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검사 프린세스>의 한 장면. |
‘화성인’을 딱 정해진 틀로 묶는 것은 어렵다. 다양한 분야에 다양한 모습으로 침투해 있기 때문이다. 요식업체에 근무하는 C 씨(30)의 제보에 따르면 그의 상사는 화성인일 가능성이 높단다. 메이저리그에 푹 빠진 그의 상사는 유명하지 않은 선수들의 시시콜콜한 신상명세까지 다 꿰고 있다. 메이저리그에 관해서라면 방대한 백과사전이나 다름없는 그 상사는 전날 경기를 보고 지각을 하거나 푹 꺼진 눈으로 출근하기 일쑤다.
“모든 일의 중심이 메이저리그에 가 있다고 보면 됩니다. 업무시간에도 인터넷 동영상으로 경기에 심취해 있을 때가 많아요. 점심시간에 밥 먹으면서도 대화 주제와 상관없는 선수들 이야기를 뜬금없이 하질 않나, 물어보지도 않은 경기 하이라이트에 대해서 줄줄이 늘어놓습니다. 처음에는 굉장히 좋아하나보다 했는데 지금은 다른 직원들 하고 잘 어울리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 푹 빠져있는 모습이 마냥 특이하게만 여겨지네요.”
C 씨는 상사의 모습을 보면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한 가지에 몰두해 있는 것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C 씨와는 달리 유통업체에서 일하는 A 씨(28)는 화성인 기질이 다분한 직장 동료에 대해 긍정적인 인상을 갖고 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빠져있는 그 동기는 사무실 책상에도 좋아하는 피규어(영화·만화·게임 등장 캐릭터 인형)를 잔뜩 늘어놓고 있거든요. 관련 DVD나 책은 광적일 정도로 수집합니다. 사실 그런 책이나 자료집, 피규어들이 상당히 비싸요. 월급쟁이 입장에서 수십만 원씩 한 번에 지출하는 모습을 보면 간도 크다고 생각할 때가 있죠. 그런데 항상 얼굴이 밝아요. 딱히 일본어를 배운 적도 없지만 일본어 만화책도 술술 읽는 걸 보면 ‘모범 화성인’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보험 관련 회사의 L 씨(여·26)는 남이야 뭐라 하던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면에서는 화성인을 높이 산다. 하지만 같은 팀 과장을 보면 좀 지나치다 싶다.
“전에는 정말 특이한 분이라는 말로 묘사를 했는데 이제는 ‘화성인스럽다’고 하면 거의 다 고개를 끄덕여요. 종교에 심취해 있는 그 과장은 보통 종교인과 여러 면에서 남다르죠. 일단 아침에 출근하면 자리에 앉자마자 종교 노래를 불러요. 점심때 밥 먹고 나면 항상 교리 공부를 하고요, 가끔은 퇴근시간이 지나도 바로 집에 가지 않고 공부에 매진해요. 장기간 종교 여행도 가고…. 30대 후반의 남자로, 가장으로 하기 힘든 행보 아니겠어요? 지구인답지 않죠.”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실행하는 것은 가장 화성인다운 행동이다. 특히 외모나 옷차림의 경우에 이런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난다. 무역회사에 근무하는 P 씨(30)는 같은 사무실에 있는 여직원이 틀림없는 화성인이라고 주장했다.
“언제나 코스프레(코스튬플레이, 만화나 게임의 주인공을 모방하는 것) 한 것처럼 공주 같은 옷만 입고 다닙니다. 양 갈래로 따고 올 때도 있고 정수리에 상투처럼 머리를 틀고 나타날 때도 있어요. 화장은 또 어떻구요. 일단 피부색을 무척 하얗게 해요. 서클 렌즈에 속눈썹을 붙이는 건 기본이고, 때로 짙은 눈 화장을 하고 올 때도 있어요. 워크숍을 가서도 그 여직원의 맨얼굴을 본 직원이 없습니다. 가장 늦게 자고 새벽같이 일어나 화장을 다 하고 있으니 볼 수가 없죠. 복장이 특이하지만 노출이 심한 것도 아니고 화장법도 요상하지만 귀신같지는 않아서 회사에서는 딱히 뭐라고 제재를 하지는 않더군요.”
지구인답지 않은 외모 가꾸기로 화성인의 정체가 탄로 나는 것은 남자도 마찬가지다.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H 씨(32)는 유난히 외모에 신경 쓰는 후배가 화성인 기질이 다분하다고 말한다.
“물류센터 규모가 엄청나서 지게차를 이용해요. 몇 미터 위로 쌓인 박스를 하루에도 수십 개씩 내리고 올리고 해야 하는 일이 만만치 않습니다. 땀이 비 오듯 나고 옷매무새도 금세 흐트러집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머리도 짧게 하고 옷도 최대한 편하게 입어요. 그런데 그 후배는 다릅니다. 머리는 아톰처럼 세우는데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은 구레나룻입니다. 수시로 가지런하게 눌러줍니다. 지정된 작업복 안에 입는 티셔츠는 늘 원색이에요. 그래도 부족하다고 생각을 하는지 눈에 띄는 액세서리 한두 개는 꼭 착용해요.”
H 씨는 처음에는 단순히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후배에게 주의를 줬다. 하지만 자신이 맡은 일에는 최선을 다하는지라 현재는 딱히 터치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모습이 부러울 때도 있단다.
스스로를 코스튬플레이 오타쿠(마니아)로 칭하며 어엿한 건설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S 씨(32)는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언제나 자신이 몰두하는 것에 당당하다. 그는 “특이한 취미나 특기를 가진 사람들이 조용히 자신만의 세계를 살아가는 것을 외계인 취급해서 아웃사이더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대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확실한 자신의 주관대로 본인의 즐거움을 찾아 열심히 살아가는 ‘화성인’들에게 편견은 금물이다. 자신과 다르지만, 때로 좀 지나쳐 보일 때도 있지만, 그들 나름의 세계를 인정하고 열린 시각으로 보는 아량이 필요하다는 것. 왜냐하면 화성인의 눈으로 보면 지구인도 외계인에 불과하니까.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