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폭풍전야> |
너무 더운 날씨는 섹스를 방해한다. 남자의 경우, 열대야 때문에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성기능이 저하되어 섹스를 멀리하게 된다나? 여름철 섹스를 멀리하는 것은 여자도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더워 죽겠는데 남자가 달라붙으면 짜증나기 쉬우니까. “아, 더워, 저리 좀 가!”라는 여자의 말에 상처받은 남자가 한 둘이랴! 순간적으로 짜증은 부렸지만, 여자 역시 미안하긴 마찬가지. 하지만 여자도 남자들이 ‘누가 아쉽나보자. 네가 먼저 섹스하자고 할 때까지 손 하나 건드리나 봐라’라고 생각하는 마음 정도는 눈치 챈다. 실제로 이런 다툼이 있은 후 며칠 정도는 섹스 제안이 뜸하니까. 여자가 한 번 “NO” 하면 남자가 다시 섹스하자고 제안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남자를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서 여자의 시간적, 정서적 투자가 필요한 것. 그래서 후배 A는 “너무 피곤해서 섹스고 뭐고 귀찮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남자친구가 덤비면 그가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거절하면 남자친구가 삐치잖아요. 그걸 달래는 게 더 피곤해서 가끔은 그냥 섹스를 할 때도 있어요”라고 말한 적도 있다.
사실 여자가 섹스를 거절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날 입은 속옷이 마음에 안 들어서, 겨드랑이 털을 정리하지 못해서, 다음날 아침 일찍 중요한 프리젠테이션이 있어서, 감기 몸살 때문에 컨디션이 안 좋아서, 남자친구에게 화난 일이 있어서, 모텔에 가기 싫어서, 심지어 그가 씻지도 않고 덤벼서 “NO”를 외치게 될 때도 있는 것. 하지만 이때 여자의 “NO”는 남자가 싫어서가 아니다. 그저 “지금은 NO”의 의미다. 그런데 남자는 그것을 모두 “NO”로 받아들인다. 그러니 여자는 ‘NO’라는 말을 하기가 점점 힘들어질 수밖에.
5년간 한 남자와 장기간 연애를 한 후배 B는 “너무 오래된 사이다보니 섹스 매너 같은 게 없어졌어요. 아무 때나 불쑥 찾아와서 섹스하는 게 당연하게 생각되나 봐요. 술에 취해서 씻지도 않고 덤비고. 그래서 질색을 하고 거절을 했더니 화를 내며 집에 간 거 있죠? 그리고는 며칠 동안 연락을 하지 않는 거예요”라며 샤워만 하고 다가왔어도 응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연애를 시작한 선배 C는 어떤가. “그가 카섹스를 하려고 하기에 내가 싫다고 했거든. 내 나이가 몇인데 카섹스냐. 그런데 그가 그 다음부터 섹스를 안 하려고 하는 거야. 참나. 어이가 없어서.”
이보다 더 사소한 이유도 섹스를 거절한 경우도 있다. 후배 D는 “선배, 그가 내 옷을 벗기려고 하는데 아침에 속옷을 안 맞춰 입은 게 딱 생각나는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하기가 싫어졌어요”라고 말했고, 또 다른 후배 E는 “전 모텔에 가는 게 싫어요. 첫날밤은 자연스럽게 여행을 떠나서 치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여행지에서도 결국 모텔에 가는 것일 텐데, 여자의 기분은 이처럼 복잡 미묘하다. 그와의 섹스가 싫은 게 아니라, 그때 그 어떤 상황이 싫었던 것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섹스의 과정에서도 제안과 거절의 문제는 발생한다. 후배 하나는 “후배위를 한 번 싫다고 했더니, 그날 이후 후배위는 절대 안하는 거예요. 참 융통성 없기는! 다시 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참 그렇더라고요”라며 푸념을 했다. 나 역시 평소엔 가슴이 최고 성감대인데 신기할 정도로 아무 느낌이 들지 않는 날이 있었다. 그래서 남자친구에게 “아무 느낌이 안나”라고 말했더니, 그 역시 그날 이후 몇 번은 가슴을 대충 지나치고 말았다. 내가 가슴에 별 느낌을 못 갖는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니 그날의 섹스는 최고조에 이르기 어려웠다. 전희가 충분치 않은데 오르가슴에 이르기가 쉽겠나. 이뿐인가. “처음에는 그가 커닐링구스를 하는 게 좀 쑥스럽더라고. 그래서 손사래를 쳤더니 나중에는 진짜 안하는 거야”라고 불평을 하는 후배도 있었다. 여자의 내숭을 NO로 알아들은 남자도 있었던 것. 사소한 오해가 섹스를 방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여자의 거절은 대부분 “지금은”을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지금은 싫어”라는 말. “씻지 않은 네가 싫어” “카섹스를 하자고 하는 네가 싫어” “모텔에 가자고 하는 네가 싫어”인 셈. 그런데 남자들은 “네가 싫어” 혹은 “이건 싫어”라는 말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지? 섹스는 몸의 대화이고, 시시각각 달라지는 것이다. 섹스를 잘하려면, 여자가 했던 말을 기억하는 것보다는 그때 여자의 몸이 했던 반응을 기억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겠나. 입으로는 “안 돼!”라고 말했어도 “아~”라고 탄성을 지르면서 몸을 꼬았다면, 몸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박훈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