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 | ||
특히 두 사람의 만남에 대해 공정위나 삼성측 모두 장소, 일정, 회담내용 등을 비공개로 해 재계의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두 사람의 이번 회동은 강철규 위원장이 재벌총수들과의 순례회동을 시작한 이후 네 번째. 강 위원장은 이 회장과의 회동에 앞서 그동안 구본무 LG그룹 회장, 최태원 SK(주)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등 세 사람을 만났다.
그러나 다른 재벌그룹 총수들과의 만남은 공정위측이나 해당 기업측에서도 회동내용 등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외부에 공개했다. 그럼에도 이례적으로 삼성 이 회장과의 회동내용은 비공개로 방침을 정하자 재계는 매우 궁금해 하는 모습이다.
회동 내용을 비공개로 할 것을 주문한 곳은 삼성그룹측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그만큼 삼성이 당면한 현안이 많기 때문에 회동사항을 비공개로 하자고 제안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다.
이 회장과 강 위원장의 회동에서 오간 얘기는 무엇일까.
삼성그룹과 공정위 안팎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를 종합해보면 두 사람이 나눈 대화의 핵심은 현재 삼성의 가장 골치아픈 사인인 에버랜드 지주회사 문제였을 것이란 추측이다.
에버랜드 문제는 이건희 회장의 외동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가 현재 삼성그룹의 지주회사격이 되어 있는 이 회사의 최대 대주주가 되는 과정이 투명치 못했다는 점에서 비롯됐다. 이 부분이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의 공격 빌미가 됐고, 재벌가의 편법적 증여로 도마 위에 오르면서 도덕성 시비로 번지게 됐다.
에버랜드 문제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 첫째는 이재용 상무가 에버랜드 주식을 취득한 과정이고, 둘째는 에버랜드가 과연 삼성그룹의 지주회사인가 하는 점이다.
이 상무가 에버랜드의 대주주가 된 것은 90년대 중반 이 회사가 발행한 신주인수권부 사채(BW)를 매입한 것이 계기였다. 당시 에버랜드는 사채를 발행하면서 기존 대주주(삼성그룹 계열사)들이 대거 실권을 했고, 실권된 사채를 이 상무측(세 명의 여동생을 포함)이 매입했다.
사채를 매입한 가격도 문제지만, 왜 계열사들이 에버랜드 사채발행시 실권을 했느냐는 점이었다. 이 부분은 그 이후 진행된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 사채 실권문제와 더불어 편법증여, 혹은 특혜시비를 낳고 있다. 이 사안은 사실 법적으론 문제가 될 게 없다는 것이 법원측의 판단이었다. 참여연대측은 이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갔지만, 1심 판결에서 삼성측이 승리했다.
▲ 이건희 삼성 회장 | ||
그럼에도 삼성측은 에버랜드의 지주회사 변신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다. 그 이유는 만약 에버랜드가 지주회사로 변신할 경우 삼성생명의 지분을 일정 부분 팔아야 하고, 삼성생명도 삼성전자의 지분을 처분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재용 상무를 정점으로 형성돼 있는 삼성의 지분구조에 큰 변화가 발생하게 되며, 자칫 후계구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니 삼성으로선 에버랜드의 지주회사 변신은 적극 막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삼성측이 에버랜드가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을 처분하거나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방법도 삼성생명의 경우 비공개 기업이라는 점에서 처분할 방법은 현재로선 없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2004년 5월 말 현재 7.1%) 역시 투자목적이기 때문에 처분하기도 어렵다.
이 부분을 두고 이미 금감원과 삼성은 한 차례 정면 충돌을 했다. 금감원의 경우 지난 5월 말까지 이 문제를 해소하지 않을 경우 과징금을 물리겠다는 강공을 취했다. 이 같은 금감원의 엄포에 대해 삼성은 일단 예봉을 피해 숨고르기에 나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삼성전자의 주가가 40만원대 중반으로 급락하면서 에버랜드 시비도 약간 주춤하게 됐다.
그러나 공정거래법과 관련한 문제는 삼성으로선 부담스럽다. 공정거래법상 에버랜드의 지주회사 요건 탈피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의 에버랜드 지분구조가 계속될 경우 에버랜드는 지주회사로 반드시 등록되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
재계가 주목하는 것은 강철규 위원장이 구본무-최태원-정몽구 회장을 연쇄 회동하면서 모두 한 가지 이상의 선물보따리를 전해주었다는 점이다. 구본무 회장에게는 지주회사로 변신한 (주)LG의 지분청산 과정에 대해 면죄부를 주었고, 최태원 회장에게도 소버린의 공격을 받고 있는 SK(주)의 지주회사 변신 문제를 어느 정도 양해했다. 정몽구 회장에게도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어느정도 양해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강 위원장이 다른 어느 그룹보다 골치아픈 현안에 직면한 삼성에게도 큰 선물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삼성이 현정권과 모종의 밀약을 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경제위기 해소에 삼성이 앞장서는 대신, 현정부는 삼성의 지배구조 개선문제와 이재용 상무 문제 등에 대해 어느 정도 면죄부를 줄 것이라는 분석이 그것이다.
실제로 삼성은 회동 뒤 재벌금융사의 의결권 축소라는 공정위 카드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고 공정위는 에버랜드 지주회사 문제를 해결하는데 1년간의 유예기간을 주는 등 시급한 현안을 한 건씩 주고받는 모습을 취했다. 향후 삼성과 공정위의 ‘의견조율’이 어떤 식으로 가시화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