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콤비 김연아와 브라이언 오서 코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사진은 지난해 페스타 온 아이스 공연을 하루 앞두고 기자회견에 나선 모습. |
# 거칠어진 진실게임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다. 지난 8월 24일 낮 12시 오서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IMG의 뉴욕지사는 “오서가 김연아 어머니 박미희 씨로부터 결별 통보를 받았다. 어떤 이유도 언급 받지 않은 갑작스런 통보였다”고 밝혔다. 오서 코치는 지난 5월 아사다 마오(일본)가 속한 IMG와 재계약했다. 거액의 계약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보도자료에서 오서는 최근 몇 개월간 김연아 측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되는 등 모욕에 가까운 푸대접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것이 국내외에서 크게 기사화된 것은 물론이다.
이에 김연아의 매니지먼트 회사이사 박미희 씨가 대표를 맡고 있는 올댓스포츠는 이날 오후 3시 “오서 코치가 먼저 더 이상 김연아를 맡지 않겠다는 최종 통보를 했고 우리는 이를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이 대목에서 누가 먼저 결별을 결정했냐는 의문이 발생했지만 앞서 8월 초 박미희 씨가 오서에게 김연아로부터 손을 뗄 것을 주문하고 냉각기를 가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간의 문제일 뿐 어쨌든 오서 코치가 해고(fire)됐다고 할 수 있다.
오서는 같은 날 오후 5시 한 스포츠전문지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내가 그만 둔 것이 아니다. 연아의 어머니가 그만 두게 한 것이다. 이유도 말해주지 않았다”며 재차 자신이 일방적으로 해고당했음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오서가 주당 65만 원(시간당 110달러)의 적은 보수를 받아왔다는 것도 공개됐다. 그리고 25일 새벽 1시 캐나다의 <토론토 스타>를 통해 오서는 “이 모든 소동은 김연아의 어머니 박미희 씨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김연아는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나도 그렇다”고 밝혔다. 다시 한ㄴ번 정면으로 박미희 씨를 공격한 것이다.
이에 김연아가 직접 칼을 빼 들었다. 같은 날 오전 5시 30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거짓말을 그만하시죠, B(브라이언 오서 코치).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나는 정확히 알고 있고, 이 모든 것은 내가 결정한 겁니다”라고 강력하게 맞받아쳤다. 이 글은 수시간 만에 자진 삭제됐다.
오서는 25일 오전 국내외 인터뷰를 통해 “내 말은 사실이다”라고 수차례 확인했다. 이에 김연아는 같은 날 낮 12시 15분 자신의 미니홈페이지에 비교적 긴 글을 통해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진실은 밝혀져야 하고, 모든 게 밝혀지지는 않더라도 거짓을 믿고 죄없는 분들을 비난하게 놔두는 것은 도저히 참기가 힘드네요”라며 오서 코치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끝으로 오서는 26일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김연아가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말한 것”이라며 결별 과정에 대한 자신의 기존 입장을 재차 확인하면서 김연아가 새 시즌을 맞아 준비하고 있는 프리 프로그램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오서는 이 인터뷰에서 “김연아가 이런 사태가 왜 생겼는지 알아야 한다. 2주 반 정도 뒤에 모든 일이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변할 것이다”라고 슬쩍 으름장까지 놓았다. 이에 김연아 측은 전 코치가 “새 프로그램을 사전 상의 없이 언론에 누설한 것은 스포츠 지도자로서 상식에 어긋난 행동”이라며 발끈했다. 오서 코치가 더 이상 김연아에 대한 의도적인 흠집내기를 계속할 경우 강력 대응하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당초 양비론, 혹은 약자인 오서에게 동정적으로 흐르던 여론도 이 오서의 관행을 깨는 무분별한 발언(새 프로그램 공개) 이후 김연아 쪽으로 확 쏠렸다.
# 감정싸움 점입가경
문제의 핵심은 왜 오서와 김연아 측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게 패였냐는 점이다. 즉, 세계적인 선수와 기술코치의 관계는 정확히 규정하면 스승과 제자가 아닌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다. 계약에 의해 선수가 코치에게 일정한 형식(시간당 페이, 혹은 수입의 5~30%)의 보수를 주는 조건으로 레슨을 받는 것이다. 당연히 여러 가지 이유로, 그리고 수시로 코치 교체는 이뤄진다. 세계 피겨무대에서 일상다반사인 일이다.
중요한 것은 결별의 방법이다. 보통 이렇게 결별이 이뤄질 경우 보도자료 한 장 등 간단하게 이뤄진다. 심지어 발표 자체를 안 해 시간이 지난 후 확인되는 경우도 많다. 이번처럼 코치(오서)가 직접 언론과 인터뷰해 결별에 대해 구구절절이 언급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이유는 세계 피겨스케이팅 계가 생각보다 좁기 때문이다. 금세 조우하게 되고, 또 적으로 다시 만날 가능성이 높다. 서로 안 좋은 이미지를 만들면 코치는 새로운 선수를 구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선수는 향후 ‘사람이 하는’ 채점에서 불이익을 당할 소지가 있는 것이다.
박미희 씨가 비상식적으로 오서를 해고했든, 아니면 오서가 지저분한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이든, 그 이유를 따지기에 앞서 어쨌든 이번 김연아-오서의 결별은 이례적으로 양측의 감정이 크게 상한 것은 분명하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
‘B, 진작 헤어지고 싶었어요’
#오서는 왜 언론플레이를 통해 ‘박미희 죽이기’를 시도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판단미스라고 할 수 있다. 올댓스포츠 소속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김연아를 잘 알고 있는 A 씨는 “26일 AFP와의 인터뷰에서 오서는 김연아를 다시 맡고 싶다는 뜻을 시사했다. 즉, 이번 사건은 오서가 ‘문제가 불거지면 김연아가 어머니 대신 자신을 택할 수도 있다’고 오판한 데 원인이 있다고 본다. 오랫동안 김연아 및 박미희 씨와 함께 생활하면서 오서는 김연아와 엄마가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봤고, 또 김연아가 자신에게 기술코치를 넘어 스승을 대하듯 깍듯하게 예우하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런 문화는 아주 동양적인 것인데, 해임통보를 받은 오서로서는 엄마 문제가 불거지면 김연아가 자신을 택할 것이라고 착각할 빌미가 된 것이다. 김연아가 바로 오서의 주장을 반박하자 아주 당황했고, 또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지난해 아이스 올스타즈 미디어 공개 리허설에서 김연아와 미셸 콴이 데이비드 윌슨으로부터 안무 지도를 받고 있다. |
실제로 오서가 자신이 먼저 언론을 통해 결별사실을 적나라하게 발표한 이유에 대해 “3주를 기다렸지만 이제 다른 선수에게 집중하기 위해 밝힐 때가 됐다”라고 해명한 것은 사실 설득력이 떨어진다.
#왜 김연아 캠프는 오서를 해고했을까?
사실 이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개인종목의 선수가 자신이 고용한 기술코치를 자신의 필요에 의해 해임하는 것은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섹스스캔들’에 이어 샷난조를 고생하던 타이거 우즈가 얼마전 스윙코치를 해임했을 때도 그 이유가 이슈로 등장하지 않았다.
뭐 굳이 따지자면 김연아 캠프는 기본적으로 외부에 비쳐진 것처럼 오서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주목할 만한 일화도 있다. IB스포츠 측에 따르면 2009년 3월 당시 IB스포츠의 김연아 팀은 오서의 해임 여부를 놓고 일대 격론을 벌였다. 오서는 김연아를 통해 세계적인 지도자로 우뚝 섰지 사실 그 이전에는 선수시절 명성(별명이 ‘미스터 트리플 더블’, 올림픽 2회 은메달, 세계선수권 우승)에 비해 엘리트 지도자로는 존재감이 없었다. 아이스쇼 기획자로 일하다 김연아에게 발탁된 것이다. 당연히 세계 피겨스케이팅 계에서 오서의 영향력이 미미해, 자칫 1년 뒤 밴쿠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코치 때문에 판정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이다. 당시 박미희 씨는 코치 교체로 가닥을 잡았었다. 하지만 올림픽이 캐나다에서 열리고, 오서를 교체했을 경우 오히려 그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판단으로 오서 교체론은 없던 일이 됐다.
당시 IB스포츠에서 이 문제에 관여했던 B 씨는 “속사정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IB스포츠와 김연아 캠프는 밖으로 알려진 오서보다 안무를 담당한 ‘데이비드 윌슨’의 공헌도를 더 높이 평가했다. 박미희 씨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을 이제야 데려왔느냐고 얘기했을 정도다. 이번에도 오서는 경질했지만 윌슨에 대해서는 한층 신임을 두텁게 하고 있는 것도 모두 처음부터 굳어져온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즉, 원래 김연아는 오서 코치에 대해 그렇게 신임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오서가 아사다 마오의 코치직 제의를 받았기 때문 ▲오서가 일본 주니어선수 및 다른 유망주를 돌보느라 김연아에게 신경을 덜 썼기 때문 ▲돈 문제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김연아 측이 공식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해명했고, 세 번째 오서 스스로 부인했다. 김연아가 정말 오서를 필요로 했다면 모두 문제가 되지 않는 요소들이다.
#IMG음모론은 가능한 것인가?
세계적인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인 IMG가 이번 사건의 배후라는 그럴듯한 얘기가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김연아가 1년간 IMG 소속이었다가 2007년 4월 소송까지 치른 끝에 IB스포츠로 이적한 악연이 있고, 현재 라이벌 아사다 마오와 오서가 현재 IMG 소속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결론부터 말하면 개연성이 강한 추측일 뿐이다. 2007년 당시 김연아가 IMG를 버리고 IB스포츠로 갔을 때 “세계 피겨스케이팅계에서 IMG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대부분의 메달리스트와 특급 지도자들이 모두 IMG 소속으로 메달 색깔마저 바꿔 버릴 수 있다. 김연아가 큰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 얘기가 맞다면 이후 김연아가 그랑프리 및 세계선수권 석권, 그리고 밴쿠버올림픽 쾌거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IMG 코리아 측은 “IMG가 그렇게 구멍가게식이나, 작은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회사가 아니다. IMG뉴욕 쪽과 접촉해봤는데 이제 오서는 오서대로 할 말 다 했고. 김연아도 마찬가지이니 조용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향후 오서가 아사다 마오를 지도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도 세계 피겨스케이팅의 관례상 지극히 자연스러운 시나리오 중 하나다. 오서가 이렇게 정면으로 김연아 측을 공격하면서까지 아사다 마오에게 가려고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돌출행동은 아사다와의 계약에 부담이 될 뿐이다.
#김연아의 향후 행보는?
김연아는 그랑프리 시리즈는 불참하지만 내년 초 세계선수권(도쿄)에는 출전하겠다는 뜻을 이미 밝혔다. 올댓스포츠 측은 이번 사건 후 이런 결정에 아직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 오서의 후임(새로운 기술 코치) 선임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올림픽 제패 이후 김연아의 프로전향설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는 까닭에 일단 은퇴를 하고 프로생활에 전념하고, 2014 소치동계올림픽 전에 복귀를 검토할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세계선수권 출전 결정으로 인해 선수생활을 계속하겠다는 방향으로 최종 가닥이 잡혔지만 여기에는 아직 변수가 있다. 기본적으로 그랑프리 시리즈를 치르지 않으면서 최상의 경기력을 유지하기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 김연아의 행보는 사실상 프로활동에 가깝다(7월 한국 아이스쇼에 이어 10월 LA아이스쇼).
A 씨는 “아마 세계선수권 직전까지 아이스쇼와 경기력 유지 등 두 마리 토끼를 쫓은 뒤 막판에 최종 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를 다른 측면에서 보면 김연아가 서둘러 새 기술코치를 영입한다면 선수생활 유지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고, 이것이 늦어진다면 사실상 은퇴 쪽으로 기운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