리실장으로 갔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안 돼 국방부로 갔다”며 “직전 국방부 차관이었던 장수만 차관도 차관급이었던 조달청장에서 옮겨갔던 것이기는 하지만, 재정부 차관과는 격이 다르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번에 교체된 하영제 차관은 더 딱하다는 평가다. 새로 농식품부 장관으로 임명된 유정복 한나라당 의원이 행시 23회 동기인 데다 내무부에서 함께 일했던 때문이다. 동기 밑에서 일한다는 것은 하영제 차관은 물론 유정복 장관 모두에게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배경 탓에 농식품부에서는 장관급 인사가 끝난 뒤부터 이미 하영제 차관은 차관급 인사 때 교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