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키친> |
섹스를 구걸했다고 주장하는 선배 A의 고백. 섹스를 안 한 지 어언 10개월을 넘긴 A는 오랜 지인 B를 만나 술을 마시다가, B의 기습 키스에 적잖이 놀랐다. 그런데 B의 마음을 알게 된 A가 모텔을 가리키며 “우리, 자고 갈까?”라고 말했을 때, 뜻밖에도 B는 “나, 돈 없어”라고 말했다는 사실. 이미 성욕이 동한 A는 “내가 낼게”라고 B를 꼬셔서 모텔에 가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튿날 A는 내게 “단지 모텔비를 냈을 뿐인데, 섹스를 구걸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라고 물었다. 그런데, 노처녀 C한테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지만, 그녀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남자 후배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3만 원 줄 테니, 자자고. 모텔비? 당연히 내가 냈지!” 모텔비를 내면 남자를 산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깔끔하고 좋다나? 그녀의 말을 들은 그때부터, 나도 원 나이트 스탠드를 할 때는 내가 모텔비를 낸다. 모텔 카운터 앞에서 그에 앞서 카드를 내미는 것.
내 경험상 ‘어라? 이게 웬 횡재?’라고 생각하는 남자 몇몇은 “내가 내려고 했는데!”라고 딴소리를 하면서도 결국 내 손을 강하게 막아서지 않았다. 그들은 대체로 ‘오늘 하룻밤만 즐길 건데, 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처음 만난 친구의 친구, 클럽에서 헌팅한 남자, 술집에서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남자 등이 대체로 이런 반응을 보였으니까. 재미있는 것은 이런 원 나이트용 남자와 만나면서 모텔비를 내면, C와 마찬가지로 남자를 산 느낌이 들어서 우월감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는 ‘섹스도 하고, 돈도 굳고, 일석이조네~!’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나 역시 ‘오늘은 내가 섹스가 좀 고프다. 네가 서비스 좀 해다오’라는 마음으로 모텔비를 낸 거니까.
물론 매번 내가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간혹 강하게 거절하면서 “내가 낼게”라고 말하는 남자들이 있으니까. 술에 취해서 정신이 가물가물한 상태에서도 모텔의 카운터 앞에서만큼은 강해지는 남자들이 종종 있다. 그런 때는 남자에게 모텔비를 낼 수 있는 권리를 양보한다.
그런데 사랑하는 남자와 모텔에 갈 때는 얘기가 좀 다르다. 사실 여자도 남자가 매번 모텔비를 내는 것이 부담이라는 사실은 안다. 영화비, 저녁 식사비, 커피값까지 낸 남자가 모텔비까지 내야 하냐고? 이렇게 묻는다면 여자는 “그건 아니죠!”라고 답할 테지만, 확실한 것은 대부분의 여자가 이성과 달리 감정적으로는 모텔비에 거부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내가 모텔비를 내고 그와 섹스를 한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결국 ‘그가 나를 원하는 정도가 모텔비를 낼 정도는 아니란 말인가?’라고 생각하게 되니까.
후배 D는 모텔비를 누가 부담하는가 하는 문제는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처음 모텔에 다닐 때에는 남자친구가 모텔비를 내는 게 당연했어요. ‘한 번만 자줘’라고 부탁하는 것을 들어주는 패턴이었으니까 더 그랬죠. 그런데 섹스가 자연스러워지면서부터 그가 슬슬 모텔비를 모른 척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은근히 자존심이 상하더라고요”라고 말했던 것.
후배 E는 조금 너그러웠다. “남자친구 월급이 저랑 비슷하니까 데이트 비용을 반 정도 부담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그런데 이왕이면 제가 저녁식사와 커피값을 계산하고, 그가 모텔비를 내주었으면 하는 마음은 있어요. 그래서 언제부턴가는 그와 섹스 데이트가 예상되는 날에는 제가 저녁 식사를 계산하게 되더라고요. 모텔의 카운터에서 돈을 내는 나 자신을 누군가가 본다고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다고 할까요? 그래서 남자친구가 돈이 없을 때에는 모텔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제가 그에게 카드를 쥐어주곤 해요. 그러면 모텔비는 제가 내는 거지만, 어쩐지 부담이 덜해요”라고 말했던 것. 그래서 E는 어지간하면 카운터 없이 기계로 결제하는 무인 모텔을 즐긴다나?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남자친구가 모텔 카운터 앞에서 은근히 발걸음의 속도를 늦추면서 모텔비 내기를 꺼려한다면? 어차피 나도 그와 하룻밤을 보내고 싶어서 모텔에 간 것은 마찬가지. 누가 모텔비를 내든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는 사실은 똑같을 것이고, 모텔 안에서의 행위 역시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친구가 모텔비 내기를 꺼렸다는 사실은 나한테도 상처가 되지 않을까? 섹스를 하면서도 ‘이 남자가 혹시 나에 대한 애정이 조금 줄어든 것은 아닐까?’라고 의심하게 될 지도 모른다. 나도 안다. 모텔비와 애정도에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박훈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