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솔그룹, 한국통신 (왼쪽부터) | ||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역사적인 평양 방문으로 온나라가 떠들썩했다. 분단 역사가 새 장을 맞는 날이었던 것이다.
이 역사적인 사건에 세인들의 눈과 귀가 쏠려 있을 즈음, 국내 경제계에선 또다른 사건이 하나 벌어지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가려 주목을 받진 못했지만 이 경제사건도 매우 큰 사안이었다.
바로 한솔엠닷컴이란 회사가 KT에 인수된 것이었다. 018이란 식별번호로 PCS사업에 뛰어들었던 한솔엠닷컴은 이날 3조원이란 천문학적인 돈을 받고 KT에 팔렸다.
이 사건이 있은 지 4년 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이 빅딜이 다시 시비의 도마위에 올랐다.
이 거래와 관련해 국세청이 세금포탈 의혹을 제기하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이 발단이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지난 19일 한솔엠닷컴이 KT에 매각되는 과정에 양도소득세 등 세금포탈 의혹이 있다는 국세청의 고발에 따라 수사중이라고 밝혔다.
당시 KT가 사들인 한솔엠닷컴 주식은 전체의 47.85%인 7천5백만주. 이 중 한솔은 12.9%, 벨캐나다가 20.97%, AIG가 13.98%를 갖고 있었다.
검찰에 따르면 서울지방국세청이 고발장을 접수한 것은 지난 2월. 국세청은 한솔그룹 조동만 회장이 2000년 6월 자신이 갖고 있던 한솔엠닷컴의 주식 약 6백만주를 KT에 팔면서 양도소득세를 줄여서 신고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이 거래가 있었던 2000년 당시 KT에 재직한 고위 임원을 불러 매매가 산정 등에 대해 소환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공식 확인했다.
그러나 한솔측은 “지난 2000년 한솔엠닷컴의 보유 주식을 팔 때 국세청의 가이드에 따라 70억원의 양도소득세를 냈다”며 ‘매매가격 조작’을 통한 세금탈루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4년 전에 있었던 이 빅딜이 엉뚱하게도 세금포탈이라는 사유로 다시 수면 위에 부상하자 정·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사실 한솔엠닷컴에 대한 인수합병 발표가 있은 직후부터 정치권에선 한솔에 특혜를 주었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았다.
한솔그룹이 한솔엠닷컴에 2천억원을 투자해 엄청난 이득을 봤고, 한솔엠닷컴에 투자했던 벨캐나다와 AIG 역시 3천5백억원을 투자해 2조1천억원을 받는 등 대박을 거두었다는 점에서 갖가지 의혹이 제기될 소지는 없지 않았다.
당시 한나라당 소속인 윤영탁 의원은 국회 질의 자료를 통해 KT가 한솔엠닷컴의 주식을 주당 3만7천원에 매입한 것은 ‘특혜’라고 주장했다. 당시 코스닥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크게 하락하고 있던 상황에 비춰 고평가됐다는 주장이었다.
이와 관련해 눈여겨 볼 대목은 검찰의 수사 방향. 현재 검찰 주변에선 ‘한솔의 탈루세액이 생각보다 많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한솔그룹이 한솔엠닷컴 매각과정에서 매각가를 높이기 위해 KT 관계자들에게 ‘로비’를 벌였다는 얘기도 오가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검찰로부터 참고인 조사를 받았던 당시 KT 고위 임원인 최아무개씨와 성아무개씨는 “금품 수수 사실은 없다”며 강력 부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3조원대의 ‘거래’였고, 공기업이 낀 빅딜이었다는 점에서 많은 의혹이 뒤따르고 있다. 때문에 재계는 검찰의 수사 확대여부에 관심을 쏟고 있다.
만약 수사가 확대된다면 이 사건과 직, 간접적으로 연관된 유력 인사도 적지 않다. 거래가 성사될 당시 KT는 YS인맥으로 분류되는 이계철씨가 사장을 맡고 있었다. 또 한솔엠닷컴과 합병 당사자인 한통프리텔의 사장을 맡고 있었던 사람은 이용경 현 KT 사장이다. 합병을 추진했던 또다른 당사자인 정보통신부의 당시 장관은 이번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서 당선된 안병엽 의원이다.
때문에 검찰이 어느 정도의 범위까지 이번 수사를 확대해 나갈 것인지 하는 부분은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이미 정·재계 일각에선 돈의 출구가 과거 정권의 실세였던 A씨라는 설과 막후에 남아 있던 B씨가 최종 기착지라는 루머 등 각종 얘기들이 오가고 있다.
한편 이에 대해 한솔측은 “당시 정당한 거래로 이뤄진 것이며 세금을 적게 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확한 회계자료에 근거해 국세청에 세금을 냈으며, 항간에서 오가는 거래를 둘러싼 로비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한솔측은 국세청이 제기한 양도세 포탈부분과 관련해서도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해 분명하게 사실을 밝히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