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사태에 대해 재일동포 주주를 대상으로 열리는 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9일 일본으로 출국하는 라응찬 회장, 신상훈 사장, 이백순 행장(왼쪽부터). 연합뉴스 |
지난 9일 오전 라응찬 회장, 신상훈 사장, 이백순 행장 등 신한금융지주 ‘빅3’가 일본 나고야행 비행기에 함께 올랐다. 나고야 메리어트호텔에서 신 사장의 고소와 해임안에 관련된 설명회를 갖기 위해서였다. 오후 1시부터 2시간 30분가량 진행된 이날 설명회에는 신한금융지주 재일교포 대주주 원로모임인 ‘간친회’ 28명으로 구성된 사외이사와 주주들이 참석했다.
당시 설명회는 라 회장, 이 행장, 신 사장이 돌아가며 각자의 입장을 밝힐 때까지만 해도 순탄하게 진행됐다고 한다. 하지만 자리를 함께했던 원우종 신한은행 감사위원과 법무법인 푸른 정철섭 신한은행 고문변호사가 신 사장의 부당 대출과 개인 횡령 혐의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분위기는 상당히 악화됐다고 전해진다. 라 회장 측에서 고문변호사까지 대동해 압박하고 신 사장은 강력하게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같이 흘러가자 사외이사와 주주들 사이에서는 고성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대부분 주주들의 불만은 내부적인 동의 과정이나 언질도 전혀 없이 라 회장 측에서 신 사장을 고소하는 초강수를 뒀다는 점 때문이었다. 주주들은 사건 이후 신한지주 시가총액이 1조 원 가까이 빠진 만큼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주주들 입장에서는 은행 측이 이번 사태 이후의 파장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을 했었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그럼에도 라 회장 측이 독단적으로 고소장을 던졌을뿐더러 언론에 이를 직접 흘리는 이상 행태를 보였다는 점은 주주들에 대한 부담을 무릅쓸 만큼 내부 갈등이 극심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실어준다.
금융권에서도 이번 사태를 위험한 내부 알력의 산물로 보는 시각이 대세다. 신 사장은 한때 대내외적으로 라 회장의 뒤를 이을 신한금융지주의 차기 회장으로 기대를 모았다. 신한금융 설립 후 28년간 라 회장과 함께 생활을 해왔고, 라 회장이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된 후 쟁쟁한 인사들을 제치고 행장 자리에 앉으며 두터운 친분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신한금융지주 내부에서는 지난해부터 라 회장과 신 사장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라 회장이 지난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사건 관련 검찰 조사를 받을 때부터 이들의 사이가 엇나가기 시작했다는 것.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검찰 주변에서는 “당시 신 사장이 라응찬 회장을 구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는 말이 돌았다. 이에 둘 사이의 관계가 악화됐다는 것은 낭설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올 초 다시금 라 회장 차명계좌 문제가 불거지자 두 사람의 관계가 악화됐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4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은 이귀남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질의를 하면서 갑작스럽게 라응찬 회장 차명계좌 문제를 들고 나왔다. 라 회장의 돈 50억 원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된 계좌에서 박 회장에게 전달됐는데 왜 수사를 하지 않느냐는 것. 이후 민주당 의원들까지 가세했다. 라 회장 연임 이면에 현 정권 실세가 개입돼 있다는 의혹에 보태어, 불법 사찰 파문의 핵심 ‘영포라인’과 라 회장이 깊은 관계에 있다는 의혹까지 끄집어냈다.
이 과정에서 신한은행 내부 인사들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라 회장 관련 정보들이 시중에 떠돌기 시작했다. 이런 소문들이 민주당 의원들의 ‘라 회장 때리기’로 이어진 셈이다. 라 회장 측은 그 배후에 호남 출신인 신 사장과 그 측근들의 정보 흘리기가 있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백순 행장이 라 회장의 전폭 지원 아래 터뜨린 게 이번 신 사장 고소 사태라는 관측이다. 이 행장은 지금껏 신 사장에 가려 차기 회장 후보에서 항상 밀려왔다. 이런 상황에서 신 사장이 신한금융지주에서 축출될 경우 가장 득을 볼 인물이 이 행장이라는 점에서 이런 분석은 힘을 얻고 있다.
어쨌든 주주들은 신 사장 해임과 관련된 의결 사안에 대해 이사회에 공을 넘긴 상태다. 신한금융 이사회는 라 회장, 신 사장, 이 행장을 포함해 총 12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사회 안건 통과를 위해서는 과반수 참석, 참석자의 과반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아직까지는 라 회장과 이 행장이 해임 표를 던질 것이라는 것 외에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단할 수 없다. 또 신 사장의 거취가 해임보다는 직무정지 쪽으로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과에 따라 검찰 수사 뒤 후폭풍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신 사장의 해임을 떠나서 사건을 최종적으로 결론지을 수 있는 결정적 키는 검찰 수사에 달려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현재 검찰은 수사에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이번 사건을 배당받은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3부(부장검사 이중희)는 사안이 중대해 사건을 서둘러 마무리 짓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 사장의 주장대로 과연 이번 사태가 라 회장과 이 행장의 2인자 몰아내기인지, 아니면 내부에서 실제 신 사장의 부도덕한 행각이 있었는지에 대한 판가름은 검찰 수사 결과가 말해줄 듯하다.
정작 문제는 강력한 라 회장 체제 중심으로 유지되던 신한금융지주의 지배구조가 이번 사태로 그 골격이 뿌리째 흔들릴 위기에 놓였다는 점이다. 금융권에서는 이사회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이번 사태 수습 후에도 라 회장, 신 사장, 이 행장으로 이어지는 삼각편대 구도가 흔들리면서 지배구조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배구조가 흔들리면 그만큼 앞으로 신한금융지주의 대외신인도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만큼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곱지 않다. “내부 논의도 없이 이런 사태를 만든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다”는 재일교포 주주의 발언도 이런 걱정을 내포하고 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