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 씨가 위조한 혐의를 받고 있는 대행계약서(왼쪽)와 대행계약을 맺은 적이 없다는 위병욱 씨의 증명서. |
“미셸위를 광고모델로 쓰는 비용이 5억 원이라고요?”
차준용 CIT건설(C 건설) 대표는 최 씨가 건넨 제안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최 씨는 골프업계 내에서는 마당발로 알려진 인물로 C 건설 측과 2009년부터 해외 골프용품 납품거래 건으로 인연을 맺어 온 터였다. 그런 그가 자신이 미셸위의 국내 에이전트 역할을 하고 있다며 한때 ‘1000만 달러 소녀’로 알려진 세계적인 골퍼를 5억 원에 광고모델로 쓸 수 있게 해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3년 전만 해도 미셸위의 국내 광고비는 28억 원이었다. 최 씨는 “미셸위의 가족과는 오랫동안 특별한 인연을 맺어왔기 때문에 자신이 중간에서 역할을 하면 이 정도 금액으로도 가능하다”고 호언장담했다. 최 씨는 그 증거로 미셸위, 미셸위의 아버지 위 씨와 함께 찍은 사진 등을 보여주었다.
C 건설 측에서 그의 주장을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최 씨의 화려한(?) 이력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인기 탤런트 L 씨의 남편이었을 당시 매니저 역할을 하면서 자연스레 방송 쪽 인맥을 많이 구축했다고 주장했다. 덕분에 미셸위 방송출연 건도 섭외부터 출연료 결정까지 자신이 직접 나서서 계약해 에이전트 역할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위 씨가 자신에게 미셸위의 국내 활동에 대한 대행권을 위임했다고 주장하며 증거로 위 씨의 사인이 담긴 대행계약서를 보여줬다. C 건설 측은 결국 2009년 8월 12일 최 씨와 광고 계약을 맺은 후 2억 원을 건넸다.
그런데 최 씨와 광고계약을 맺은 후부터 그가 전해 온 미셸위의 요구조건들이 하나둘 추가되기 시작했다. 최 씨는 두 달 후 “미셸위가 자신에게 경기도 광주의 한 골프클럽 특별회원으로 가입시켜 달라고 부탁했다”면서 “특별회원 가입비인 4000만 원을 대신 내주는 정도의 성의표시는 하자”고 제안했다. 5억 원이면 헐값이라고 생각했던 C 건설 측은 흔쾌히 최 씨의 요구를 받아 들였고, 4000만 원을 건넸다.
C 건설에 따르면 최 씨는 올해 4월에도 파주시 소재 신축 콘도 분양권을 두고 미셸위가 콘도를 분양받고 싶어한다고 넌지시 밝혔는데, 당시 최 씨는 “미셸위가 분양 받은 콘도라고 하면 홍보효과가 크지 않겠나. 홍보비라 생각하고 할인 분양을 해주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최 씨는 6억 3000만 원 상당을 할인금으로 제안했고, 이 역시 C 건설 측에서 받아들여 해당금액을 먼저 건넸다.
최 씨는 자주 회사를 방문해 미셸위에 대한 근황을 전하고 비공식 일정을 알려주기도 했다. 한번은 미셸위가 할아버지 기일을 맞아 비밀리에 한국에 귀국할 예정이라며 C 건설 측과의 만남을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 씨는 “미셸위 가족이 아무도 모르게 한국에 들어오는데 기사가 딸린 차량과 호텔 스위트룸, 그리고 귀국 선물을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C 건설 측은 한국에서의 숙박부터 이동수단, 식사까지 모든 비용을 지불했다. 명품가방을 좋아한다는 말에 최 씨를 통해 법인카드를 건넸다. 이후 법인카드에는 1000만 원짜리 명품 쇼핑백이 결제돼 있었다.
그러나 약속돼 있던 저녁 식사 자리에 미셸위 가족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최 씨는 “조용히 있다 갈 생각으로 귀국한 것인데 알려질까봐 상당히 조심스러워한다”며 대신 사죄했다.
그러던 중 최 씨의 행각을 의심하게 된 것은 광고촬영일이 잡혀 있던 올해 5월, 업체 관계자들이 촬영 장소인 LA로 떠나고 난 뒤였다. 미셸위가 입을 의상협찬, 장소섭외, 촬영 장비까지 갖춰진 상황이었지만 몇 시간을 기다려도 미셸위는 나타나지 않았다. 최 씨 역시 휴대폰을 꺼둔 채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최 씨는 전화연락 대신 메일을 보내왔다. 그는 메일을 통해 “전화기가 고장 나서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었다. 어떻게든 계약을 성사시켜 보려 위병욱 씨를 설득했지만 위 씨가 ‘아무리 생각해도 계약금이 적다. 6억 원 정도는 받아야겠다’고 했다. 광고비를 더 올려 줄 수 있다면 계속 협상을 진행하고, 올려 줄 수 없다면 계약해지 절차를 밟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최 씨의 행각을 수상하게 여긴 업체 측은 미국 현지에 있는 위 씨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위 씨는 “딸은 한국 에이전트가 없다. 최 씨가 자발적으로 몇 번 방송출연이나 국내 활동을 도와준 적은 있지만 계약관계로 얽힌 것은 아니다. C 건설 측의 제안은 최근에야 들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C 건설 측은 촬영 건을 접고 귀국한 후 최 씨에 대한 고소 절차를 밟았다. 경찰과 검찰조사에서 최 씨가 보여준 전속대행계약서는 위조된 것으로 판명 났고, 계약서 상의 사인 역시 위병욱 씨의 것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최 씨는 계속해서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8월 12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최 씨는 “C 건설 측도 나도 위병욱 씨에게 피해를 입은 것이다. 위 씨는 미셸위의 에이전트가 윌리엄 모리스에서 IMG로 바뀐 후부터 태도를 달리했다”며 “윌리엄 모리스는 한국지사가 없어 지난 5년 동안 모리스 측의 동의 아래 내가 모든 일을 대행해 왔는데 IMG로 에이전트가 바뀐 후부터 이중계약이 염려되자 위 씨가 나를 제외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C 건설로부터 받은 계약금 2억 원은 위 씨에게 전달했고 나머지 골프클럽 특별회원비 4000만 원과 콘도 할인분양금 6억 3000만 원은 모두 C 건설에 도로 돌려줬다”라고 주장했다. 계약서 사인이 위조된 것에 대해서는 “사인은 위 씨의 동의 아래 내가 대신 한 것이다. 미셸위가 2008, 2009년 한국을 찾아 모 대학병원 두 곳에 1억 원 상당의 기부계약을 할 때도 내가 대신 사인을 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최 씨에 대해서 C 건설 측은 여전히 의심을 풀지 않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위 씨와 최 씨 간에 이뤄지는 전속대행계약서만큼은 위 씨의 사인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 또 최 씨가 돈을 돌려준 시기도 경찰 조사가 시작된 이후라고 한다. 계약금 2억 원을 미셸위 측에 건넸다는 최 씨의 주장도 아직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미셸위 아버지 위 씨가 이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 최 씨는 지난 6월 30일 위 씨를 사기혐의로 강동경찰서에 고소했고 이 사건은 현재 서울 동부지검으로 송치돼 수사 중이다.
과연 최 씨는 또다른 피해자일까. 기자는 위 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그의 휴대폰으로 수차례 전화를 걸고 문자도 남겼지만 끝내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대신 위 씨도 변호사를 선임해 최 씨의 고소에 대응하고 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