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향수> |
여자가 향기로 남자의 오감을 깨우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온 섹스 노하우. 클레오파트라는 침대 맡에 장미꽃을 뿌리고 벽에 장미꽃 주머니를 달아 안토니우스의 시각과 후각을 동시에 자극했고, 양귀비는 향을 먹어서 몸에서 향기가 돌게 했다나? 그런데 그들이 관능적인 향기를 품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생각하면, 나는 어쩐지 쓴웃음이 난다. 아쉽게도 남자는 향기에 둔감하니까.
데이트에 나서기 전, 페로몬 향수를 귀 뒤와 손목에 꼼꼼히 뿌린들 ‘오늘, 너한테 좋은 향기가 나’라고 말해주는 남자를 나는 거의 보지 못했다. 내 몸 구석구석을 애무할 때에도, 때로는 거칠게 파고들며 섹스를 할 때조차 남자들은 ‘가슴이 너무 맛있어’ ‘네 엉덩이가 최고야’ 등등의 찬사를 늘어놓을 뿐, 막상 내가 그를 위해 준비한 관능적인 향기에 대한 코멘트를 해주는 남자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매일 아침 향수를 뿌리는 내 후배는 섹스 후 남자에게 “너는 향수를 안 뿌려서 너무 좋아”라는 말을 들었다나?
그런데 이런 경우는 어떤가. 그녀의 방문을 열었는데, 라벤더 아로마 향이 확 풍긴다면? 혹은 그녀의 차 안에서 풋풋한 사과향이 퍼져 나온다면? ‘아, 이 여자에게 이렇게 여성적인 면이 있었네?’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아무리 향기에 둔감한 남자라도 여자의 공간에서 배어나오는 향기에는 묘하게 반응하게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라벤더 향기가 날 때마다 흥분이 된다는 남자도 있었다.
그는 “라벤더 향기가 가득한 여자친구의 집에서 섹스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정말 끝내줬거든요. 그 기억 때문인지 라벤더 향을 맡을 때마다 그 때가 생각나요. 가끔 여자친구가 라벤더 핸드크림을 바를 때면 묘하게 흥분이 된다니까요”라고 말했을 정도. 음악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듯, 향기 역시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향기에 둔감한 남자도 여자의 겨드랑이 암내, 입 냄새에는 민감하다는 사실이다. 섹스에 몰입하다가 여자의 입 냄새 때문에 깜짝 놀라서 성욕까지 사라졌다는 남자, 여자의 머리카락에서 저녁에 먹은 삼겹살 냄새가 확 올라와서 로맨틱한 분위기를 망쳤다는 남자까지, 향기에는 둔하면서도 냄새에는 예민하게 반응하는 남자가 어찌나 많은지! 그러니 여자가 샤워하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괜찮아. 땀 냄새 안나”라고 말하는 남자와의 섹스는 여자에게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그런데 내 경험상, 사람의 체취와 입 냄새가 그리 피하고 싶은 것만도 아니다. 첫사랑이었던 A를 4년 만에 다시 만나 키스를 나누면서 ‘아, 바로 이 냄새야’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해가 갈까. A의 입에서 좋은 향기가 난 것도, 그의 몸에서 애프터 셰이브 크림의 향기가 풍긴 것도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A 특유의 입 냄새와 체취를 유난히 좋아했던 듯하다. A와 헤어지고 나서 두 번째 남자친구와 첫 키스를 했을 때 나는 비로소 사람의 외모가 다른 만큼 인간의 입 냄새와 체취도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깨달았는데, 신기하게도 두 번째 남자친구인 B와 키스를 할 때마다 A가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여자의 몸에서 악취가 나지 않는 한, 남자는 여자의 은밀한 곳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를 싫어하지 않는다. 또한 내가 이제껏 만난 남자들은 여자의 애액 냄새를 맡으면 오히려 흥분이 된다는 남자가 더 많았다. 질염, 위염, 다한증(이 세 가지 병은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조차 참기 힘든 악취를 동반하는 질병이다)에 걸린 남녀가 아니라면, 섹스를 하면서 냄새 때문에 고민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여자는 좀 다르다. 여자는 향기와 냄새, 모두에 반응한다. 남자의 체취에 반응하고, 그가 사용하는 치약과 비누 냄새, 그가 뿌린 스킨과 샤워코롱, 향수에도 반응하며, 심지어 집 곳곳에 베인 방향제 향기에도 민감하다. 남자의 암내와 입냄새에 성욕이 사라지기도 하고, 남자의 방에 밴 홀아비 냄새에 실망하기도 하며, 그의 스킨 냄새와 샤워코롱 냄새에 충동적으로 성욕이 생기기도 한다. 남자는 여자의 향수 냄새를 인지하지도 못하지만 여자는 남자의 냄새가 달라지는 것만으로도 성욕이 생기거나 없어질 수도 있다는 것. 냄새만으로도 성욕이 생길 수 있다고?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이다. 기분 좋은 향기는 기분 좋은 추억을 불러일으키니까.
박훈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